[스페셜2]
[인터뷰] ‘평범’과 ‘몸부림’의 딜레마, <보호자> 정우성
2023-08-24
글 : 정재현

<보호자>의 수혁은 러닝타임 내내 평범한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맨다. 그런 수혁을 평범과 가장 거리가 먼 정우성이 연기한다는 점이 놀랍다. <보호자>의 서사는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길 희구하는 한 남자의 몸부림이다. 그런 영화를 한국영화 역사에서 숱한 액션 명장면을 끊임없이 만들어온 배우 정우성이 연출한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일견 모순으로 가득해 보이는 <보호자>는 영화인 정우성이 커리어 내내 고심한 의문에 대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그가 만들 수밖에 없는 영화기도 하다.

- 수혁은 주인공임에도 대사가 많지 않고 수혁의 전사도 극 중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연출자이자 각색 작가로서 의도한 여백인가.

= 영화를 만들다보니 지금과 같은 여백이 생겼다. 출소 전 수혁의 모습도 촬영해두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전부 걷어냈다. 수혁은 폭력 조직에 몸담았던 스스로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수혁은 언어보다는 물리적 폭력이 우선되는 세계에서만 살았던 터라 언어 표현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평범함’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지만 그 의미를 명확히 알진 못한다. 평범함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단어여야 하는데 수혁에겐 그렇지 못한 것이다.

- 수혁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평범’이라면 감독 정우성이 <보호자>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몸부림’이다. 몸부림은 결국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혹은 저항하기 위해 움직이는 몸의 동작인데, 수혁과 수혁의 액션은 둘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나.

=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저항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수혁은 출소 후에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노출돼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민서(이엘리야)의 바람에 따라 폭력을 사용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수혁의 궤적은 결국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끊임없는 신체적 위협이 닥쳐도 폭력이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는 수혁의 딜레마가 몸부림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 <보호자>의 연출 경험을 정우성스러운 연출로 정의했다. 배우 정우성, 제작자 정우성, 자연인 정우성의 취향이 모두 함축된 표현인가.

= <보호자>엔 영화인 정우성의 고민을 담았다. 긴 시간 영화인으로 살아오며 영화계가 특정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해 의문이 많았다. 영화연출은 곧 감독의 영상언어의 구현이지 않나. 그런데 최근 영화들을 보면 감독 고유의 화법이 살아 있는 영화가 몇이나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정우성이 연출을 맡는다면, 영화계의 문제라 생각되는 지점들은 지양한 채 클리셰가 다분한 이야기를 정우성만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세탁기 콤비가 사용하는 무기가 상당히 독특하다. 네일건은 시나리오에서부터 명시된 무기인가.

= 그렇다. 우진(김남길)은 폭력의 일상성을 상징한다. 우진이 게임이라며 자행하는 범죄를 통해 우리가 세상에 산재한 유무형의 폭력에 얼마나 무감한지 드러내고 싶었다. 또 소통의 의지 없이 제 말만 하는 우진을 통해 자기 감상에만 빠져 있는 사람이 어떤 파국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세탁기 콤비의 아지트인 폐유원지는 인비(류지안)의 납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로케이션 헌팅 중 발견한 공간이라 들었는데.

= 실재하는 공간을 다시 꾸몄다. 아지트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인 원형 풀은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었다. 영화 후반 수혁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혁이 인비를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모습이 자궁 속 태아 같은 구도였으면 했다. 수혁과 인비가 마치 양수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혹시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일산 호수공원 장면도 앞선 물의 심상의 연장인가.

= 그렇다고 할까. (웃음) 이번 영화 덕분에 일산 호수공원을 처음 가봤다. 공원은 수혁이 온전히 노출되는 공간이다. 수혁이 모든 위협 인자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도 인비를 수혁이 보호해줄 수 있음을 호수 공원 장면을 통해 보이고 싶었다.

- 올해 초 <씨네21>과 진행한 <보호자> 관련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는 한번도 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었는데 우연한 자리에서 보고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기억해뒀다가 역할을 요청했다”고 귀띔해주었다. 이들이 누군지 이제는 말해줄 수 있나.

= 안마남은 상갓집에서 캐스팅했다. 김종수 배우의 옆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이미지가 딱 안마남이어서 캐스팅 제의를 건넸다. 게르는 몽골인으로 설정돼 있어 처음엔 몽골 배우 위주로 물색했다. 그런데 액션 연기를 하다보면 감독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언어가 다르면 소통에 차질이 생기고 이는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한국인 배우 중에 찾게 됐다. 지인과 바에 갔다 게르로 캐스팅하고픈 배우를 만났다. 내가 자꾸 위아래로 훑어보니 ‘정우성 저 XX 왜 저래?’ 싶었을 거다. 다음날 캐스팅 제의를 받고 상당히 놀랐다고 하더라.

- 작품 속에서 도시 재개발 이슈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비가 사는 아파트에도 재건축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도시 전체가 무덤”이라는 우진의 대사도 재개발로 인해 스러진 구도심을 연상케 한다.

= 종종 한국의 집은 거주지보다 욕망의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느낌이 든다. 집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안식보다 개발과 수입의 수단으로 취급되지 않나. 영화 초반 등장하는 교회도 재개발 지역에서 이득을 취하려 알박기 중인 교회다. 지금 사회 전반이 가치 전도를 심하게 겪는 중이다. 요즘은 물류 자동화 경쟁 체제가 고민이다. ‘더 빠른 배송을 위한 빠른 배송의 경쟁’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우려스럽다.

- 결국 영화 속 수혁의 궤적은 평범해지기 위함으로 귀결된다. 평범함이란 단어에 관해 인간 정우성도 촬영 중 내내 고민했으리라 생각한다.

= 가치 전도 현상이 팽배한 세상에서 수혁은 평범한 삶을 찾고자 하지만 평범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지 않나. 삶은 평범해야 하는데, 삶이 고단하고 어렵다는 건 결국 평범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범한 일상은 모두가 어울리는 사회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사회에 속해 불특정 다수와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혁을 통해 던지고 싶었다.

- 한국에서 가장 다양한 액션 연기를 소화한 배우기도 하다. 직접 액션을 소화하며 연출 현장까지 컨트롤하는 일은 까다롭지 않았나.

= 까다롭진 않았고 오히려 허명행 무술감독에게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많이 건네 미안했다. 가령 10년 전 수혁이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펼치는 몹 액션은 단시간 내에 수혁이 얼마나 공간과 빛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해 싸울 줄 아는 사람인지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카이저 호텔 로비 자동차 액션은 수혁이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며 자신을 방어하려는 몸부림을 보여줘야만 했다. 만약 수혁이 차에서 내려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이 폭주했을 것이다. 수혁은 차로 도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신의 액션은 차와 수혁이 일체화된 몸부림이다.

- <비트> <태양은 없다>를 찍던 90년대부터 영화연출의 꿈을 밝혀왔다. 장편 연출작을 공개하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생각은 안 드나.

= 조바심이 없었다. 언젠간 장편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으리란 확신이 있었고 <보호자> 전에도 연출하려다 엎어진 작품이 꽤 됐다. 그런데 주변의 여러 요소를 희생하면서까지 감독 데뷔의 꿈을 이룰 필요는 없었다. 온전히 좋은 환경에서 연출에 몰두해도 힘든데 여러 가지를 타협하며 영화를 연출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지금이 가장 적기였던 셈이다.

- 시나리오를 쓸 때 타자가 아닌 자필로 쓴다는 과거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보호자> 작업은 어땠나.

= 지금도 연필로 쓰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자필로 쓴 시나리오는 초고를 공유할 때 난점이 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무실 스탠딩 데스크로 가 독수리 타법으로 자필 시나리오를 워드로 옮긴다. (웃음)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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