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우진은 수혁(정우성)을 해하라는 성준(김준한)의 지시를 받고 진아(박유나)와 함께 지구 끝까지 수혁을 쫓는다. 진아는 수혁의 딸 인비(류지안)를 납치하지만 정작 우진은 수혁에게 납치돼 오도가도 못한다. 별안간 수혁과 우진의 로드 무비가 이어지는 와중에 우진은 수혁을 사살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을 해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사이코패스도 김남길을 거치면 특별해진다. 우진은 등장마다 비장함으로 팽팽한 영화에 숨통을 틔우고 단선적인 내러티브에 놀라운 박진감을 부여한다. 캐릭터를 섬세히 구축하고 이를 유려하게 표현해내는 김남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 평소 목소리보다 톤을 높여 노래하듯 대사를 소화해 우진이 유년기에 천착하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우진의 대사 톤을 어떻게 만들어갔나.
= 우진은 그의 대사처럼 어린 시절 발생한 일련의 일들을 환각인지 실제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멀쩡한 성인이라면 과거의 고통을 직시하고 깨부수어 갈 텐데 우진은 이를 겁내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와중에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부러 밝은 척을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톤을 높였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는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많이 참고한다. <보호자>를 준비하며 우연히 한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을 봤다. 실사였다면 정말 잔인했을 장면이 아이들이 보기에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 점도 우진의 캐릭터와 맞닿아 있다고 느껴 차용했다.
- 드라마 <선덕여왕>,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등에서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적 있다. 이전의 연기나 한국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사이코패스 캐릭터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고민한 지점이 있나.
= 애니메이션에서 외형과 목소리 톤을 구축한 후 내가 평소 형들에게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살짝 가미해도 정형화된 사이코패스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가진 원초성이 있지 않나. 아이들은 사회화를 겪기 전까지 동물적 본능이 남아 있어 감정 기복도 심하고 당장의 욕구를 누군가가 충족해주길 원한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도출할 수 있는 잔인함을 유년기에 갇혀 있는 우진에게 반영했다.
- 영화가 말해주지 않는 우진의 전사도 써보았나.
= 우진은 할머니와 관련된 사건을 겪은 후 떠돌이 생활을 하다 훗날 세탁기의 아지트가 되는 진아 아버지의 놀이공원에 우연히 당도했다. 그리고 거기서 진아를 만났다.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끼던 진아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우진의 결핍에 감응해 우진을 보호해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게 콤비로 활동하던 중 사제 폭탄으로 뜻밖의 사상자를 내는데, 마침 그 사고의 사상자가 성준이 처리했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성준의 눈에 들어 계속해 그의 하청을 받는다고 설정했다.
- 우진은 남들이 그리 궁금해하지 않을 어릴 적 사연을 두 차례나 타인에게 전한다. 굉장히 긴 독백을 끝까지 한 호흡으로 뱉되 수차례 감정적인 변주까지 줘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으리라 짐작한다.
= 우진이를 연기하기 위해 설정해놓은 가벼운 톤이 있는데 진중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평소 김남길이 튀어나오더라. 대체 우진스러움이 뭘까 고민하던 중 감독님이 조언해주신 부분이 있다. 수혁에게 사연을 고백할 땐 텅 빈 눈으로 툭툭 이야기를 던졌으면 좋겠다고.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 많이 버벅였다. 우성 형은 감독님이지 않나. 감독과 마주 앉아 연기하려니 몰입이 쉽지 않았다.
- 왜 우진은 수혁에게 납치되면서도 끝까지 수혁을 죽이려 들까.
= 우진이 수혁에게 집착하는 건 사람에 대한 상처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우진이 아지트에서 금붕어나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도 사람을 향한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혁은 지켜내고 싶은 한 사람을 위해 별짓을 다 하지 않나. 수혁은 우진이 가지지 못한 인간을 향한 애정을 품은 사람이다. 그런 수혁을 가까이에서 보며 우진은 더욱 수혁을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 우진은 늘 진아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탑승한다. 보통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녀의 오토바이 2인 탑승의 구도를 전복한 점이 재미있다.
= 진아가 우진의 보호자라는 걸 보이기 위해 시나리오에서부터 명시된 장면이다.
- 하필 <보호자>의 감독이 <비트>로 한국영화사에 전무후무한 오토바이 장면을 남긴 분 아닌가. 정우성 감독의 특별한 코칭이 있었나.
= 안 그래도 유나와 내가 감독님에게 오토바이 시범을 보여달라고 졸랐는데 절대 안 해주시더라. (웃음) 정작 우성 형은 <비트> 촬영 이후론 오토바이를 안 타셨다더라. 그러다 우리의 오토바이를 신기해하며 옮기시다 오토바이와 함께 고꾸라지셨다. 그리고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패드를 깨먹으셨다. 그걸 보고 우린 “뭐야~ <비트>의 민이 맞아?”라며 놀리고. (웃음)
- 정우성 감독이 “너 자신을 생각하면서 연기해도 될 거 같다”는 조언을 현장에서 건넸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좀더 자세히 진술해준다면.
= 우성 형이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신을 찍을 때였다. 내 딴에는 머리를 적당히 젖혀야 상대 배우가 프레임 아웃이 안될 거란 생각해 각도를 조절했다. 그런데 촬영 후 감독님이 오시더니 “너나 나나 프로 배우 아니냐. 설령 프레임 아웃이 되더라도 네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나로부터 도망을 가야 한다면 연출을 배려하기보단 캐릭터의 목적에 끝까지 복무했으면 좋겠다. 네 캐릭터만 생각하며 연기해도 괜찮다”는 조언을 건네셨다. 더 연기할 수 있는 지점에서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아쉬움을 남기는 것보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화 전체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슛 때 미친 듯이 도망갔더니 우성 형이 나를 못 잡던데…. (웃음) 연기를 처음 배울 때부터 연기는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작업이라 배웠다. 지금도 그 신조는 변함없다.
- 배우의 호흡을 워낙 잘 아는 감독과 작업하다 보면 의견 개진이나 소통이 손쉬웠으리라 짐작된다.
= 그렇다. 감독님은 확실히 연기의 호흡을 알고 배우의 언어를 구사하는 분이라 디렉션이 상당히 명확하다. 간혹 어떤 현장은 배우가 스스로의 연기를 합리화해야 한다. 스스로 오케이컷이라고 생각이 들 때까지 연기해보고 싶지만 그건 사치인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본인이 배우라 배우가 아쉬움을 해소할 때까지 현장을 지켜주시고 배우가 도달할 수 있는 끝 지점까지 달려주셨다.
- 복도식 아파트를 한번에 뛰어 올라가는 우진의 액션이 눈에 띈다. 김선웅 무술감독이 “한국에서 가장 액션을 잘하는 배우는 김남길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액션에 조예가 깊다.
= 선웅이는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웃음) 나도 액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인데 하필 감독이 한국에서 가장 액션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어서 억울하다. (웃음)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는 우진이 삐걱거리는 엉성한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내게 원하신 모양새는 닌자였다. 감독님은 아이 같은 우진의 성격이 몸짓에도 드러나길 바라셨다. 목표 지점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아이들 특유의 맹목성이 우진과 더 맞다고 판단하셨다.
- 이전에 연기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송하영 프로파일러가 우진을 보면 뭐라고 할까.
= 잡아들여! (웃음) 안 그래도 VIP 시사회에 권일용 교수님(<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권일용 프로파일러를 모델로 한 드라마다.-편집자)이 오셨다. 그래서 교수님께 “유년기 학대 경험이 있는 사이코패스들이 주로 동물을 학대하다 사람을 해하는 걸로 이어지지 않나. 우진도 비슷한 케이스일까”라고 물어봤다. 전혀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진은 사람에게 학대당한 상처로 인해 소심해지는 마음을 동물과의 소통으로 풀기 때문에 전혀 다른 케이스라고 진단하시더라.
-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기 전까진 대학로 연극무대에 꾸준히 섰다. 그리고 한동안 매체 연기를 하다 요즘 꾸준히 콘서트를 열며 무대에 서고 있다.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직접 서는 경험이 역으로 매체 연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나.
=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는 일도 연기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쳤을 때 관객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연기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종종 헛갈릴 때도 있다. 노래를 위한 발성을 연습하다보면 연기자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끊임없이 연기를 하다 다시 무대에 서려고 해도 노래 발성이 전처럼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매체와 공연을 한번에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콘서트는 작품 촬영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팬들을 위해서라도 계속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