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세 명의 김모미가 보여주는 여성혐오와 여성연대, ‘마스크걸’ 리뷰
2023-08-31
글 : 정재현

※ <마스크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미를 연기한 세 배우를 A, B, C로 구분해 지칭합니다.

<마스크걸>의 주인공 모미의 이름은 당연히 ‘아름다운 얼굴 모습’을 의미하는 미모(美貌)를 뒤집은 것이다. 미모는 모미가 가장 욕망하는 이상이다. 하지만 모미의 생은 탐하던 열매에 가닿을수록 좌초한다. 성형수술 전 모미A(이한별)는 뛰어난 가무 실력을 지녔지만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장기를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발휘하며 살아간다. 모미A는 인기 BJ 마스크걸로 이름을 날리지만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정체의 은닉이든 꿈의 실현이든 성형수술을 거친 모미B(나나)는 새 삶을 산다. 그러나 동료 춘애(한재이)와 함께 또 한번 범죄에 연루되고 자신을 추적하는 경자(염혜란)의 습격도 받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모미C(고현정)는 감옥 바깥에 있는 지키고 싶은 존재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작전을 꾀한다.

모미에 대하여

모미는 여성주인공의 전형을 벗어난 캐릭터다. 외모가 정형화된 기준치에 못 미치지만 능력은 출중하다는 외모 지상주의 비판 서사의 클리셰와 달리, 모미는 유능한 직원도 미더운 동료도 아니다. 심지어 모미는 첫 범행 이전에도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스스로 망상 속에 빠져 산다. 하지만 모미는 시간이 흐르며 목숨까지 걸고 누군가를 돕는다. 또한 회피하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자기가 벌인 일에 책임을 지려 한다. 일견 모미의 일대기는 성장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미가 마냥 개과천선만 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모미는 여전히 자기방어의 수단일지라도 타인을 끝없이 폭행하고 괴롭히며 적잖이 주변인을 속이고 위증도 불사한다.

주인공 모미는 3인1역으로 표현된다. 3인의 배우가 필요한 이유는 극 중 모미가 감행한 성형수술 여부나 세월의 흐름 탓만은 아니다. 모미A와 모미B, 모미C는 놀랍도록 다른 인물이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부 다르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매번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 모미A는 직접적으로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하는 캐릭터지만 그를 따라가다 보면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여성 혐오 문제와 성범죄, 학내 집단 따돌림 등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가 섞여 들어온다. 반면 모미B와 모미C의 서사는 사회의 병폐를 적시하기보다 산재한 사회문제에 서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한 듯하다. 모미B는 사회가 보호하지 않고 문제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여성을 돕고 연대한다. 모미C는 모미A가 겪은 수많은 문제에 유사하게 노출돼 고초를 겪는 다음 세대의 여성을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폭력을 자행했던 전 세대의 여성과의 교섭과 화해를 준비한다.

모미의 닮은꼴들

모미를 둘러싼 이들은 모미와 어떻게든 닮아 있다. 껄끄럽고 조심스럽지만 모미A와 주오남(안재홍)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모미A와 오남은 현실에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스스로 존재감을 지운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만큼은 이목을 끌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두 인물은 좋아하던 상대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그들을 위협하는 음모를 주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심지어 각자가 행하는 첫 번째 범행은 수법과 자세가 동일하다. 주오남이 모미A의 집에 찾아가 “내가 이제 모미씨를 지키겠다”며 모미A에게 가하는 어떤 폭력은 다분히 논란을 야기했다. 이때 모미A는 순간 오남을 속인 후 오남이 핸섬스님(박근록)을 해치운 방식 그대로 오남을 처리한다. 모미A는 오남에게 “예전의 김모미는 죽었어요”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이 대사는 성형수술을 거친 모미를 일컫는 말이지만 에피소드의 끝에 이르면 더이상 외모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여러 한계 아래 살아가지 않겠다는 모미의 과단으로 들린다. 이미 자신을 죽인 모미A가 결기대로 생존하기 위해선, 전과 동일한 욕망에 잔류해 있고 이를 그릇된 방식으로 해소했던 오남까지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모미와 닮은 또 다른 인물 춘애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춘애는 “모미를 지키는 게 꼭 나를 지키는 것 같았다”고 말하며 모미B를 끝까지 지키려 한다. 둘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성형수술 이후 그토록 기피하던 남들의 시선에서 희열을 얻는다. 춘애 또한 자신의 마음이 닿지 않은 상대에게 끔찍한 지옥을 선사한다. 모미B는 춘애가 부용(이준영)으로부터 위협받을 때, 춘애는 모미가 경자로부터 위협받을 때 동일한 수법과 자세로 서로를 일시적으로 구한다. 모미B와 춘애는 외양을 포함해 서로가 보유한 욕망까지 일치한다는 걸 알아본 후 금세 단짝이 된다. 둘의 닮음은 이들이 각자 맞이하는 최후가 동일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드라마 <마스크걸>은 모미B와 춘애의 서사를 유사한 처지의 두 여성이 서로 연대하는 이야기로 각색하며 모미B와 춘애가 서로 돕기로 한 심리적 동인을 구체화한다. 둘은 일터에서 한평생 누리고 싶었던 현실 세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무대에서 한 의상을 입고 한몸에 누린다. 다시 없을 생의 환희를 짧게나마 함께 만끽한 존재라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더욱 특별해지고, 서로에게 감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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