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상 문법에 맞는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마스크걸’ 김용훈 감독
2023-08-31
글 : 정재현

김용훈 감독이 장편영화 데뷔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후 3년 만에 드라마 데뷔작 <마스크걸>을 세상에 공개했다. 김용훈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도맡은 두 작품은 포맷만 다를 뿐 모미와 춘애처럼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충족 불가능한 가연(可燃)한 욕망을 온몸에 두른 인간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사연 위에서 평행하게 달리던 캐릭터들은 어느 순간 모두 한 발화점을 향해 질주한다. 이들은 이미 들끓는 서사를 진압하기는커녕 스스로를 분신해 관객과 시청자들의 마음에 맞불을 놓는다. 그리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더 큰 화재로 번지도록 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여성이다. 개성 강한 원작의 본질은 유지한 채 자신만의 영상 문법으로 새로운 <마스크걸>을 창조해낸 김용훈 감독을 만나 작품의 이모저모에 관해 물었다.

- 처음 원작을 읽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

= 우선 흡인력이 좋았다. 그리고 미워하기 쉬운 캐릭터들의 집합인데 각 캐릭터를 쉬이 미워할 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모미를 포함해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계속 지켜보고 싶도록 궁금증을 부른다.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또 평범한 사람이 모종의 사건으로 생각지 못한 상황에 휩싸이는 플롯이 개인의 취향인가 싶기도 하고. (웃음)

- 전작에 이어 클로즈업숏을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 사실 클로즈업숏을 선호하진 않는다. 캐릭터의 감정이 돋보여야 배우에 근접한다. 촬영 전 꼼꼼한 콘티 작업을 통해 어떤 숏이 가장 적합할지 확정하면, 현장 촬영과 후반 편집까지 90% 이상 사전 콘티대로 진행하는 편이다. <마스크걸>을 위해 드라마의 첫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7시간 분량의 콘티를 모두 그렸다. 드라마쪽 관계자들이 모두 놀랐다.

- 콘티와 무관하게 현장에서 우연에 의해 탄생한 장면도 있나.

= 3화에서 김경자(염혜란)가 처음 주오남(안재홍)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은 현장에서 새로 태어난 장면이다. 김경자가 아들의 방에서 리얼돌과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은 원래 컷 바이 컷으로 분할해 찍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김경자가 시체를 오인하기까지의 감정을 시청자가 함께 따라가길 바랐다. 그래서 원테이크로 촬영하기로 했다. 그 촬영이 염혜란 선배의 대사가 있는 첫 촬영이었는데 테이크마다 감정을 놀랍게 변주하더라.

- 모미(이한별)와 주오남의 통근길 뒤로 늘 LED 전광판이 화면 안에 잡힌다. 모미가 지날 때는 여성 모델의 화장품 광고가, 오남이 지날 때는 남성 모델의 프러포즈 광고가 걸려 있는데.

= 각 캐릭터가 가진 욕망을 시각화해 시청자들이 모미와 오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바랐다. 모미의 경우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오남의 경우 사랑 고백을 포함해 대인간 소통 욕구가 큰 캐릭터다.

- 주오남이 상상 속에서 모미에게 일본어로 고백하는 장면이 화제였다.

= 오남은 한번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본 적이 없고 누군가와 내밀한 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캐릭터다. 경험이 없으니 모두가 경악할 만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고백받는 모미, 고백을 목격하는 직장 동료들, 시청자 모두에게 끔찍한 장면이지만 그 장면을 찍으며 오남이 안쓰럽단 생각을 했다. 오남이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삶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원작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다. 각색 시 설정한 대원칙이 있나.

= 영상 문법에 맞는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원작 팬들은 작품의 두드러진 주제를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여길 테지만, 내가 이야기를 각색하며 주목한 지점은 인간의 양면성이다. 모미가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자신의 일면을 감추는 행위인 동시에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행위다. 가면을 쓴 모미와 가면을 벗은 모미 중 누가 진짜 모미일지 사실 누구도 알 수 없다. 작품 속 캐릭터의 선악과 미추를 획정하는 기준점 또한 시점별로 달라진다. 그래서 <마스크걸>은 한 사람의 시점을 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모미의 시점으로만 이루어진 원작을 여러 캐릭터의 시점으로 다각화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모미는 스스로를 못생겼다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여성이다. 경자에게 최고의 악녀는 모미인 반면 모미에게 최고의 악녀는 경자다.

- 모미와 춘애가 서로 시기하는 원작의 내용이 오히려 <마스크걸>에선 장르적 트릭으로 활용된다.

= 각색을 하다보니 춘애와 모미가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칭꼴인 두 여성이 악을 쓰며 끝까지 싸운다면 춘애와 모미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다. 살면서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 그에게서 나만 아는 지점을 본다면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을 것이다. 춘애와 모미의 서사가 전면 각색되며 작품 후반의 이야기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원작의 모미는 춘애의 사망 이후 돌이 생활을 하다 경찰에 입건된다. 하지만 춘애와 깊은 감정 교류를 거친 모미라면 방황하지 않고 경찰에 곧바로 자수할 것 같았다.

- 수감 이후 흑백으로 찍힌 모미의 감옥 생활도 인상적이다. 흑백 화면 속 배우 나나의 얼굴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 자수 이후의 모미는 화려한 삶을 포기한다. 그런 모미의 선택을 보여주기 위해 흑백 촬영을 시도했다. 모미가 교도소 내에서 육탄전을 불사할 수 있는 이유도 그동안 자신이 좇던 외모 지상주의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나나의 연기가 참 출중했다. 지문에는 ‘씩 웃는다’ 정도로 쓰인 장면을 나나가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는데, 나나가 그 신을 압도해내서 모니터를 보던 모든 스탭이 글자 그대로 입을 틀어막았다. 처음 흑백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많았다. 내내 컬러풀한 드라마가 장시간 흑백으로 송출되면 ‘TV가 고장났나?’ 싶은 시청자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흑백 화면을 강행한 이유가 있다.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 나나 배우의 고전적 얼굴이 흑백 화면에 정말 잘 묻어났다.

- 오프닝 타이틀을 공들여 만들었다. 전작에 이어 조경훈 모션그래퍼와 작업했는데.

= 오프닝 타이틀의 컨셉을 잡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 크레딧은 작품에 참여한 이들에게 차려야 하는 예의다. 이 크레딧을 어떻게 하면 관객과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볼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한다. 넷플릭스의 그 어떤 오리지널 작품보다 우리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이 가장 길고 가장 많은 스탭의 이름이 들어갔다. 더불어 1화부터 쭉 작품을 감상하는 시청자들이 오프닝 타이틀에 숨겨둔 메타포를 발견했으면 한다.

- 원작과 달리 이번 드라마는 미모의 친부가 주오남이라는 설정을 적시한다. 이 설정이 이야기에 반영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었을까.

= <마스크걸>은 비극이고 아이러니가 가득한 이야기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느낄 법한 가장 큰 슬픔과 모순을 극 속에 편입하고 싶었다. 경자에게는 자신의 혈육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죽이려 들었다는 점이, 모미에게는 자신의 아이가 죽음의 위협에 놓여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는 점이 가장 큰 비극이자 아이러니일 것이다.

- 원작 속 모미는 핸섬스님 살해를 시작으로 연쇄살인마가 된다. 반면 이번 작품에선 주오남이 핸섬스님을 죽이도록 각색했다.

= 모미가 핸섬스님을 시작으로 주오남까지 살해하는 과정이 원작에 남다른 개성을 부여했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시청자가 거듭해 토막살인을 자행하는 주인공의 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모미 캐릭터를 순화했다기보다는 모미에게 이입할 여지를 더 남겨두었다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이 각색은 주오남의 비극을 위해서 필요했다. 주오남의 비극은 소통의 어려움 아닌가. 주오남이 모미를 위해 핸섬스님을 죽여도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 채 모미에게 살해되어야 오남의 비극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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