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감독 마크 잡스트, 팀 서덤, 에마 설리번, 조지프 쿠보타 블라디카 / 각본 맷 오언스, 스티븐 마에다 / 출연 이냐키 고도이, 아라타 맛켄유, 에밀리 러드 / 플레이지수 ▶▶▶
<원피스>의 실사화는 반가운 뉴스지만 전적으로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원피스>는 만화적 기호를 다루는 비상한 유머 감각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실적 세계를 비추던 20세기 영화사의 기억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주인공 루피의 여정은 서부극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반영한다. 주인공이 마을 공동체를 지킨다는 소명을 간직한 여타 소년 만화와 달리 처음부터 마을을 떠나는 루피는 뿌리내린 공동체를 수호하겠다는 자의식이 없으며, 그렇기에 부담스러운 도덕적 장광설도 내뱉지 않는다. 악당이 주인공의 마을을 찾아오는 소년 만화의 관습과 달리 루피는 고유한 질감과 개성을 갖춘 여러 장소를 직접 방문하며, 해적인데도 해적 사냥꾼, 해적을 혐오하는 도둑과 임의적인 동료의식을 빚는다. 이는 타자와 우연한 마주침을 반복하며 떠돌던 서부 사나이의 여정을 닮아 있다.
<원피스>가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구축됐다면, 실사판은 그러한 기억을 드라마의 문법에 맞게 재각색하며 새로운 미학을 낳았다. 애당초 고증하기 어려운 다종다양한 이능력과 액션은 현실적인 질감에 걸맞도록 약화됐다. 계획 따윈 안중에도 없는 길치들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클라이맥스 국면에서 일거에 결집시키는 오다 에이치로 특유의 분방한 공간적 오케스트레이션 또한 절제돼, 거추장스러운 동선이 간결하게 통합된 인물들은 세트장에서 미국 드라마를 연상하는 정적인 대화를 나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무리한 고증 대신 실사화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한 준수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