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지금은 본질에 충실해야 할 시기다',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2023-10-03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올해 부산영화제는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모두 자리를 비운채 치러야 하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영화제만큼은 잘 치러야 한다는 결의 아래 혁신위원회를 구성, 6월26일 임시총회를 통해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와 강승아 부집행위원장의 대행 체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태풍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배의 키를 넘겨받은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본질에 다시금 집중해 모든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며 흔들림 없는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 올해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은 어땠나.

= 심각한 상황들이 있었지만 영화제를 잘 치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프로그램은 정상 개최를 목표로 오래전부터 지속성을 가지고 준비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올해의 슬로건은 ‘함께 꿈꾸다’이다. 사실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됐던 문구라서 지금 상황이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 함께 꿈꾸는 영화제의 힘을 실감하는 중이다.

- 어려움 속에서도 69개국 209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전반적인 행사 규모는 축소된 대신 상영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 말했다시피 프로그램 자체는 꾸준히 준비중이었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어려움은 기업 후원을 비롯한 예산이 일부 축소된 점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꾸로 영화제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도 같다. 포럼과 같은 행사는 어쩔 수 없이 타격을 입었지만 관객과의 만남,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걸 중심으로 최대한 내실을 다지고자 노력했다. 지난해에 비해 상영 편수가 줄었지만 200편 아래로 떨어트리지는 않겠다는 기준이 있었다. 특히 핵심이 되는 경쟁작 편수는 줄이지 않았고, 거장 감독들의 영화가 포진한 아이콘 섹션은 오히려 편수를 늘렸다.

- 배우 송강호가 호스트로 개막식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없이 치르다 보니 게스트들을 맞이할 분이 필요했다. 명예 이사장을 구하는 방안도 나왔는데 실무상 어려움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혁신위원회 차원에서 특별 호스트를 찾아보자는 방향으로 정리되었고 1순위가 송강호 배우였다. 워낙 부담스러운 자리라 처음에는 주저하셨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어려울 때 영화제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르 수락해주었다.

- 지난해 양조위에 이어 올해는 주윤발이 아시아영화인상에 선정됐다.

= 의도해서 지역 안배를 한 건 아니고 적절한 타이밍에 마땅히 받아야 할 배우를 찾다보니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주윤발은 뛰어난 배우 이고 한 시대의 아이콘이다. 의외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많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이번 수상을 통해 의미 있는 방문을 진행할 수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배우 유덕화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황제>가 올해 폐막작이다 보니 중화권 영화에 치우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편수로는 그렇지 않다.

- 그 밖의 올해 주요 게스트를 소개해준다면.

= 우선 ‘액터스 하우스’에 윤여정, 한효주, 존 조, 송중기 배우가 눈에 띌 것 같다. 베르트랑 보넬로, 뤼크 베송 감독이 초청되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마구치 류스케 등 일본 감독들과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히나, 히로세 스즈 등 일본 배우들도 대거 방문할 예정이다. 특별전으로 초청된 조코 안와르 등 인도네시아 감독들도 많다. 한국 감독과 배우들은 대부분 온다고 보면 된다. 아무래도 초청작 수가 줄어든 만큼 전체적인 게스트 수가 늘진 않았는데 주목할 만한 게스트들은 더 충실하다.

- 영화제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특별 프로그램들이다. 올해는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 스포라’ , ‘인도네시아 특별기획 프로그램: 인도네 시아영화의 르네상스’가 관객들과 만난다.

= 오랫동안 후보에 거론되던 아이템들이었다. 마침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하에 올해 특별전으로 잡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경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를 시작으로 코고나다 감독의 <파친코> 등 북미에서도 의미있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호평을 받으며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프로그램 결정은 순조로웠던 반면 미국배우조합 파업이라는 변수가 생겨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배우들이 영화 홍보를 할 수 없는 제약이 있는데 현재 협의 중이다. 일단 한국을 방문하는 것까지는 모두 합의가 됐다. 인도네시아 특별전의 경우 현재 동남아시아 에서 가장 각광받는 영화시장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다. 산업 규모도 크고 지속적으로 발전 중이며 좋은 감독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가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 무엇보다 지금 젊은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영화다.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로맨스 등 다른 방식으로 포장하지 않고 실질적인 고민들을 마주한다.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는 최근 한국영화에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 올해도 OTT 섹션인 온 스크린에는 시리즈뿐 아니라 영화도 프리미어 작품이 대거 초청됐다. 부산영화제에서 작품을 첫 공개하는 게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 짧은 기간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편수는 지난 해와 비슷한데 OTT에서도 중요 작품들을 부산에서 먼저 공개하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인식된 것 같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전방위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올해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신청 업체가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상산업의 변화를 유연하고 효과 적으로 끌어안는 것도 영화제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 지난 9월13일 국내 개최 영화제들이 공동성명서를 통해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했다. 만약 지원예산이 철회되면 부산영화제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 영화제 예산을 이렇게 줄이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제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역축제로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부에선 늘 K콘텐츠, K컬처를 말하는데 실질적인 지원은 반대로 줄이는 형국이다. 영화제에 대한 지원은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국내 개최 영화제들과 발을 맞춰 대응해나갈 것이다.

- 혁신위원회가 정관 개정 등을 논의하고 있다. 상황은 어떤가.

= 12월 임시총회를 목표로 조직 쇄신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관 개정을 논의 중이다. 일정은 확정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여지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언론에 무언가 공개하기 어렵다. 지금은 오직 영화제의 안정적인 개최에 집중하고 있다.

- 올해 영화제를 치르는 목표가 있다면.

= 수치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영화제가 무사히 치러졌다는 전체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부산영화제는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이고 올해 영화의 경향을 한자리에서 체감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상황이 어려워져도 축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 결국 지금은 본질에 충실해야 할 시기다. 올해의 성과는 우선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마치고 난 후 되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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