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바론이 지은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로봇 드림>은, 고독에 인이 박인 뉴요커 개가 반려 로봇을 집으로 들이며 시작한다. 개와 로봇은 동거를 택한 이후 서로의 삶에서 다시 마주하기 어려울 찬란한 우정을 나눈다. 2010년 처음 원작을 읽고 단숨에 매료된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2018년부터 영화화 작업에 돌입했다. 영화는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1990년대에 뉴욕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자신의 거주 경험보다 10년 앞선 뉴욕을 그리며 도시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길 바랐다. “도시까지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고 확신한 순간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영화 속 뉴욕은 프로타고니스트인 동시에 안타고니스트다. 뉴욕은 이방인을 환영해주는 도시고, 무슨 일이든 가능한 도시지만 동시에 생존해내야 하는 정글 같은 거친 도시다. 영화 속 개와 로봇의 재회를 막는 것도 결국 도시의 규칙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 로봇과 개 또한 여름의 끝에 불의의 사고로 결별한다. 로봇은 기아(棄兒)이자 미아(迷兒)가 되어 우두커니 또 하릴없이 개를 기다린다. 로봇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다시 돌아올 친구를 꿈으로 그리는데, 로봇의 공상은 달콤하고 뒤이어 제시되는 현실은 쌉싸름하다. 재회의 환희로 가득 찬 몇 차례의 공상 시퀀스에 관해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사실 전업 관객으로서 공상 시퀀스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답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관객을 향한 감독의 배려심과 감독 본인이 믿는 시네마를 구현하고자 하는 직업정신의 혼합물이 그로 하여금 로봇의 꿈을 영화에 포함하도록 추동했다. “제목에도 ‘드림’이 들어가는 만큼 아름다운 공상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관객을 속일 수 없었다. 나에게 시네마란, 잠에서 깬 상태에서도 꿈을 꾸는 행위다. 관객이 <로봇 드림>을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감상했으면 한다.”
<로봇 드림>은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이 사랑해온 영화들의 총람이기도 하다. 다카하다 이사오가 연출한 TV시리즈를 보며 자랐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그가 이제야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시네마가 매개한 필연이다. <로봇 드림> 속에는 뉴욕 체류 당시 비디오 렌털숍 킴스비디오에서 영화의 지평을 넓혔던 경험도, “내 잠재의식을 들여다보는 듯해” 사랑한다는 미셸 공드리의 영향도 적잖이 녹아 있다. 시네마를 향한 따뜻한 경애가 잔뜩 묻어나는 영화를 만든 그에게 로봇 친구가 생긴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냐는 질문을 건넸다. “함께 영화관도 가고 산책도 하고 미술관에도 갈 것이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맛집도 찾아가고,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할 것이다. 사실 나와 아내가 서로의 드림 로봇이다. 누구든 따뜻한 마음만 갖고 있다면 주위에서 자기만의 드림 로봇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정수와 꼭 닮은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