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다른 이의 시선을 빌려야 했던 이유는, ‘괴물’ 리뷰
2023-11-30
글 : 이자연

<괴물>의 구성과 인물에 관한 고찰

일본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콰르텟>으로 친숙한 사카모토 유지 작가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브로커> 등 가족의 얼굴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났다. <괴물>은 이유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보온 도시락에 돌을 채워두는,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미나토를 수상하게 여긴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미나토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추궁하고, 담임교사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아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미나토가 같은 반의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 가해자라는 것.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영화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두 번째 장의 문을 연다. 이번엔 담임교사 미치토시의 관점이다.

한 사건을 목도한 세 관점

미치토시는 책에서 오타를 발견할 때마다 출판사에 메일을 보낼 만큼 집요하고 냉정하지만, 짓궂은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을 내내 걱정할 만큼 다정하기도 하다. 그런 그가 폭력을 저질렀다는 미나토의 발언은 많은 것을 뒤바꾼다. 학교는 학부모와 교육청의 분노를 일단락시키기 위해 미치토시에게 근신 처분을 내리는데 그에게 소명의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 집 앞까지 기자가 찾아오고 진실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그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앞서 사오리가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미나토에게 벌어진 일을 추적해 나간다면, 미치토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나토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파헤쳐 나간다. 이 시점에서 독특하게도, <괴물>은 나선형 계단을 걷듯 계속 다른 시점으로 전환하며 사건의 숨겨진 국면을 마주한다. 엄마 사오리, 담임교사 미치토시, 그리고 두 소년 요리와 미나토까지 총 3가지 관점으로 동일한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한칸 한칸 계단 위로 올라설 뿐인데 어느새 반대편 벽면에 서게 된 것처럼, <괴물>은 관객의 시선까지 시나브로 이동시킨다.

두 소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백하는 마지막 3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들만의 별세계를 조명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숲속의 폐전차는 둘만의 아름다운 아지트가 되고, 그곳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는 외로웠던 아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된다. 항상 자기 판단을 확신하고 타인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던 요리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자신이 지닌 불안을 드러낸다. 아들 머리가 돼지 뇌라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언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학교 친구들이 자신에게서 병을 옮지 않을지 걱정할 거라는 지레짐작이 그렇다. 결국 어른들의 시선으로 관찰된 모습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마지막 기회로서 3부는 더 직접적인 전달 방식을 취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차오르는 날에 호른을 불라는 교장 선생님의 가르침은 발화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아우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여백의 위치가 각기 다른 세개의 레이아웃을 한데 겹쳐놓으면서 영화 전반에 걸친 크고 작은 의문이 해소되고 마침내 관객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다.

✽ 진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질문은

“괴물은 누구게?” 영화에서 두 소년이 흥얼거리는 이 노랫말은 <괴물>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다. 학교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많은 어른들은 각자의 결핍을 껴안은 채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괴물을 찾는 건 무의미하다. 모두가 조금씩 괴물처럼 이상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손녀를 잃은 슬픔을 못 이긴 교장 선생님은 지나가는 여자아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사오리는 미나토에게 과도한 평범성을 요구한다. 담임교사 미치토시는 “남자가 돼서”로 시작하는 말을 달고 살고, 동네 어른들은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아무런 저항 없이 믿는다. 이렇듯 다소 기묘한(혹은 기괴한) 구석을 지닌 어른들은 관객에게 이들이 선과 악 중 어느 쪽인지 구분하도록 유도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의 진실을 가려버린다. 두 아이가 어떤 상처를 지니고 있는지, 어른들로부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학교 폭력의 진위만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빠르고 간단하게 선악 관계만 살피려는 관객의 조급함은 영화가 의도한 관객의 실수이다. 그리고 관객은 자신의 실수를 기점으로 <괴물>에 각기 다른 시점의 3부 구성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묘사하는 어린이들에겐 철부지가 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제도적·규범적 보살핌에서 제외되거나 부모가 떠난 빈자리에 남겨진 채 자신들끼리 뒤엉켜 의지하고, 빈곤과 학대를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어려서부터 짊어져야 할 게 많은 아이들은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보다 빨리 자란다. <괴물>의 두 소년도 마찬가지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미나토는 엄마로부터 “꽃 이름을 잘 아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는 부류의 말을 들어왔고, 요리는 아버지의 폭력 아래서,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 아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의도치 않게 일찍 철든 아이들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더이상 떼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빠르게 어른의 눈치를 본다. 이 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리는 극 중 아이들은 쉽게 자기 이야기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도 어린이 당사자에게 그들의 마음 상태를 직접 질문하지 않는 세상에서 말문까지 닫아버린 아이들을 위해 영화는 차라리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빌리기를 선택한다. 마치 한 사건을 목도한 이곳저곳의 CCTV를 그러모으듯, 어른들이 진작 알아줬어야 했던, 혹은 관객이 먼저 눈치챘어야 했던 진실을 마침내 공개한다. 그러니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다소 순진무구하게 들린다. 누가 괴물인지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아이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봐줄 어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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