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소녀>의 남아름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카메라 앞에 세운다. 카메라를 든 딸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아버지, 여성운동에 앞장선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앞선 세대인 부모님을 향해 한길로 수렴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도박 중독에 빠진 <위험사회>의 영길(박건우)은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꾸리려는 평범한 꿈을 가진 청년이다. 룰렛 게임의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트럭을 전당포에 맡기면서 그는 수렁으로 발을 깊숙이 들인다. 지난 6월과 9월, 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먼저 만난 극영화 <위험사회>의 김병준 감독과 다큐멘터리 <애국소녀>의 남아름 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두 감독의 공통분모는 경콘진의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을 받아 올해 첫 작품을 관객 앞에 내놓은 신인감독이라는 점이다. 인터뷰는 수줍은 웃음으로 서로에게 답변 순서를 양보하며 시작되었지만 이내 영화에 관한 진지한 말로 채워졌다.
- <애국소녀>는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장편 대상을, <위험사회>는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감독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경콘진의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작이다. 제작지원에 선정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남아름 <애국소녀>는 2022년에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 그해 봄에 대선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상황이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어 서 정치적 의견을 공유하는 일 자체가 터부시되는 분위기였다. <애국소녀>는 서로 다른 정치 의견을 가진 부모님과 다음 세대인 내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중요하게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다른 세대, 다른 정치 성향의 사람들도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지지받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의성이 잘 맞아떨어졌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라서 선정되었다고 생각했다.
김병준 듣고 보니 내 경우도 시의성 면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위험사회>는 2021년에 지원받았는데 그때 한창 비트코인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던 때였다. 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당시 사회 분위기와 이슈에서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소재라고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 <위험사회>의 카지노 장면은 촬영에 제약이 많았을 것 같다. 그 밖에 강원도의 설경과 드론으로 촬영한 두문동재 장면 또한 돋보인다.
김병준 카지노 장면은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실제 카지노에서 촬영 허가를 내주지도 않을 것이고 협조해준다고 해도 카지노측에서 좋아할 내용도 아니니까. 고민 끝에 천장이 높아야 하니 예식장을 섭외했고 룰렛 세트는 절반만 빌려 촬영했다. 영화에 나오는 두문동재는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에 나오는 장소다. 카메라를 둘 곳을 찾아서 촬영감독하고 장비를 가지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웃음) 차선책이 드론 촬영이었고 학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찍을 수 있었다.
- 영화 초반과 중반은 장르영화처럼 긴장감을 주더니 후반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김병준 총 24회차 촬영이었는데 찍고 싶었던 부분을 제대로 찍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과 제일 잘 맞는 것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장르의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전당포나 카지노같이 관습적으로 장르영화처럼 여겨질 만한 공간이 등장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성장 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
- <애국소녀>에서 축약하는 한국사의 세 키워드는 민주화 운동, 여성 해방 운동, 세월호 참사다. 이 설득을 강화하는 건 부모님이 민주화 운동과 여성 해방 운동에 앞장선 분들이라는 점이다. 가족을 카메라 앞에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남아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시작했다. (웃음) 첫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전의 내 꿈은 항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아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질문과 고민을 카메라 앞에서 풀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주제도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카메라를 들고 찾게 될 현장에서 나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었다.
- 부모님의 딜레마에는 정리된 언어로 명확하게 접근하는 반면 본인의 딜레마 앞에서는 혼란스러워하는 면이 보인다. 그때의 혼란과 고민은 지금 어디쯤 와 있나.
남아름 카메라를 든 나를 향해 말하는 부모님을 관객이 작품 속 남아름의 처지에서 보면서 각자가 어떤 선택과 답을 할지 함께 고민했으면 했다. 이 작품의 끝은 바로 그 혼란에 대답하기 위한 시작이 아닐까.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든다면 내 다른 작품은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거다.
- 영화를 촬영하는 데 제작비 지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경우가 있나. 또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말해준다면.
김병준 너무 많지만 우선 제작지원에 선정되면 어떤 면에선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콘진은 1차 서류 심사를 거쳐서 2차 발표를 하고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이 치열하기 때문도 있고. 그래서 제작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스탭에게 금전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할 다른 감독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자면, 나는 한번 떨어지고 두 번째 지원에서 선정되었다.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다. 포기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으면서.
남아름 제작비 지원은 내 영화가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응원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정받았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어떤 곳에서 한번 제작지원을 받으면 다음에 다른 곳에서도 지원받을 기회가 열리는 것 같다. <애국소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됐다. 기획개발은 2019년에 시작했고 다음해에 첫 제작지원을 받아서 그 예산 내에서 작품을 완성하려 했는데 촬영이 길어져버렸다. 그래서 2022년에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게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 창작자의 관점에서 다양성영화를 만드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남아름 다양성영화로 분류된다는 건 관객의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다양성영화, 독립영화는 얼마든지 지금의 자리에서 더 밀려나고 외면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양성영화에서는 대기업 제작 영화에서 다루지 못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상업적 성공이 뒤따르지 않더라도 숫자로만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다양성영화를 만드는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