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아니 근데 진짜 이 영화들이…?, 2023년 개봉작들로 돌아본 특이하고 재밌는 별별 어워즈 ①
2024-01-05
글 : 임수연
글 : 최현수 (객원기자)

시청률만으로 화제성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예매율과 관객수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영화의 파급력이 있다. 숏폼이 영화의 입소문을 견인하고 마니아들의 N차 관람이 장기 상영으로 이어지는 최근 극장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박스오피스 차트 밖의 지표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올해 극장가를 되돌아보며 특이하고 재밌는 척도로 별난 시상식을 개최해보았다. 이 리스트에 오른 작품들이 2023년 영화계의 풍경을 대변한다.

(기준: 구글코리아 올해의 검색어)

어떤 영화에 관심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하는 것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검색된 영화는 <오펜하이머>이다. 개봉주 검색량은 2023년 개봉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심도를 기록한 수치에 해당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서울의 봄> <범죄도시3> <엘리멘탈> <더 퍼스트 슬램덩크> <콘크리트 유토피아><인어공주>는 오히려 개봉 2주차에 더 높은 검색량을 기록했다. 특히 <엘리멘탈>은 개봉 1~2주차에 화제성이 집중되는 여타 작품과 달리 5주차까지 검색량이 더 늘어나는 ‘역주행’ 현상을 보였다. IPTV 및 VOD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다시 관심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일반적이지만, <범죄도시3>는 개봉주보다 IPTV에 풀렸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검색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년 내내 버즈량이 꺼지지 않았던 영화다.

유튜브 검색 트렌드는 구글과 약간 다른 양상을 띤다. <오펜하이머>가 개봉주 유튜브에서 기록한 관심도는 2023년을 통틀어 가장 높고, 그 수치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화제성은 개봉주에 집중됐고 그 열기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봉 3주차까지, <엘리멘탈>은 개봉 5주차까지 더 높은 검색량을 기록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영화의 인기 대비 유튜브에서 화제성이 크지 않았던 반면, <스즈메의 문단속> <엘리멘탈>은 2023년 내내 유튜브에서 꾸준히 소환된 작품이다.

틱톡과 영화는 하이프(Hype)의 관계다. 본래 ‘과대광고’라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최근 트렌드를 형성하고 급상승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틱톡 크리에이터들은 화제가 되는 영화를 찾아 콘텐츠를 만들고 반대로 영화는 틱톡의 하이프를 받아 다시 성장한다. 이 과정이 사후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틱톡에서 조회수 상위권에 있는 영화라면 작품의 ‘1분 요약’ 혹은 ‘관람 전과 후’ 콘텐츠는 필수다. <서울의 봄>을 보고 배우 황정민이 미워졌다는 예비군들의 분노,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주문을 외우며 문을 닫기 시작했다는 밈, <엘리멘탈> 관람 후기를 MBTI에 빗대어 나타난 F와 T 성향의 상반되는 반응은 이미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반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하이프에 편승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한다.

O.S.T나 배우간의 케미도 하이프 공식 중 하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O.S.T 커버 영상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엘리멘탈>의 O.S.T인 라우브의 <Steal the Show>는 본편의 해시태그보다 높은 1억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O.S.T인 요네즈 겐시의 <地球儀>도 라이브 영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극영화에서는 배우간의 케미에 집중한 콘텐츠가 두드러진다. 입소문으로 의외의 흥행을 거둔 <30일>은 베트남을 중심으로 강하늘-정소민의 커플 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2차 콘텐츠들이 재생산됐다. 마찬가지로 <밀수>도 동남아 관객을 중심으로 김혜수-염정아의 걸크러시 조합에 무대 인사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관객들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여”로 시작하는 소타의 주문을 외며 문을 닫거나, <엘리멘탈>의 캐릭터들을 MBTI 표로 만들어 대화를 나눈다. 혹은 <엘리멘탈>을 보고 O.S.T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놀이는 다시 틱톡에 올라오며 순환은 계속된다. 틱톡이 하이프될 영화를 고르고 콘텐츠를 찍으면 영화는 다시 성장한다. 그리고 관람 경험은 다시 틱톡으로 향한다. 하이프의 제곱은 이어진다. 다음 영화가 대체할 때까지.

아이맥스 흑백 아날로그로 촬영한 최초의 영화인 <오펜하이머>가 아이맥스 관객수 1위를 거머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도 스크린X와 아이맥스 등 대형 화면 위주로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올해 많은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도 섬광과 진동을 통해 재난 장면을 실감나게 느끼기 위해 4D 상영관을 찾는 관객이 많았다. 오히려 흥행 실패에도 20만명 가까운 관객이 특별 상영관을 찾은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눈에 띈다. 명단 속 다른 영화들의 전체 관객 대비 특별상영관 관객 비율이 평균 8%인 데 비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12.5% 수준이다. 스펙터클을 중시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팬들의 특별상영관 선호 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선 스크린에 많이 걸면 관객수도 자연히 따라오던 시절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고 관객의 선택이 까다로워지면서 객석을 잘 채우는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의 간극은 이전보다 선명해졌다. 개봉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유의미한 평균 좌석판매율을 산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올해 가장 표를 잘 판 영화는 <서울의 봄>이라 할 수 있다. 여름 시즌 영화 중에서는 <밀수>의 선전이 눈에 띈다. <비공식작전>은 배정 좌석 대비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고, 역으로 좌석점유율(2.5%) 대비 좌석판매율(14.7%)이 낮아 극장 및 배급사가 기대한 성적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오펜하이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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