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1년에 영화를 300편씩 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영화를 300번 보는 쪽에 가깝다. 한 작품만 지독하게 물고 뜯고 즐기며 끝장을 보는 자가 바로 오타쿠다.
올해 CGV에서 가장 많은 반복 관람을 낳은 영화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스즈메의 문단속> <엘리멘탈> 등 애니메이션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올해 최고 흥행작 <서울의 봄> <범죄도시3>도 N차 관람의 힘을 받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65일 상영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월4일 개봉 이후 꼬박 1년 동안 극장에 걸리는 진귀한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엘리멘탈>도 장기 상영에 성공했으며, <밀수> <오펜하이머> 역시 특별관 수요와 함께 석달 넘게 스크린에 걸렸다.
영화 티켓을 모으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 포토 티켓으로나마 기억을 물질화시키는 관객도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오타쿠 픽’답게 2023년 가장 높은 포토 티켓 발행량을 기록했다. <스즈메의 문단속> <엘리멘탈> 등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올해 부진했던 마블 영화의 체면을 세웠다. <범죄도시3>는 마석도(마동석)라는 아이코닉한 캐릭터에 힘입어 소장하고 싶은 영화가 됐다.
<씨네21>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론가 평점이 곧 관객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사실 관객수를 점치기에 훨씬 확실한 지표는 <씨네21> 전문가 평점보다는 CGV 실관람객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골든에그지수다.
올해 가장 높은 에그지수를 기록한 영화는 <서울의 봄>이다. 역주행에 성공한 <엘리멘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물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처럼 이미 검증된 프랜차이즈도 관객이 비싼 티켓값을 지불할 만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예상 밖의 결과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처럼 마니아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올해 최다 관람된 영화는 양조위 주연의 <무명>이 차지했다. 총관객수 2만2천여명 중 48장의 티켓을 책임 진 관객이 있었다. <무명>이 사전 시사회를 포함해 총 35일 동안 상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하루에 1.4회꼴로 감상한 것이다. 중국 스파이물을 유독 좋아하는 관객이었을까, 혹은 양조위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을까.
극장에 예고편을 띄우고 옥외 광고에 포스터를 도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감독과 배우, 스탭이 직접 발로 뛰는 홍보 활동이다. 지난해 이정재, 정우성의 브라운관과 유튜브를 넘나드는 활약이 <헌트>의 흥행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화제성 견인을 위해 필수적인 코스가 됐다. 올해 가장 많은 무대 인사를 진행한 영화는 <서울의 봄>으로, 무려 217개관에서 관객을 만났다. 주연배우 정우성은 217회 무대 인사에 모두 참석하며 영화계에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다. 많은 독립영화들이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직접 영화 팬들과 소통하며 장기 상영과 입소문을 기대한다. <비밀의 언덕>은 올해 GV를 무려 30회 진행했다. <어른 김장하>는 28회, <너와 나>는 24회로 집계됐다. 한편 TV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영화는 <밀수>다. 주조연 배우들과 류승완 감독, 장기하 음악감독이 각개로 흩어져 11개의 방송((<전지적 참견 시점> <살롱드립> <박하선의 씨네타운> <놀라운 토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최화정의 파워타임> <FM 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배성재의 텐> <신지혜의 영화음악> <침착맨>)에 출연했다. <아이유의 팔레트>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8개 방송에 출연한 <드림>팀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