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토크]
[Masters’ Talk] “어느 장면이든 10번 이상 촬영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제훈 배우를 만나다 ①
2024-01-05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크리스마스를 앞둔 2023년 12월21일, 갑작스레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며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내내 따뜻한 겨울을 보내던 한국 사람들도 낯선 추위에 몸을 떨던 그때,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 재개봉을 기념해 내한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신만의 속도로, 그러나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각본상을 받았고, 2022년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맞이하게 된 2023년 12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동을 멈추지 않고 다시 한국 극장을 찾아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빨간 ‘사브 900’을 운전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소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의 외도를 알아차리지만 그에 관해 제대로 묻지 못한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내는 지주막하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뒤 가후쿠는 연극 연출을 위해 히로시마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줄 젊은 운전기사 마사키(미우라 도코)와 여러 국적의 배우들을 만난다. 그들과 소통하며 가후쿠는 오랜 시간 외면해온 오토와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씨네21>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내한에 맞춰 ‘마스터스 토크’ 자리를 마련했다. 대화에 나선 한국의 영화인은 이제훈 배우다. 시네필이자 자칭 하마구치 류스케 ‘덕후’인 그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시나리오와 형식, 연기 연출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꼼꼼하게 던졌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그에 대한 세심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긴 러닝타임을 체감하기 전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이제훈 배우의 대화는 신과 숏 구석구석을 살피며 다시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이제훈 제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으로 감독님과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라 정말 떨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감독님과 만나게 된 배우 이제훈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일본어로)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감독한 하마구치 류스케입니다. 오늘 이제훈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훈 <드라이브 마이 카>가 2021년에 개봉했는데 관객들의 성원으로 재개봉(2023년 12월20일)하면서 한국에 오시게 됐는데 어떠세요?

하마구치 류스케 한국의 영화 팬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때와 다른 점은 정말 춥다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인상입니다.

이제훈 제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작품 중 처음 본 영화는 <아사코>입니다.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영화에 푹 빠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웠던 영화였습니다. <아사코>에 이어 이번에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형식에 있어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가후쿠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아내 오토와의 관계가 보입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오토의 외도로 가후쿠가 상처받는데요. 영화가 시작한 지 40분쯤 지나 가후쿠가 오토를 잃은 아픔을 가진 채 이야기가 다시 시작하는 타이틀을 맞이했을 때 충격이었습니다. <아사코>도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서 타이틀이 나오거든요. 주인공의 전사 이후 영화가 다시 시작하니까 더 깊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방(일본 방송 용어로, 타이틀을 띄우기에 앞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가리킴), 즉 타이틀이 나올 때까지의 오프닝 신이 일반적인 영화보다 긴 건, 영화에서 좀처럼 장을 나누는 게 어려워서입니다. 영화에 따라 ‘몇장’이라고 인터 타이틀을 넣어 여기부터 전개가 명확히 바뀐다는 신호를 관객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든 이를 드러내지 않고 신호를 보내는 게 어렵죠. 그래서 타이틀이 뜰 때까지 시간을 길게 끌었습니다. 메인 스토리의 시간은 <아사코>도 <드라이브 마이 카>도 오프닝으로부터 2년 후인데요. 메인 스토리가 펼쳐지기 전까지 상황 설정을 다 끝내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영화를 구분해 달라고 관객에게 신호를 줬습니다. 영화는 관객과의 공동 작업이고 관객과 함께 영화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훈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타이틀을 늦게 띄우는 걸 염두에 둔 건지 궁금하네요.

하마구치 류스케 여기까지 정보를 주고 여기서부턴 감정을 제대로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형식을 생각했습니다. 최근 이제훈씨도 영화를 연출한다고 들었는데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시나요.

이제훈 네명의 한국 배우와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기로 기획하고 네편 중 한편을 제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는데요(왓챠 오리지널 영화 <언프레임드> 중 단편영화 <블루 해피니스>를 연출했다.-편집자). 그 경험을 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앞으로 감독 말을 누구보다 잘 듣겠다. 첫 번째 교훈의 이유는 직접 경험하고 나니 저는 아직 그릇이 안된다는 걸 깨달아서이고, 두 번째로는 감독이란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을 내리는 고통스러운 위치란 걸 느껴서입니다. 다시 배우의 입장으로 돌아와 감독을 바라보면서, 감독이 원하는 주문을 다 들어주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이야, 그런 배우가 있으면 정말 감사하죠.

배우가 대사의 의미를 알려주는 순간

하마구치 류스케 한편으론 배우로서 경험이 많으니까 ‘난 이런 감독은 안돼야지’란 생각을 한 적 있을 것 같아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라든지 존 카사베티스 감독처럼 배우 출신 감독은 카메라 뒤에만 있던 감독과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떠셨나요.

이제훈 배우에게 자율성을 주고 싶었어요. 배우가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나더라도 카메라를 이동하며 따라가는 게 첫 번째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쓴 대사를 배우가 정확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해진 대사가 있음에도 감정이 발동해 대사가 겹치거나 시나리오에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고 배우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연출자로서 계산이 분명 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는 결과물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짧은 이야기고 촬영도 너무 힘들었으나 연출하면서 기뻤던 순간은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볼 때였어요. 배우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제가 쓴 이야기의 부족한 부분을 배우들이 채워주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감독으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배우가 예상치 못한 순간을 포착해 보여줄 때가 아닐까요. 그런 순간이 감독님에게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지금 얘기를 들으니까 제훈씨는 역시 연출을 계속하면 좋겠어요.

이제훈 이에 이에! (웃음)

하마구치 류스케 저는 연기에 대해 잘 몰랐고 또 모르는 채 영화를 찍은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에 익어서 연기가 정말 힘들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되도록 제훈씨가 말한 것처럼 배우들을 대하고 싶습니다. 제게도 둘도 없는 순간은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상상하지 못한 의미를 배우가 담아줄 때입니다. 그때 가장 감동합니다. 뭐랄까. 배우가 진짜 대사의 의미를 알려주는 순간이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면 ‘오늘 좋은 장면을 찍었구나, 이건 좋은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제훈 <드라이브 마이 카> 마지막에 가후쿠와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에 가서 가후쿠가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하면서 미사키를 포옹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배우가 작품에 깊게 빠져들어 배역과 일체화됐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어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가후쿠와 같이 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마구치 류스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니시지마도 대단히 기뻐할 것 같습니다. 같은 배우가 그렇게 자신의 연기를 봐준다면 니시지마도 자신의 연기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신은 이틀 동안 힘들게 촬영했습니다. 영화에 쓴 장면은 이틀째 두 번째 테이크인데요. 첫날은 좀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니시지마와 여러 말을 나누면서 “가후쿠의 얘기지만 니시지마 본인 인생의 무언가를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임한 촬영이었기에 니시지마가 갖고 있는 상처나 감정이 틀림없이 영화에 담겼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현장에서는 울지 않았으나 처음 상영할 땐 조금 울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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