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삶은 책기둥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생의 목격자 양천도서관이 일러준다.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헛수고와 헛걸음으로 우연 앞에 나를 풀어둘 것.” 에세이, 인터뷰,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논픽션 글쓰기를 해온 은유 작가가 자신을 만들어온 책읽기 앞으로 돌아가 글을 적었다.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읽는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을 지탱해온 책들부터, 오늘날의 개인과 사회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책들까지 빼곡한 책 편지 묶음이다. 책에 기대 삶을 목격한 고통과 기쁨을 때로 소박하게 때로 격렬하게 풀어내는 일은 은유 작가의 매력일 텐데 이 책 역시 그렇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내적 분투의 기록인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의 문제의식에 여전히 붙들려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상념을 첫글에서 만난다. 그 한복판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아버지가 홀로 지내시는 집의 풍경이 있다.
책뿐 아니라 영화도 중요한 순간들에 생각에 사로잡는다. 어린이 수영 선수가 폭력을 통해 훈련을 이끄는 코치를 만나면서의 이야기를 다룬 정지우 감독의 <4등>의 글 제목은 ‘해하지 않는 삶’. 코치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가는 만큼이나 “누가 준호 엄마를 저렇게 만들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들(영화 속 어른)이 체벌=메달=성공의 등식을 의심하고, 다른 방식의 다른 배움과 성장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자신이 왜 맞았는지 질문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당한 체육계 폭력의 실상을 하나하나 되짚어서 글을 쓸 수 있었다면”이라는 슬픈 가정법의 세계를 떠올리는 대목은, 왜 영화와 책에 대해 ‘편지’의 형식을 빌린 글쓰기가 필요했는지 알게 한다. <해방의 밤>은 책이나 영화 속 ‘그들’에 대해 말하는 듯하지만, ‘당신’에게 직접 닿기를 원한 수많은 질문들을 담았다. 휘트먼의 시집 <풀잎>에 대한 글에서 말하듯 술술 읽히는 책뿐 아니라 “안 읽히니까 읽어야죠” 하는 마음으로 집어드는 책들까지가 살뜰하게 우리의 인식과 삶을 바꾸어낼 것이다. 이 책은 그 증명이다.
303쪽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놓인 이 세계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라는 사유를 멈추지 않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