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
2024-02-20
글 : 이다혜
사진 : 최성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지음 / 윤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어린 왕자> <전시 조종사>를 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아내 콘수엘로와 15년간 주고받은 168통의 편지를 책으로 묶었다. 장정이 아름다운 이 책의 목차는 1930년부터 1944년에 이르는 동안 ‘남아메리카, 프랑스, 북아프리카’, ‘뉴욕’, ‘북아프리카, 사르데냐’로 나뉘어 있다. 전시 조종사로 살았던 생텍쥐페리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콘수엘로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동시에 비행사이자 작가의 아내였고, 남편이 속한 세상에서 자주 외면받는, 바람기 있는 남편 때문에 쉼 없이 고통받던 여자였다. 이 책에서는 세상에 대해 절망하던 전쟁 중의 생텍쥐페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어린 왕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그 글이 콘수엘로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이 문서의 묶음. “옛날 옛적에 한 아이가 보물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 보물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팔로 그 아름다움을 안고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웠지. 그래서 아이는 우울해졌어” 같은 대목에서는 <어린 왕자>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얄팍하게 들리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비극적으로 낭만적이다. 콘수엘로의 편지에 담긴 상실의 감정은 이 사랑을 고통에 가깝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이 결혼반지를 다른 여자들에게, 다른 손가락들에 끼워주는 바람에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되었지. 우리는 같은 산에 사는데, 나는 오늘 저녁 그 산의 반대편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써.” 별거를 시작한 시기의 편지다. 실종되기 얼마 전 비행을 앞둔 앙투안이 쓴 편지에서 잉크와 타자기용 종이, 차, 자신이 쓴 책들을 보내달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읽을 수 있었을 그의 글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개를 파묻고 읽어가게 만드는 이 서간집에는 각주가 달리지 않은 페이지가 없을 정도다. 그게 편지의 특성이다. 주고받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맥락이 있는 글. 제3자가 읽기에는 해설이 필요한 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감정만큼은 100여년이 지나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도 선명히 행간을 흘러넘친다.

289쪽

당신에게는 빛이 있어. 당신은 그 빛을 어디서 얻었지? 그 빛을 어떻게 돌려줘? 자기 행성을 떠난 어린 왕자들이 노래하게 만드는, 그 왕자들을 소생시키는 달빛은 어디로 스며들지?(콘수엘로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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