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그럼에도 사랑을 예찬한다, <우견니> 뤄뤄 감독
2024-02-21
글 : 이유채

중국에서 날아온 청춘 로맨스 <우견니>는 사탕 같은 영화가 아니다. 외딴 도시의 고등학교로 전학 온 남학생 저우찬(이문한)과 같은 반의 천진한 여학생 자오양(서약함)이 운명 같은 사랑을 시작하는 전반부는 단맛이 나는 반면 성인들의 현실 연애로 진입하는 후반부는 쓰디쓰다. 회사의 과중한 업무는 연인의 소통을 마비시키고 불안정한 경제력은 결혼 이야기를 저만치 던져놓는다. 두 남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에서 그치지 않는 영화는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이 성장하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뤄뤄 감독은 사랑에 관한 오랜 고찰을 담은 각본과 현지 청춘들의 생활상을 부드럽게 녹여낸 연출로 색다른 멜로드라마를 완성해냈다.

- <우견니>의 공동 각본을 쓰고 영화 연출까지 맡았다. 그동안 소설가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우견니> 프로젝트에 합류했나.

= <우견니> 담당 프로듀서가 시나리오 초고를 가지고 날 찾아온 게 시작이었다. 그동안 청춘 소재의 글을 집중해서 써왔기 때문에 <우견니>에 담긴 청춘의 숨결에 매력을 느꼈고 영화 작업도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처음부터 어릴 때 만나 사랑해서 어른이 된 뒤 헤어지는 연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린 날의 만남은 그 시절에만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답고 경쾌하고 비현실적인 일인 반면 어른들의 헤어짐은 평범하고 어디에서나 자주 볼 수 있다. 거기서 오는 차이를 좋아한다. 사실 <우견니>가 첫 연출작은 아니다. 하지만 온전히 사랑을 주제로 한 청춘영화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가 사랑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갖고 있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관객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는 동시에 현실성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내겐 도전이었기에 의미가 깊다.

- 왜 <우견니>는 성인이 된 현재의 자오양이 고향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끝맺는 구성이어야만 했나.

= 개인적으로 ‘돌아본다’라는 감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미 끝나버린 감정을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매번 다른 답이 나온다. 많은 게 무뎌지고 소화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다시 떠올라 되살아나기도 한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후광이 벗겨져 무거워진 질문들을 직면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우리 이야기의 방향성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자오양이 폭우를 뚫고 저우찬에게 미술 대회 수험표를 전달하기 위해 달려가는 시퀀스가 명장면 중 하나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결국 두 남녀는 만날 운명이라는 걸 암시한다. ‘오락 클럽’은 <비포> 시리즈 속 파리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떠오르게 하면서 연인이 될지 모르는 두 친구의 아지트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 폭우 신을 쓸 때는 원하는 느낌을 당최 찾지 못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때 이어폰에서 라는 노래가 흘렀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오양이 쓰레기통을 쓰고 저우찬에게 수험표를 가져다주는 그림과 저우찬이 그 모습을 보는 신이 떠올랐다.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다. 실제 촬영 때는 날이 계속 맑아 마음을 졸였던 기억도 난다. 오락 클럽은 예전에 내가 수업을 빼먹고 시간을 보냈던 학교 근처 DVD 가게를 반영했다. 사장님이 게임하는 걸 보거나 같이 수다를 떨기도 하고, 많은 영화를 공짜로 보기도 하던 꿈같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밀 기지를 내 이야기 속에 넣고 싶었다.

- 풋풋한 고등학생부터 지친 직장인까지 자연스럽게소화한 서약함, 이문한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두 배우 모두 한국 관객에게는 새로운 얼굴들인데, 어떤 매력을 가진 배우들인가.

= 서약함 배우는 오디션에서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기운을 느꼈다. 자오양이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과제와 마주하는 인물인데 서약함 배우가 그런 역할에 적역처럼 보였다. 이문한 배우는 아이돌 출신인지라 함께 촬영하면서 ‘보통 사람 저우찬’의 느낌을 찾아갔다. 두 배우 모두 어린 편이라 그들에게 중후반부 파트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본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연령대의 감정을 표현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둘 다 어쩜 그리 이해력과 표현력이 좋은지,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수월한 현장이었다.

- 자식의 대학 입시에 전부를 거는 엄마, ‘1년 안에 차를 사고, 3년 안에 집을 산다는 목표’ 아래 현재를 희생하는 젊은 층 등 <우견니> 속의 중국은 한국과 비슷한 지점이 많아 공감이 갔다. 영화에 실제 중화권 청춘들의 연애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봐도 될까.

= 그렇다. 최근 몇년간 사랑에 관한 대중의 관점이 전반적인 사회상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의 지점은 사람들이 더는 사랑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거다. 이제 사랑은 포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됐다. 어떤 때에 그러한 ‘사랑의 포기’가 벌어지는지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현실에도 여전히 나는 사랑하는 일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열매를 맺지 못한 수많은 사랑도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사랑이 가치 있는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믿는다.

- 한국에서 중화권 로맨스영화가 꾸준한 수요를 보이고 있다. 중국 현지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 로맨스영화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게 매우 어려울 뿐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푸대접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지금의 보편적이고도 심오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2024년의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현재 중국 영화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항상 관심을 두는 주제는 사람 사이의 감정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구든 연인이든 혹은 가족이든 간에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 결과 그들은 어떻게 각기 다른 운명으로 향하게 되는지를 작가로서 늘 주의 깊게 관찰한다. <우견니> 이후 현재 대본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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