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은 좋은 뜻일까? 관객들은 어디서 어떻게 ‘KAFA 영화 같다’란 느낌을 받는 것일까. 그렇게 느낄 만한 KAFA 영화들의 어떤 공통점이 있긴 한 것일까. 꼬리를 무는 의문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KAFA 영화들엔 아주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KAFA 영화의 젊은 주인공들은 대개 빚을 지고 있다. 빚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어떠한 부채감에 시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검은 소년>(2022)에서 주인공 훈(안지호)은 1990년대 후반을 살고 있다. 뉴스는 국가가 IMF에 빚을 지게 됐다고 연신 떠들고 훈의 부모는 ‘내가 너 때문에 어떻게 살았는데’라는 투로 아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긴다. <럭키 몬스터>(2019)와 <썬더버드>(2021), <그 겨울, 나는>(2021)의 30대 언저리 주인공들은 경제적 빚을 지고 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야구소녀>(2019),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1)의 딸들은 부모에게 진 돈과 마음의 빚을 탕감하는 과정에 있다. <지옥만세>(2022), <만분의 일초>(2023)의 주인공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나 가족의 원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복수에 임한다.
주인공들의 부채감엔 미적지근한 반항심이 따른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조리한 빚을 안긴 사채꾼이나 부모, 기성세대에 우선 맞선다. 돈을 갚거나 부모와 싸우거나 가해자에게 복수하거나 기성세대의 가치에 반기를 든다. 하지만 그들은 <야구소녀>의 주수인(이주영)이나 <만분의 일초>의 재우(주종혁)처럼 빚진 상대와 미지근하게 화해하고 상대의 잘못을 넉넉하게 이해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인물들은 아예 맞서 싸우기를 포기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위와 같이 특정 주제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개별 영화의 좋고 나쁨을 가릴 근거는 되지 못한다. KAFA 영화가 아닐지라도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지닌 영화는 차고 넘친다. 영화의 진정한 재미란 이야기를 풀어가는 각각의 과정에 있음을 모두가 안다. 그러니 이 글의 중점은 각 영화의 비평적 가치를 판단하는 쪽이 아니다. 이러한 공통점으로부터 나온 ‘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이 좋거나 나쁜지를 가리는 일이다.
아직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좋고 나쁨을 가리기에 앞서 ‘KAFA 영화 같다’라는 명제엔 애초부터 어폐가 있다. 예를 들어 ‘A24 영화 같다’라는 말은 자연스럽다. <미드소마>(2019), <퍼스트 카우>(2019), <미나리>(2020) 등을 내놓은 제작사이니 ‘신선하고 재밌는 중소 규모의 영화’라는 긍정적 맥락이 떠오른다. ‘마블 영화 같다’라는 말은 어떨까. 적어도 최근엔 ‘번잡하고 지루한 블록버스터영화’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한 제작사가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자주 내놓는 일과 그것을 관습적으로 수용하는 경우엔 큰 거리낌이 없다.
반면에 KAFA는 말 그대로 아카데미, 영화 만들기를 교육하는 곳이다. 신진 영화인들이 교육받아 만든 결과물이 모두 비슷하다는 사실부터가 과연 긍정적 평가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잘하는 것을 반복하고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흥행시킨 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영화 제작사와 교육기관의 목적은 애초부터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자. 시대에 따른 유행과 흐름이야 늘 있었으니 장편 연구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도 그 시류에 몸을 맡겼을 수 있다. 신진 영화인들이니만큼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많은 영화의 결이 유사해졌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이렇게 차차 양보하다 보면 ‘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수긍할 수도 있을지 싶다.
하지만 KAFA 영화들이 공통으로 보여준 시대의 풍광이 신진 영화인들의 진정한 몫인지엔 다시금 질문이 따른다. 전술했듯이 KAFA 영화의 주인공들은 기성세대가 물려준 빚에 허덕이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순하다. 이를테면 <그 겨울, 나는>의 경학(권다함)은 있는지도 몰랐던 어머니의 빚을 상속한 탓에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도 그만두고 애인과도 헤어지며 인생의 경로를 송두리째 바꾸게 됐다. 그런데도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산다. 그 어느 세대보다 자기의 삶을 침해받지 않고 본인의 영역으로 지키길 원하는 요즘 청년들의 세태와 다소 딴판으로 보인다.
외려 젊은 주인공들은 <야구소녀>의 코치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옆집 아저씨, <만분의 일초>의 동료 검도인 등 착한 어른들에게 모종의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기성세대와 반목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친절한 가르침이 도움을 준다는 아이러니가 눈에 띈다. 주인공들이 겪었던 빚의 무게는 그저 ‘청춘이라면 한번 거쳐야 할 일’ 정도로 무마된다. 그들의 반항심은 좋은 어른들에게 미지근하게 중화되어 ‘그래 알고 보면 다들 괜찮은 사람이니 그랬을 수 있지’쯤으로 순해진다. 신진 영화인들이 만드는 영화치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구시대의 가르침이 여전히 영화의 중핵을 차지한다는 인상이 들 수밖에 없다.모든 영화가 반항의 극단으로 달리거나 자극적인 결말을 택해야 한단 의견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린지 앤더슨의 <만약에…>(1968)처럼 KAFA 학생들이 총과 폭탄을 들고 KAFA 건물을 폭파해야 한단 이야기까지 할 순 없다(만들어지면 재미는 있겠다). 혹은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1995)같이 부르주아계급을 모조리 살해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2018년에 한국의 60대 감독이 만든 <버닝>(2018)의 태도 정도를 이어가는 영화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종수(유아인)는 실제로든 소설 창작으로든 자신의 계급적 안티테제인 벤(스티븐 연)을 죽이며 현실에 열렬히 저항했다. 이처럼 영화라는 상상의 힘을 통해서라도 현실의 답답함을 이겨내려는 힘을 KAFA 영화에서도 자주 느끼고 싶단 생각이 든다.
상상력의 부재, 수요 없는 답습
그렇다고 영화마저 현실의 진창에 붙잡힐 필요는 없다. 오히려 최근 20~30대에게 잘 소구하는 분야는 <이재, 곧 죽습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같이 터무니없지만 현실의 무거운 공기를 깨게 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장르다. 비슷한 맥락에선 이세계로 훌쩍 이동하여 용과 싸우는 애니메이션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회빙환이나 이세계 애니메이션이 아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KAFA 영화와 비슷하게 기성세대로부터 받은 청춘의 힘듦을 토로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교훈과 해방감을 일깨워준다. 다만 더 자유롭게 현실을 뛰어넘고 세간의 요구에 맞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반면에 KAFA 영화들은 영화가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겸연쩍게 포기해버린 것만 같다. 그래도 다시 한번 양보를 해보자. 어쩌면 허무맹랑한 상상을 일부러 배제한 채 지독하고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고 좋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신진 창작자들이라고 해서 회빙환 같은 최신 트렌드를 마냥 좇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리얼리즘의 세계를 해독하고 봉합하는 관점이 돈, 경력, 직업, 가족, 공동체주의 같은 기성세대의 기치에만 집중돼 있단 문제가 여전하다. 기성세대의 의견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비슷한 특정 가치들이 효과적이지 않게 답습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한 <럭키 몬스터>처럼 초현실적인 상상이 가미되고 파격적인 결말이 있더라도 인물들은 결국 지난한 현실 근처로 복귀하고야 만다. KAFA 바깥에서 만들어진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2024)가 아예 현실의 경계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과감한 가능성을 내뿜을 때 KAFA의 인물들은 여전히 현실 주변을 빙빙 돈다. 치열한 달리기는 아니고 적당한 산책의 속도로 걷는 정도다. 이쯤 와서 ‘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을 풀이해보자면 ‘답답한 현실을 더 답답하게 담아낸 비슷한 영화들’ 정도로 이해될 법하다.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얼굴에 짐을 떠안기는 태도
<혼자 사는 사람들>과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다른 KAFA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좋은 평가와 성과를 거뒀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꽤 강단 있는 선택을 했던 덕인 듯하다. 진아(공승연)와 이정(임지호)은 부모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완연한 독립을 택하며 젊은 세대의 욕망을 적절히 대리한 것처럼 소비됐다. 그러나 한계의 여지는 남아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혼자 남은 어머니의 일상을 떨리는 카메라로 포착하며 영화를 마친다. 영화 혹은 감독이 어머니를 끝내 이해해보려는 태도였다. 이 선택의 가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역시 KAFA 영화의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단 증거는 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영화의 마지막을 진아의 얼굴로 끝맺는다. 진아가 가족 및 사회와 겪어온 어려움은 진아의 가벼운 노력이면 해결될 문제로 급격히 축소된다. 버스 안에서 만족스럽게 웃는 젊은이의 얼굴이 정해진 목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떠올려보면 <야구소녀> <검은 소년> <그 겨울, 나는> <지옥만세> <만분의 일초> <썬더버드> 등 많은 KAFA 영화가 주인공들의 얼굴에 집중하는 엔딩을 택했다. 주인공들이 일련의 사건으로 한뼘 성장했단 교훈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KAFA 영화의 주인공들이 겪은 어려움은 개인이 성장하고 말고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청년들의 부채감은 엄연한 시대의 난제다. 이것을 마주하기 위해선 치열하게 싸우거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장건재의 <한국이 싫어서>(2022)처럼 모든 짐을 내려놓고 한국 바깥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KAFA 영화들은 젊은 주인공의 얼굴에 모든 짐을 떠안긴 채 사태를 무력하게 휘발시킨다. 딱 그 정도의 소심함과 안전한 태도는 영화를 본 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더한 답답함을 안겨주게 된다.
‘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을 KAFA에 속한 학생들의 우연한 공통 성향으로 눙치기엔 너무 많은 주제적 반복과 한계를 발견했다. KAFA 영화에 깊이 스며든 보수적인 해결법과 기성세대의 태도를 창작자 개인들의 개성으로 해석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곧 신진 영화인들이 영화아카데미라는 제도 안에서 어떠한 외부의 개입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꼭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한국영화계의 새 이름을 배출해야 할 든든한 토대 중 하나가 계속하여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