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르상티망의 정치와 진영 논리, 영화 <건국전쟁>
2024-03-13
글 : 정희진 (대학 강사)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노동자계급을 주로 다룬 그의 다른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영국인’으로서 자국의 식민 지배로 인한 아일랜드 내전을 다룰 때, 감독의 포지션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2004)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벨기에의 분할 지배의 결과로 후투족과 투치족은 1994년 100만여명이 사망하는 상호 학살극을 낳았다. <호텔 르완다>는 강대국을 상대로 피식민 주체의 협상 전략을 다룬다.

두 작품은 제국주의로부터 형식적인 독립을 이룬 국가들의 식민성(콜로니얼)과 그 유산(포스트 콜로니얼)에 관한 텍스트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해방 후 국가 건설 방식과 통치 시스템을 둘러싸고 혼란과 분열을 겪었고, 급기야 침략자에게 향했던 총을 ‘동족’에게 겨누었다. 한국전쟁은 그중 가장 큰 규모의 비극이었다. 8·15 해방과 함께 시작된 제노사이드인 4·3은 “일정(日政) 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정점일 것이다.

분단은 당대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진영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화제의 영화’ <건국전쟁>은 그중 한 진영의 목소리다. 진영과 진영 논리는 다르다. 진영 만들기는 나라 만들기만큼이나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양한 정치 주체들의 공과(功過), 각자가 욕망하는 정상 국가(normal state)에 대한 환상,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의제가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진영 논리는 박근혜, 문재인 등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 발전하면서 소모적인 갈등의 진원지가 되었다. <건국전쟁>의 공동제작자인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가 <건국전쟁>의 티켓 사재기 논란에 대해 <그대가 조국>(2022)을 언급한 맥락도 여기에 있다. ‘이승만’과 ‘조국’은 역사적으로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진영 논리에서는 동격이 된다.

‘고난의 행군’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나는 <건국전쟁>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떤 재현인가라는 논쟁이고, 이를 계기로 의미 있는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15년 동안 사비로 만든 <김일성의 아이들>(2020년 개봉)로 주목받은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은 원래 ‘하와이로 간 대통령’이라는 소박한(?) 제목이었다.

<건국전쟁>은 건국을 둘러싼 각 정치 세력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이승만과 그를 대리한 감독이, 이승만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가득 찬’ 한국 사회를 상대로 한 투쟁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승만도, 감독의 삶도 외롭고 숭고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길위에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두편의 다큐멘터리가 ‘예술’이 되려면, 감독은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인물과 관계성을 밝혀야 한다. 모든 인식자의 시각은 부분적, 당파적(partial)이다. 재현 주체로서 자신이 선 자리(standpoint)를 밝히지 않을 때, 재현물은 맥락을 잃는다.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만이 ‘객관성’을 보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알리기’라는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고 대항 담론만 생산하기 쉽다. 팩트가 아니라 창작자의 혼란과 모순이 반영된 하이브리드한 현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투명한 재현은 가능하지 않다.

<건국전쟁>은 팩트를 두고 기약 없는 전쟁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당연히 감독이 밝힌 대로 후속작은 2, 3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바로 알기, 역사 바로잡기와 같은 ‘몰랐던’ 사실을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팩트는 사실 여부가 아니라 경합하는 담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건국전쟁> 다음에 김구에 대한 영화가, <길위에 김대중> 다음에 박정희에 대한 다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온다면 새로운 방식이어야 한다.

<건국전쟁>의 주장처럼 이승만이 “100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지도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정치력은 대단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협박해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이라는 군사 공공재를 얻어낸 것은 건국의 최대 업적일지 모른다. 이승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승만을 “개자식”(son of bitch)이라고 적을 정도였다.

구한말 이후 근대가 식민 지배와 함께 시작되고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는 르상티망(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원한과 고통을 경쟁하는 정치에서는, 누가 더 탄압받고 고생했는가가 올바름의 기준이 된다. 이 점에서 이승만은 억울하다. 고난받고 일찍 사망한 투사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에게 이승만은 ‘밉상’이다. 이승만은 40년간 미국에서 생활(‘독립운동’)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지도자는 많지 않다. 르상티망의 정치에서 본다면 이승만은 한국 현대사에 무임승차한 기회주의자다. 그런 인물이 외교력을 무기로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급히 만든 작품?

작품의 만듦새는 민망하다. 작품 소개를 보자(요즘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밖에 없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 북한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 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영화에 나열된 팩트가 ‘틀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만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많은 장면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아무리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라지만 “이승만이 국민 교육에 헌신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높아져 4·19가 일어났다”, “4·3은 남로당과 북로당의 작품이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3·1운동을 주문(注文)했다”, “3·15 부정선거나 조병옥 박사 사망(살해) 사건은 이승만이 아니라 그 밑의 사람들이 저지른 일” 등의 내용은 당황스럽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여성 인권에 대한 기여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페미는 여성참정권을 준 이승만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말은 작품의 스토리텔러인 류석춘의 주장이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라고 지칭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승만 내각의 유일한 여성이자 초대 상공부 장관인 임영신(1899~1977)은 중앙대학교 설립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호는 승당(承堂)으로, 이승만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오랜 연인 관계였다. 초대 내각의 최초 여성 장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편 “한국 여성들을 강간한 소련군이 어떻게 해방군인가”라는 식의 내용은 미 군정 시기나 이후 주한 미군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는 대담하게도 이승만의 하야 계기가 된 4·19로 시작하는데, 4·19조차 이승만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국부를 얼마나 업신여기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은, “미국 전역에는 조지 워싱턴 동상이 3천개가 있고 미국 주재 대사관이 모여 있는 지역에는 넬슨 만델라와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있는 반면, 우리는 이승만에 대한 배척 때문에 서재필 동상이 이승만을 대신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간디와 만델라가 이승만과 같은 비교 대상인가. 너무나 맥락이 없는 발상이다.

이승만은 한학과 서구 교육에 두루 능통해 한국을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주장은 근대성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는 전근대와 후기 근대로 나뉘는 시간 순서의 개념이 아니다. 근대성은 같은 사회 내부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시간성이 아니라 주체와 장소(로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독립운동가들조차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었다”는 영화의 지적이 곧 ‘이승만의 근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국전쟁>을 나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의해 평가할 의도는 없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事實)을 사실(史實)로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의 태도와 시각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순수한 르상티망의 열정임을 나는 믿는다. 요지는 프로파간다 다규멘터리일수록 지성적이어야 하는데, ‘친일파’라는 말 대신 ‘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이 옳다는 장면 외에는 관객으로서 나는 배운 바를 찾기 어려웠다.

에피소드(삽화) 대 시멘틱스(semantics, 의미론)의 이분법에서, 대개 한국의 남성 지식인들이 택하는 방식은 후자이다(주지하다시피 홍상수 감독은 그 대척점에 있다). 시멘틱스에의 욕망을 버리고 맥락적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 즉 한 장면, 상황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4·19에서 사망까지 다룰 것이 아니라 <호텔 르완다>처럼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승만의 생애를 조명했다면, 지금과 같은 숭배적 작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로 건국의 역사를 대신하려다 보니 통사(痛史)를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어설픈 통사(通史)가 되었다.

스크린 밖의 전쟁

재현물로서 <건국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나의 극장 관람기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관람객 100만명을 바라볼 즈음, 나는 금요일 오후 8시 서울 시내 멀티플렉스에서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30여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갈채도 무반응도 아닌 애매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들은 “이런 영화는 널리 알려야 돼”라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자리에서 셀카를 찍었고, 어떤 사람들은 “돈 벌려고 급히 만들었어. 너무 허술해, 라면 저렇게 안 만들지”라고 말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김덕영 감독이 “좌파들이 <파묘> 관람을 독려한다”, “<건국전쟁>은 <듄: 파트2>와도 싸우고 있다, 185만명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를 넘어 200만 고지를 향해 단결하자”고 말했다. 노골적인 선동이다. 이 말은 <건국전쟁>에 대한 나의 마지막 감상(感傷)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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