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신인 창작자들의 창작 기반을 마련해주며 저변 넓혀가겠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2024-04-18
글 : 이우빈
사진 : 백종헌

지난 2월29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의 신임 이사장으로 백재호 이사장이 선임됐다. 백재호 이사장은 <그들이 죽었다>(2014), <시민 노무현>(2019), <붉은 장미의 추억>(2022) 등을 연출한 감독이자 배우와 프로듀서 활동을 겸해온 전방위적 영화인이다. 2022년엔 <최선의 삶>의 프로듀서로서 부산국제영화제 이춘연 영화인상을 받았고, 1996년 이래 독립영화계의 주축이었던 인디포럼영화제에 몸담기도 했다. 독립영화계 곳곳에서 펼쳐온 그의 다양한 경력은 최근 독립영화계가 겪는 여러 부침에 유연하게 대응할 역량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립영화에 대한 정책적 외면, 세대교체의 난점, 영화계의 연대 등 그의 앞에 놓인 숙제는 꽤 두텁다. 이사장 부임 후 한두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영화산업위기극복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에 참여하는 등 끊이지 않는 일복에 파묻혀있다. 그럼에도 신인 영화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집중하며 “독립영화인들에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안겨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뚜렷하고 똑바르다.

- 그간 한독협 운영위원, 이사 등으로 활동해왔다. 이사장 역임까지의 과정은.

= 처음 한독협과 연을 맺었던 건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장편 데뷔작인 <그들이 죽었다>가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되면서 방문했는데 한창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던 때였다. 영화인연대에 주도적으로 뛰어드는 한독협 선배들이 대단해 보여서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한독협에서 운영위원으로 일하게 됐고 영화단체연대회의에도 참여하게 됐다. 임기가 끝나고선 영화 작업에 집중하느라 활동이 뜸했는데 지난해쯤 이사진 교체가 이뤄지면서 이사로 합류했다. 그러더니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이사장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 처음엔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제가 어떻게 해요~’라면서 넘기곤 했는데… 지난해 말부터 진지하게 논의하게 됐다.

- 한독협의 주축이었던 세대와 전대 이사장들과 비교하면 무척 젊은 편이다. 부담감은 없었나.

= 있었다. 그래서 인망이 두텁고 경력도 오래된 감독님들에게 공동 이사장을 부탁드리려 한 적도 있다. 나이도 나이지만 내 경력도 마음에 쓰였다. 다른 독립영화감독들처럼 영화과를 나왔다거나 단편부터 차근차근 밟아온 사람이 아니라 어디선가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사람이었으니까. 독립영화 선배들과의 인연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혹시 내가 이사장이 된다면 선배 세대와의 연결이 느슨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 그럼에도 단독 이사장에 오른 이유는 젊은 영화인들을 한독협에 더 응집시키려는 목적이었을까.

= 한독협뿐 아니라 많은 영화단체에 조직의 허리를 맡아줄 20~30대 영화인이 적은 상황이다. 선배들도 나처럼 비교적 젊은 친구가 자리를 맡아서 분위기를 바꿔주길 바라신 것 같다. 다만 젊은 영화인들에게 협회에 들어오라고만 말하면 그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보단 신인 창작자들이 겪는 부당한 일들을 협회 차원에서 지원해주고, 협회가 그들의 창작 기반을 마련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해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도 함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특히 젊은 창작자들을 돕는 일에 방점을 둔 이유는.

= 좋은 영화학교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온 이들은 그나마 영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는 환경에 있다. 하지만 예전의 나처럼 그 주변부에서 혼자 영화를 시작하려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엔 그들을 지원해줄 작은 영화제들도 점차 사라지는 실정이다. 또 얼마 전엔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의 지원 조건이 제작사 단위 신청이나 자부담금 편성 등으로 갑자기 바뀌지 않았나. 개인 단위의 창작자들이 외면당하는 거다. 한독협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정책에 항의하고,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줘야 한다.

- 독립영화를 다루는 작은 영화제들이 사라지면서 한독협이 주최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부담감도 커지고 있는 것 같다.

= 맞다. 서독제 내부에서도 이런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영화제에서 지지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는 한편, 영화제의 부피와 책임감이 커진 만큼 관객수 등 실질적인 성과도 내야 하니까. 영화제뿐 아니라 독립영화 제작지원 같은 사업에 참여하는 심사위원들의 딜레마도 비슷한 것 같다. 사업 주최측의 성과를 무시할 수도 없는 와중에 정량적인 평가를 하다보면 정말 번뜩이는 작품을 놓칠 때도 있으니까. 나도 가끔은 나보다 대단한 창작자가 나오는 길을 막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한해에 2천~3천편씩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어떻게 발굴할지의 문제도 협회에서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 한독협에선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를 운영하며 온라인 상영 등을 이어오고도 있다. 차후 운영 계획은.

= 1년 단위로 따내야 하는 사업이라서 올해도 한독협에서 운영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해 말에 공고가 났으니 올해 초엔 결정됐어야 할 부분인데 사업 연장과 재공고가 이어지면서 지연되고 있다. 최소한 2~3년의 운영 기간은 보장돼 있어야 중장기적인 계획도 세울 텐데… 다소 답답할 때가 있다. 제작지원, 배급지원이나 공동체 상영지원 같은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려 해도 어렵다. 영진위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비슷한 사업이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반려당하기 일쑤다. 유사해 보일지라도 각 단체의 역할과 집중도는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엔 늘 의문이 든다.

- 다른 영화 직능 단체나 지역 독립영화협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갈지도 궁금하다.

= 얼마 전 부과금 폐지 논란에 대응하며 만들어진 영화인연대(<씨네21> 1451호 참고)를 포함해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쌓아가는 중이다. 오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영화산업, 영화제, 독립영화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려고도 한다. 부과금 폐지 건도 마찬가지인데 영화 관련 정책을 두고 영화인들의 의견을 생략하는 사례들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단체들과 최대한 논의하겠다.

- 이사장직에 임하는 개인적 목표가 있다면.

= 한독협 이사장을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 (웃음) 여기가 창작자의 무덤 같은 곳이 아니고, 고영재 전 한독협 이사장님처럼 개인 작업까지 병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리라는 걸 다시 증명하고 싶다. 또 한독협이 없었다면 영화인들이 손해를 보거나 포기했을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한독협이 꼭 있어야 하나?’라는 의문에도 대응하겠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신진 영화인들에게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구나’라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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