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앤디 서키스)가 이끌었던 리부트 삼부작 이후 잠잠했던 <혹성탈출> 시리즈가 7년 만에 돌아왔다. 속편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는 주인공 노아(오언 티그)를 포함해 11마리의 유인원이 새로이 등장한다. 이중 오랑우탄 라카(피터 메이컨)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라카 작업에 VFX 스튜디오 Wētā FX 소속 한국인 아티스트인 김승석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와 순세률 모션 캡처 트래커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승석 페이셜 모델러는 얼굴근육을 숫자와 알파벳으로 부호화하는 FACS(Facial Action Coding System)를 이용해 디지털 캐릭터의 다양한 표정을 만드는 전문가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의 크리처, 공간 등을 3D로 제작하는 모델러로 VFX 업계에 뛰어든 뒤 <데드풀2>(2018) 때부터 표정으로 분야를 좁힌 그는 <아쿠아맨> <아바타: 물의 길>에도 힘을 보탰다. 2021년 WētāFX에 입사해 <아바타: 물의 길>로 VFX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순세률 모션 캡처 트래커는 입사 이후 Wētā FX가 맡은 모든 작품의 모션 캡처 파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 <아바타3>에 매진하고 있다. 차기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개봉을 기념해 내한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라카의 탄생 과정에 대해 상세히 들려주었다.
- 직함만 들어서는 두 사람의 직업이 생소하다. 각자가 하는 일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김승석 어릴 때 봤던 줄인형극을 떠올리면 내가 하는 일이 좀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인형극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이야기에 맞춰 자기가 맡은 인형의 눈도 깜빡이게 하고 입도 벌리게 하지 않지 않나. 그런 행동을 컴퓨터로 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번에 라카 캐릭터를 작업할 때도 그런 식으로 라카의 얼굴에 특정 장치를 심은 뒤 상황에 걸맞은 표정들을 만들어냈다. 10년 가까이 써오면서 이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워진 페이셜 딥러닝 기술을 통해 애니메이터가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작업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됐다.
순세률 배우들이 카메라가 달린 헬멧과 마커가 부착된 슈트 퍼포먼스 캡처 장비를 착용하고 연기하면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해서 2D 영상을 3D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유인원을 맡은 배우들은 팔이 긴 특성을 가진 유인원 캐릭터가 좀더 사실감 있게 나오도록 목발을 이용했다. 페이셜 트래킹의 경우 이번 작품에서는 헬멧에 2대의 소형 카메라가 달려서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3D로 구현할 수 있었다.
- 라카의 신체적 특징은 무엇인가. 특유의 표정이나 몸짓이 있는지 궁금하다.
순세률 라카는 민첩한 유인원들과 다르게 움직임에 여유가 있다. 라카 역의 피터 메이컨 배우가 라카의 느릿느릿한 성향을 반영한 신체 연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라카는 말이 정말 많다. 그런 수다스러운 면모에서 친숙함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을 거다.
김승석 생김새도 여타 유인원들과 차별점이 있다. 극 중 유인원들이 보통 침팬지처럼 생겼다면 라카는 오랑우탄이라서 인중이 굉장히 길다. 양 눈썹은 맥도널드 로고처럼 M자 모양이라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자마자 ‘이 친구는 평생 웃고 살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문제는 라카가 주인공 노아와 끈끈한 관계를 맺을 때쯤 유머러스한 면모가 드러나고 노아를 바깥세상으로 안내하는 막중한 역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때때로 심각한 표정이 나와야 하는데 웃는 눈썹을 타고나 쉽지 않았다. 튀어나온 눈썹 뼈가 살리기 어려운 구조라 애를 먹기도 했다.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를 작업하면서 가장 도전적인 과제는 무엇이었나.
김승석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슬픈데 왜 슬픈 표정이 아니지’ 하면서 감정과 표정의 미스매치를 빠르게 눈치챈다. 그런 점이 표정을 만드는 사람을 늘 긴장하게 하고 정확하게 매치시키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한다. 이번 작품은 여러 캐릭터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서 까다로웠다. 같은 수치를 써서 통일한 애니메이션을 전체적으로 불러왔을 때 당연히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어떤 캐릭터는 웃고 어떤 캐릭터는 웃지 않는 결과가 나오곤 했다. 그 경우 공동 작업을 한 동료들과 웹 밸런스를 다시 맞춰야 해서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순세률 그런 협업의 절차가 나도 어렵다. 라카를 만들 때 일단 본촬영한 뒤 승석님 파트와 논의하고, 배우의 연기를 3D로 입히는 작업을 한 뒤 다시 승석님, 페이셜 애니메이션팀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균일하게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촬영하는 데 1년, 포스트프로덕션은 2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 두 사람 모두 어떤 시간을 거쳐 ‘Wētā FX’의 VFX 아티스트로 일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순세률 원래는 건축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네가 좋아하는 영화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가볍게 제안했다. 별 뜻 없이 영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웬걸, 예상보다 훨씬 재밌었다. VFX 파트가 특히 흥미로워 대학에서 VFX를 주전공으로 했고, 모션 캡처를 부전공했다. 모션 캡처는 당시 내게는 생소했던 터라 특이해서 선택했던 건데 이렇게 직업이 됐다. Wētā FX에 들어간 건 운 좋게도 Wētā FX가 내가 살던 뉴질랜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VFX 스튜디오가 근처에 있는데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승석 VFX에 관한 관심이 생긴 건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2002)을 보고 난 뒤였다. 특히 골룸 캐릭터를 보고 ‘나도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Wētā FX는 월급을 안 받고서라도 일하고 싶던 꿈의 스튜디오였다. (웃음) 그렇게 선망하던 회사의 구성원이 됐으니 행복하다. 앞으로도 스토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표정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키며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