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이다.”(This is the Way.)<만달로리안>의 만달로어인들이 내뱉는 행동강령 같은 이 대사가 47년 역사를 지닌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유행어가 되었다. <만달로리안> 시즌2는 2020년 12월 공개되자마자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스트리밍 시리즈에 올랐다. 일명 아기 요다, 그로구의 매력과 더불어 베스카 갑옷을 두른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이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디즈니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존 패브로 감독이 루카스필름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데이비드 필로니 등과 함께 만든 <만달로리안> 시리즈는 프랜차이즈 세계관 확장의 훌륭한 성공 사례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지배해왔던 스카이워커 가문의 ‘부자 관계’ 트라우마를 정반대 관점에서 재해석한 방향이 흥미롭다. 처세에 능한 베테랑 현상금 사냥꾼이 사랑스러운 베이비 그로구를 목숨 바쳐 보호하는 ‘유사 부자’ 이야기라니. 40여년 동안 존속살해의 비극만 봐왔던 팬들은 이에 열광했다. 텔레비전 보급으로 극장에 위기가 찾아왔던 1960년대 할리우드에 나타난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고전적인 서부극의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1편부터 9편까지 극장 개봉 성적이 망한 적 없고 스핀오프 영화들까지 모두 합해 10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긴 <스타워즈> 시리즈는 위기 아닌 위기를 겪었다. 디즈니가 40억달러에 인수한 루카스필름을 지휘하던 캐슬린 케네디 프로듀서의 혁신적인 변화 기류에 팬들이 반기를 들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 정치적 올바름 속에서 오리지널리티의 매력이 희석된다는 지적을 <스타워즈>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디즈니 스트리밍 시대를 열어야 했던 산업적 측면의 위치에서도, 흔들리는 팬심을 사로잡아야 했던 세계관 빌딩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만달로리안>의 성공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만달로리안>의 난제 중 하나는 시리즈 인기의 원천인 다스 베이더도, 제다이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계관의 연대기상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에서 5년이 지난, 신공화국 체제가 시작된 이 시기는 혼란스러운 암흑기다. 시놉시스상에서 암흑기라고 적어놓으면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몰입하게 되는 게 아니듯, <만달로리안>은 다스 베이더 없는 암흑기를 무슨 수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인류사에 실재했던 수많은 전쟁과 권력 다툼, 전통적인 서부극 장르의 구조와 캐릭터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방대한 ‘<스타워즈> 스토리’는 포스라는 힘의 밝고 선한 면과 어두운 면의 대립 속에서 결코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씨를 강조해왔다. 무엇으로부터의 저항인가? 포스의 어두운 면을 내세워 제국을 건설하려는 다스 베이더와 그를 조종하는 시스 군주 팰퍼틴 황제로 대변되는 다크사이드로부터의 저항이다.
<만달로리안>의 시대는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시대다. 정권이양기라고 해야 하나. 제국이 몰락하자 신공화국 체제가 들어선다. 다스 베이더와 스카이워커 가문의 빈자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분노와 아픔으로 채워졌다. 주인공 딘 자린은 프리퀄 3부작 시절에 벌어진 클론전쟁 당시 전투 드로이드들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다. 강력한 유대 관계가 형성된 딘 자린과 그로구를 돕기 시작하는 조력자들도 대부분 제국의 횡포에 희생당해 남겨진 자들이다. <만달로리안>의 만도가 그로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남겨진 자들의 팍팍한 삶과 마주하면서 망해버린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우주선의 거대한 크기 대신 인물들의 마음속 상처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방식은 다른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스파이 액션물을 표방하는 <안도르>도 마찬가지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데스스타’ 설계도 탈취 작전을 함께했던 정보 요원 카시안이 어떻게 저항군 최고의 스파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도 기존 극장판 시리즈에서는 미처 품지 못했던 인물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가슴속에 저항의 불씨를 품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고통은 제다이라고 해서 겪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소카>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제국의 압제에 저항해야 했던 인물들의 사연을 확장하는 시리즈로 기능한다. 아소카는 강한 권력 집단이 된 제다이들의 조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정치적 입지가 좀 다른 상처받은 제다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에서 죄책감과 복수심에 짓눌린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팰퍼틴의 계략에 넘어가 제다이를 학살하라는 ‘오더 66’을 발동했던 걸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오비완 케노비>의 빌런 역할을 하며 어린 루크를 위협하는 레바를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녀 역시 비극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캐릭터다. (2022년과 2024년에 각각 디즈니+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단편 시리즈, <제다이 이야기>와 <제국 이야기>에 앞서 언급한 캐릭터들의 과거가 상세하게 소개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제 곧 공개될 <애콜라이트>는 기존의 세계관에서 한번도 다뤄진 적 없는 시점의 이야기다. 오비완 케노비가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 진의 제자였던 시절, (<스타워즈> 세계에서는 시스와 제다이 모두 스승과 제자 관계를 절대적으로 유지한다) 타투인 행성에서 처음으로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만났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이야기로부터도 100년 전 과거를 다룬다.
<스타워즈> 세계관의 창조주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오래전부터 반드시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했던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수백명의 제다이들이 수백개의 광선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광경이다. 해외 언론에서는 <애콜라이트>를 두고 <겨울왕국>이 <킬빌>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동안 팬들은 언제나 시스 대 제다이, 그러니까 거의 일대일 광선검 전투만을 봐왔다. 이번에는 시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보여주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돌이켜보면 이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첨단 영상기술을 도입해 미지의 우주전쟁을 상상하면서 항상 이런 말로 시작했다. “오래전 저 멀리 은하계 어딘가에선…”(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시리즈 역사상 가장 오랜 과거, 천년 이상 포스의 균형을 유지해왔던 선대의 제다이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 앞에 나타난 요다의 영혼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뛰어날 걸세. 그것이 바로 모든 제다이 마스터가 짊어진 진짜 짐이지.”
오비완 케노비는 아나킨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루크와 레아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지켜준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오비완이 느낀 고통을 카일로 렌을 통해 겪는다. 어떤 시대건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될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저항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원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