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가 오는 7월3일 베일을 벗는다. 배우 구교환을 향한 배우 이제훈의 공식 석상 프러포즈로 성사된 투톱 캐스팅,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중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까지 거머쥔 이종필 감독의 신작. 개봉 전 <탈주>를 향해 쏟아진 무수한 기대만으로도 영화의 무적질주는 분명해 보였다. 여기에 <탈주>는 빤할 수밖에 없는 구도의 탈주극을 변주하고 보강하며 달음질에 추진력을 더한다. <탈주>가 꾀한 몇 가지 설정을 정리한 리뷰를 전한다. 이어 이종필 감독이 <탈주> 속 두 주연배우의 인터뷰 배턴을 건네받아 영화에 남는 의문들을 명쾌하게 해석해줄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도망자와 추격자. 둘 중 누구를 주체로 상정하든 <탈주>는 속도와 방향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현상(구교환)은 쫓을 것이고 규남(이제훈)은 쫓길 것이며 두 사람은 달릴 것이다. 일방향의 구도를 바꿀 수 없는 영화가 박진감을 추동하기 위해 세워야 하는 전략은 ‘어떻게’와 ‘왜’를 보강하고 변주하는 데 있다. 따라서 <탈주>만의 특별함을 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규남은 어떻게, 왜 현상을 따돌리나. 현상은 어떻게, 왜 규남을 맹추격하나.
어떻게 탈주하나, 어떻게 쫓나
탈주극은 주인공이 반복되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이는 게 사실상 전부다. <탈주>는 규남이 수행할 퀘스트의 장르를 변용하는 전략을 취하며 흥미를 가속한다. 휴전선을 앞에 둔 북한의 최전방. 전역이 코앞인 중사 규남은 밤마다 내무반에서 탈출한다. 매일 밤 초지대를 가로지르며 규남은 군사분계선의 지뢰 매설지를 파악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온다. <불의 전차>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평 트래킹숏 위에서 끝없이 달리는 규남의 꿈은 탈북이다. 청운의 꿈속에 질주하고, 남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는 규남의 모습은 청춘영화의 한컷으로도 손색없다. 한데 규남의 계획을 우연히 알아챈 후임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그의 탈주를 저지하려던 규남은 동혁과 함께 탈주 현행범으로 체포돼 보위부의 처분을 기다린다. 규남은 보위부 장교 현상의 아량으로 처벌 대상이 아닌 포상 대상이 돼 총정치국장의 눈에 들고 사단장 휘하에서 전역 없이 복무를 이어간다. 안정된 삶이 보장됐지만 규남은 이에 질세라 또 한번 탈출을 시도한다. 이때 규남의 탈주극은 한편의 에스피오나지물에 가깝다. 군사분계선 통행증을 위조해 신분을 세탁하고 차량을 훔쳐 달아나 위수경무부에 수감된 동혁을 구출한다. 이 과정에서 규남은 스파이에게 기대될 법한 기지와 임기응변, 카 체이싱까지 선보이며 남쪽으로 향한다. 작품의 후반에 이르면 본격적인 액션이 등장한다. 유랑민들과 보위부 직속 부대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규남과 동혁이 은신할 때, 현상이 끝을 모르고 규남을 추격할 때 영화는 관객이 기대할 법한 모든 액션을 총동원한다. 특히 촬영의 야심이 돋보이는 장면은 보위부를 따돌린 규남과 동혁이 갈대밭에서 유랑민과 조우할 때까지의 시퀀스다. 원컨티뉴어스숏처럼 찍힌 이 신의 긴장감은 후반부 보위대가 동굴 천장의 물방울 낙하 소리 속에 탈주군 일당을 찾아나서는 장면이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현상은 단순히 무자비한 추격자로 요약되지 않는 캐릭터다. 현상과 규남의 대비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기제지만 자신과 대비되는 규남을 쫓는 현상조차 두 속성으로 분열된 캐릭터다. 현상의 추격에 물음표를 몇개 달고 싶은 이유는 그가 규남을 쫓다가도 구하고, 구하다가도 쫓는 모순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규남을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규남을 빼돌린다. 이후 현상은 총정치국장의 연회에 규남을 데려간 후 그를 반동분자를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규남에게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알선한다. 현상의 시혜에 굴하지 않고 규남이 탈출을 일삼자 현상은 그때서야 자신이 지닌 권력을 규남과 동혁을 해하기 위해 사용한다. 현상은 추격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규남과 있을 때와 달리 현상은 동혁이나 후임을 대하는 모습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정작 <탈주>는 규남의 탈주와 현상의 추격에 명확한 사유를 부여하지 않는다. 관객이 두 캐릭터의 도주 경로를 함께 추적하도록 만드는 힘은 사건간의 연관관계인 속칭 개연성일 텐데, 영화는 두 인물이 왜 쫓고 쫓기는지를 설명하길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규남의 탈주는 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추격은 규남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규남의 탈주엔 사연이 없다. 이는 먼저 탈북한 어머니와 동생이 잘 사는지 궁금해하는 동혁과 상반된다. 규남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그의 계급이다. 규남은 후임 병사들로부터 대놓고 “규남이 형은 출신성분이 3등급이라 제대하면 농장 아니면 탄광으로 가야 해 미래가 캄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단장 직속 보좌로 군 복무를 이어갈 위기에 처한 규남은 왜 자신의 앞길을 마음대로 정하냐고 현상에게 묻는다. 이어 현상은 규남을 조소한다. “그럼 네 앞길을 네가 정하니?” 탐험가가 되길 꿈꿨던 규남은 유년기부터 위인전 <집념의 아문센>을 끼고 살며 제 앞길을 개척하려 하지만 북한 사회에서 그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지위 상승을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반면 규남이 믿는 남한은 능력만 있다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남한에서도 규남의 희망이 금방 좌절될 걸 아는 남녘 관객의 공연한 염려는 나중이다.) 규남에게 현상은 단순히 자신을 쫓는 숙적이라기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끝내 넘어서고 도망쳐야 할 장벽이다. 복귀하면 처벌만은 최소화해주겠다는 현상의 마지막 자비에 규남은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다.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왜 탈주하나, 왜 쫓나
현상이 규남을 맹렬히 뒤쫓는 건 그가 직업 윤리에 충실한 군인이기 때문일까? 탈주범 한명 사살하거나 규남 한 사람쯤 눈감아주는 건 현상에게 일도 아니다. 그런데 현상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 또한 많은 남자다. 현상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삶을 지키기 위해 포기를 거듭해왔다. 현상은 러시아 체류 시절 국제 콩쿠르를 모두 휘어잡던 피아니스트였고 확신컨대 민(송강)과 무척 내밀한 관계였을 것이다. 지금 현상은 규율과 통제 속에 살아가는 군 간부다.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회에서 현상은 피아노 그리고 민과 재회한다. 와중에 잃을 것이 없어 마구 달음질하는 규남은 “그래도 실패는 해볼 수 있지 않”냐며 목숨을 걸고 집념을 불사른다. 이종필 감독은 “규남의 활개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혹은 ‘내가 놓친 것은 없나’ 번뇌해온 현상에게 역린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념을 꺾지 않는 규남을 본 후 현상 역시 더이상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을 ‘생포’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요컨대 규남과 현상은 서로에게 칡과 등나무처럼 서로 얽혀 있는 존재다. 현상의 계급적 우월함이 규남의 탈주에 불씨를 지피고, 규남의 거칠 것 없는 계급의식의 전복이 현상의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