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나의 원류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 <가가> 천제야오 감독
2024-07-31
글 : 정재현
사진 : 최성열

천제야오 감독은 언제나 ‘대만 최초의 토착민 출신 여성감독’이라 소개된다. 2022년 열린 제59회 대만금마장영화제에서 천제야오 감독이 <가가>로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려진 대로 대만 소수민족인 타얄족 출신인 천제야오 감독은 지금까지 연출한 세편의 장편영화에서 모두 타얄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관객의 기대가 무색하게 천제야오 감독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 타얄족의 문화에 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30살이 넘어 대만 토착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TV채널에서 일하며 대만 토착민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천제야오 감독은 <가가>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가가’는 타얄족의 생활 규범이자 이들이 생명을 존귀하게 대하는 가치관이다. 그래서 천제야오 감독은 <가가>를 찍는 과정이 곧 “내가 속한 부족,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을 찾은 천제야오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 <가가>는 어떤 경위로 탄생한 영화인가.

= 우선 확실히 정리하고 싶은 지점이 있다. 이번 <가가> 상영의 한글 자막에 주인공 토착민 부족의 명칭이 아타얄족이라 표기가 됐는데, ‘타얄족’이라고 표기하고 읽는 게 맞다. 대만 토착민들에게 고유 언어는 있지만, 이를 표기하는 문자가 없다. 그래서 로마자를 빌려 표기에 쓴다. 타얄(Tayal) 앞에 ‘a’가 붙어 아타얄(atayal)로 불리는 것은 일거시대(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 삼던 시기.-편집자)의 소산이다. 당시 일본이 토착민을 임의로 분류하기 위해 고유 민족의 명칭 앞에 ‘a’를 붙였기 때문이다. 이 표기가 보편화된 까닭에 아타얄족이라는 명칭이 확산됐는데, 타얄족이라 불러야 옳다. 영화를 통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가가> 속 대가족의 풍경처럼 세대가 달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 구세대와 신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언제나 내 영화의 주요한 소재다. 세계 각국의 영화를 볼 때도 언제나 특정 국가가 가족을 묘사하는 방식에 집중해 감상한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각국의 문화 차이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점이 재미있어 내 영화에도 언제나 가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더 많은 관객에게 나의 원류를 공유하고 싶다.

- 타얄족의 돼지 잡는 문화, 전통악기 루부우, 고유 언어 등 대만 토착 문화에 공들인 고증이 인상적이다. 타얄족을 다루었던 전작들의 연출 경험으로부터 도움을 얻은 부분이 있나.

= 과거 대만 관광 홍보 영상 촬영을 시작으로 <가가>의 촬영지와 연을 맺게 되었다. 그때 작품 속 주인공 소년 에녹으로 등장한 배우 장쭈쥔을 알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 12살이던 친구가 <가가> 촬영 땐 15살이 됐고, 이 친구의 성장 과정을 <가가> 촬영 이전부터 다큐멘터리로 꾸준히 찍어왔다. 워낙 타얄족의 문화 수호에 관심과 열정이 깊은 친구다. 영화에 등장하기 전까지 산속에서 무난한 삶을 살던 소년이었는데, <가가> 공개 이후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 출장도 함께 다니다 보니 이 소년의 견문도 줄곧 넓어지는 중이다. 장쭈쥔이 어느새 19살이 됐다.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의 다큐멘터리는 이미 대만 내에서 공개됐다. 지금으로선 이 친구가 결혼할 때까지의 삶을 카메라에 꾸준히 담을 계획이다.

- 장쭈쥔 배우를 포함해 비전문 배우가 다수 출연한다. 특히 이 영화로 대만금마장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린잔전메이 배우의 카리스마가 놀랍다. 비전문 배우들을 어떻게 모으고 기용했나.

= 주인공 일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 8, 9개월이 소요됐다. 공개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특히 할머니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이전 연출작 <로카 라퀴>에 출연한 배우의 할머니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다. 사진 속 할머니는 과일 농사를 짓는 중이었고,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가렸지만 그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할머니가 린잔전메이다. 린잔전메이에게 출연 의사를 묻고 오디션을 진행해 캐스팅을 확정지었다. 아이돌 경력이 있는 황징이 배우를 제외하면 모두가 비전문 배우였다. 파상을 연기한 훙진후이 배우의 경우 타얄족의 국어 교사다.

- 영화 초반부터 몇 차례 할아버지 하융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설산에서 할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된다든가, 에녹이 할아버지의 음주를 말리지만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거나하게 술을 마신 후 눕는 장면 등이 그렇다.

= 타얄족에게 가장 중요한 표현법이 은유다. 그래서 영화에서 다양한 은유가 깃든 화면을 통해 타얄족의 정신을 표현하려 했다. 오프닝은 꿈에 대한 은유다. 그 장면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에녹이 꾸는 꿈이라 설정했다. 꿈 역시 타얄족에게 중요한 삶의 신호다. 타얄족은 꿈에서 본 것이 실제 삶의 암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누워 잠을 자는 것도 꿈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타얄족이라면 할아버지가 입산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이 장면이 죽음에 관한 암시라고 바로 이해할 것이다.

- <가가> 속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거는 희망과 기대를 전부 배반한다. 한데 이들이 서로를 외면하고 신뢰를 저버리기보단 끝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 그것이 ‘가가‘다. 타얄족에게 혈연은 매우 중요하다. 서로 불쾌한 일이 있을지언정 가가를 위해 구성원 각각을 지켜야 한다. 오랫동안 타얄족은 남성 중심 사회였다. 그런데 <가가>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갖춘 채 냉철한 결정을 내리는 이들은 전부 여성이다. 영화를 통해 타얄족 내에서 여성 구성원들에게 가려진 역사가 있었음을, 그들이 이룩한 중요한 지점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 장편영화 감독으로 입봉하기 전 차이밍량 감독, 장초치 감독의 연출부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이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나. 창작자로서의 삶에 두 감독이 미친 영향이 있다면.

= 두분에게 창작자의 태도를 배웠다. 특히 차이밍량 감독님은 에술가로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선’이 무척 선명한 분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끝까지 가려는 감독님의 의지가 존경스럽다. 혹시 차이밍량 감독님이 훌륭한 요리사라는 걸 알고 있나. 주변에서 쉽게 공수할 수 있는 재료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낸다. 감독님의 요리 과정은 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늘 간명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지만 그 깊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그런데 차이밍량 감독님이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나? (2024년에만 두 차례 내한했다고 하자) 흥미롭다. 한국에서 대만영화주간이 열린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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