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손가락 사이로 보면 괜찮을 거야, 겁쟁이 기자들과 함께 보는 한국 납량영화 특선
2024-08-09
글 : 이유채
글 : 이자연

4인용 식탁

감독 이수연/ 출연 박신양, 전지현/15세이상관람가/2003년

공포 지수 ★★★

<4인용 식탁>을 지하철에서 보는 시도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늦은 밤 지하철에서 내린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은 텅 빈 줄 알았던 지하철에 어린이 둘이 잠들어 있는 걸 본다. 다음날 그 아이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뒤부터 혼령을 본다. 집 천장에서 떨어지는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는 정원의 4인용 식탁은 정직한 공포의 공간이다. 행동이 느릿느릿한 주인공은 집 안에서 어떤 낌새를 느낄 때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곤 하는데 그 몇초가 엄청난 긴장감을 준다. 정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는 후반부, 커다란 차가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대로 그 장면을 목격한다면 끔찍함에 날밤을 지새울 수 있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4인용 식탁>의 정원과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를 겹쳐 보는 게 은근슬쩍 도움이 된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해!”라고 소리치는 드라마의 명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린다면 효과는 배가된다. /이유채

분홍신

감독 김용균/ 출연 김혜수, 김성수/ 15세이상관람가/ 2005년

공포 지수 ★★★☆

아무도 없는 지하철 플랫폼, 유독 도드라진 분홍신의 등장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소름 끼치는 찝찝함을 일으킨다(스크린도어가 없는 2000년대 초반 지하철 풍경부터 압도적이다). 분홍신을 빼앗은 사람이 죽음에 이른다는 영화 안의 저주는 주인공 선재(김혜수) 주변부로 퍼져나가고 그 위협의 문턱 앞에 선 딸을 지키기 위해 선재는 기꺼이 진실을 파헤친다. 안데르센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 삼은 작품으로 점프 스케어 구간에 겁보 관객은 크게 타격받을 수 있다. 눈알이 뽑혀 나가는 장면이나 얼굴 없는 여고생이 밀착하는 엘리베이터 신은 온몸이 경직된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기사를 쓰기 위해 <분홍신>을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방법이 없다. 깜짝 놀랄 구간을 예측하게 하는 작품들과 달리 <분홍신>은 마음 준비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공포를 직면해보시라. /이자연

불신지옥

감독 이용주 / 출연 남상미, 김보연, 심은경 / 15세이상관람가/ 2009년

공포 지수 ★★★★

혼자 살던 희진(남상미)이 동생(심은경)의 실종 소식에 동생과 엄마가 함께 사는 집을 방문한다. 혼령이 씌었다는 동생보다 무서운 건 모녀의 집이다. 고개를 치켜들면 한눈에 들어오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 햇빛이 들지 않아 컴컴한 집 안엔 종교용품이 즐비해 있다. 닫힌 문이 나오면 경계해야 한다. 수소문하는 희진은 자기 집 방문부터 이웃집 현관문까지 자주 문 앞에 서는데, 그 문틈 사이로 눈동자 하나가 쓱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물 뒤의 창문도 조심해야 한다. 창문의 검은 무언가는 얼룩이 아니라 바싹 붙어 안을 들여다보는 무당일 수 있다. 놀이터 그네에 희진이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오면 고개를 무조건 돌리길 바란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이용주 감독이 <불신지옥> 다음으로 만든 <건축학개론>의 그 유명한 O.S.T,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머릿속으로 재생시켜보자. 김동률의 달콤한 목소리가 무서움을 녹인다. /이유채

소름

감독 윤종찬 / 출연 김명민, 장진영 / 청소년관람불가 /2001년

공포 지수 ★★★★☆

<소름>의 공포는 첫신에서부터 시작한다. 택시 기사 용현(김명민)이 올려다보는 새집은 이미 귀신 여럿이 살고 있을 법한 낡은 아파트다. 그곳에 오래 산 주민이 스쳐 지나가듯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하나둘 쌓여 무서운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오래된 건물의 방음이란 형편없어 옆집의 정체 모를 소리는 민감도를 높이고 컴컴하고 긴 복도를 사이에 둔 인물들의 대화 신들은 그 틈새로 뭔가가 나타날까 조마조마하다가 입술이 말라버리고 만다. 용현이 미용실에서 이발하는 평범한 장면에서 경계를 낮추면 안된다. 김명민의 커다랗고 퀭한 눈동자와 갑작스레 눈을 맞추면 심장이 내려앉을 수 있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똥. 덩, 어. 리.” 우리는 김명민의 대표 캐릭터인 <베토벤 바이러스> 속 강마에를 잘 안다. 용현이 의뭉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그를 강마에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유채

스승의 은혜

감독 임대웅/ 출연 오미희, 서영희/ 청소년관람불가/ 2006년

공포 지수 ★★★★

폐쇄된 공간,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 살을 에는 고통의 복수. 세 가지 키워드를 주축으로 고어 장르에 충실한 <스승의 은혜>는 16년 전의 담임 선생님을 찾는 제자들의 반창회를 다룬다. 반가운 재회도 잠시, 아이들은 어릴 적 선생님에게 받은 무시와 핍박의 경험을 분풀이하기 시작하고 그럴 때마다 수위 높은 끔찍한 살인이 벌어진다. 학생 인권 개념이 정착하기 전, 교내 체벌이 허용된 시절의 극악한 경험을 당대 대중의 공통분모로 활용했다. 실제로 <스승의 은혜> 개봉 당시, 홍보 포스터에 선생님에게 겪었던 좋지 않은 경험담을 넣기도. (현실이 더 공포였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런 데 유독 취약하다면 귀여운 인형들을 화면 앞에 두는 걸 권한다.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인형들에게 시선을 맞추면 그만이다. /이자연

알포인트

감독 공수창 / 출연 감우성, 손병호 / 15세이상관람가 / 2004년

공포 지수 ★★★★

1972년 베트남전쟁 막바지. 실종된 동료들을 찾으러 병사 9명이 알포인트라는 미지의 섬으로 향한다. 편안한 시야 확보를 방해하는 밀림 배경과 낡은 라디오에서 끊기듯 흘러나오는 구조 요청, 무엇보다 자꾸 바뀌는 병사들의 수는 겁보들의 정신을 혼란하게 한다. 반드시 눈을 감아야 하는 결정적 순간은 외부 계단에 앉은 박재영 하사(이선균)가 위를 쳐다볼 때다. 타이밍을 놓치면 한동안 생각나는 끈적한 기억을 갖게 된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진짜 사나이> 같은 군대 예능프로그램이라 생각하고 보면 영화와 거리가 생긴다. 어디선가 조연출이 “미션 끝,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유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감독 김태용, 민규동 / 출연 김민선, 박예진, 이영진 / 12세이상관람가 / 1999년

공포지수 ★★☆

우연히 빨간 수첩 한권을 발견했을 때, 집을 것인가 말 것인가. 호기심 많은 여고생 민아(김규리)는 그걸 펼쳐보기로 한다. 내용을 보아하니 교환 일기고 글쓴이는 다름 아닌 같은 반 두 친구 시은(이영진)과 효신(박예진)이다. 밀담에 빠져들수록 민아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겪는다. 친숙한 학교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혼자 남은 교실, 공 하나가 데구르르 구르는 체육관과 손 씻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한 화장실 등 카메라가 들르는 학교 구석구석 공간들은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오싹한 기억을 되살리며 머리카락이 쭈뼛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영화 중반, 민아가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라고 읊조리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나무 걸상 밑에서 웬 낯선 손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곧 비명도 들려오니 미리 두 귀를 막길 바란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웃겼는지 모르겠는 학창 시절 에피소드도 부지런히 떠올려보는 게 좋다. 우리 반의 희극인이 누구였는지 기억 속의 졸업 앨범을 뒤지다보면 웃음이 날 수도 있다. /이유채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 출연 염정아, 김갑수, 임수정, 문근영 / 12세이상관람가 / 2003년

공포지수 ★★★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친근한 이미지로 활약 중인 염정아 배우를 떠올리며 <장화, 홍련>을 재생한다면 충격받을 수 있다. 시골집에 온 수미(임수정), 수연(문근영) 자매를 맞이하는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처마 밑 고드름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그녀의 모진 말이 쏟아지는 검붉은 입술과 얼굴에 깊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검은 눈썹, 도통 감기지 않는 매서운 눈은 은주의 클로즈업이 나올 때마다 피하고 싶어진다. 갑자기 화면이 빨간 거실 바닥으로 바뀌거나 카메라가 싱크대 밑과 옷장 안을 비춘다면 주저 없이 눈을 가늘게 떠야 한다. 뭔가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장화, 홍련> 촬영 당시 중학생이었던 문근영은 시간만 나면 근처 산에서 풀과 쑥을 캐와 염정아에게 차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다정하고 귀여운 촬영 현장을 생각하며 굳은 어깨를 주물러보자. /이유채

감독 안병기/ 출연 하지원, 김유미/ 15세이상관람가/ 2002년

공포지수 ★★★

2000년대 초반은 핸드폰의 보편화와 함께 통신과 관련한 괴담, 소문이 증식되던 시기였다. 무작위로 뽑히는 전화번호에서도 저주나 불행을 연관짓는 게 일종의 놀이였다. 새로운 핸드폰 구매 당시 이상하리만치 반복돼 뽑히는 011-9998-6644번을 받게 된 지원(하지원)은 원래 번호 주인의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엘리베이터 문 틈, 빗길 운전, <월광 소나타> 등 호러물의 클래식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예측 가능하지만 공포심을 일으키는 구간들도 영화 전반에 균형 있게 배치돼 있다. 특히 <폰>은 당대 최첨단 기기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만큼 당시의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기록의 가치로 접근하기도 좋다.

덜 무섭게 보고 싶다면

이건 정말 내가 자주 쓰는 꿀팁인데… 촬영장에서 모든 배역이 모여 밥차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자. 그럼 갑자기 인자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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