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감독은 청년 유니버스라고 부를 만한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가진 감독이다. 30대 초반 사장의 창업 도전기를 다룬 데뷔작 <코알라> (2013)를 시작으로 경찰대생 콤비가 납치 사건을 쫓는 <청년경찰>, 격투기 챔피언이 악에 맞서는 오컬트 액션물 <사자>, 젊고 가난한 복서들의 생존극 <사냥개들>까지 각본과 연출을 겸했다. 재미가 우선인 청년 정도(김우빈)가 상관인 보호관찰관 선민(김성균)과 함께 전자발찌 부착자 등을 밀착 관리하는 법무부 소속 공무직 근로자(무도실무관)로 일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무도실무관>은 김주환의 청년 유니버스에 속하는 안정적인 작품인 동시에 그 세계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 무도실무관과 보호관찰관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비교적 덜 알려진 이 직업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됐고 시나리오까지 쓰게 됐나.
보호관찰관을 먼저 알게 됐는데 그때가 입봉 전이니 벌써 10년도 더 됐다. 세상에 묵묵히 헌신하는 직업군에 관심이 많다. 좋은 사람이 되기에 부족한 인간이라 그런 것 같다. 3교대라 고되고 업무 자체가 험해 고생스럽겠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보호관찰관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생각까진 들진 않았다. 무도실무관을 알고 나서야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관찰관을 도와 일하는 직군인 만큼 나의 또 다른 관심사인 성장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각박한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이 깊어지면서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 예상을 비켜나가는 인물들이 흥미롭다. 우선 정도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운동과 게임을 즐기는, 현재 삶에 만족하는 청년이다. 보통이라면 방황하는 청춘이나 부모의 눈치를 보는 취업준비생으로 그려졌을 법한 캐릭터다.
이렇다 할 꿈이 없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불만족스러운 상태라고 단정하는 건 옛날식 사고가 아닐까. 지금 상황에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요즘 젊은 세대는 각자의 가치와 재미에 맞춰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정도를 행복한 청년으로 설정한 건 그가 주인공으로서 자기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선민은 대단히 온화하고 친절한 상관이다. 얼마든지 센 캐릭터로 만들 수 있는 역할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선민은 내 바람이 섞인 인물이다. 곁에서 따뜻하게 감싸줄 존재가 있어야 관객이 자신의 길을 가는 주인공에 동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선민은 내가 실제로 갖고 싶은 형이다. (웃음) 외롭고 막막할 때마다 먼저 다가와 주고 밥도 사주는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정도와 선민의 신을 쓰면서 대리만족했다.
- 전개도 신선하다. 아동 성착취물을 만드는 관리 대상자 강기중(이현걸)을 정도와 선민이 함께, 혹은 정도와 친구 3인방이 협력해 잡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 기회 전부를 정도에게 주었다. 정도가 홀로 서길 원했던 건가.
자기 행복이 최우선이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인물이 자기 욕망 때문에 모두를 파괴하는 인물을 이김으로써 본인의 성장 서사를 완성하는 그림을 원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정도와 강기중의 일대일 대결이 결말이었고 미란다원칙을 외치는 사람은 선민이 아닌 정도여야만 했다.
- 성폭행범과 성 착취물 제작 일당을 빌런으로 설정한 만큼 피해 장면을 어느 정도까지 노출할지가 중대한 고민거리였을 것 같다. 어떠한 대원칙을 세웠나.
무도실무관과 보호관찰관이 싸우는 범죄가 무엇이고 그들의 직업 세계에 대한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 장면을 아예 제거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내 기준에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둬냈다. 글로벌 OTT에서 공개되는 만큼 앞으로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볼 거라는 생각에 더 예민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럼에도 옛날 영화의 표현 수위에 길들여진 마흔 중반의 남성인 나를 믿을 수가 없어서 내부적으로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 기교적인 표현보다 사실감을 기반으로 하는 액션이다. 주인공이 건실한 공무원이라는 설정상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액션은 불가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나.
먼치킨 액션을 기본으로 잡았다. 정도가 유단자이니 엎어치기 같은 기술도 쓰고 공무를 수행하면서 쓰는 삼단봉도 활용하면서 액션의 색채를 넓혀보려 했다. 복싱을 다룬 전작 <사냥개들>과의 차별점도 고려했고 장르극의 심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액션의 규모와 강도를 점진적으로 늘려갔다. 현장 출동 신이 많은 만큼 인물들이 정말 많이 뛰고 움직인다. 특히 중반부에 정도가 지하로 내려가 강기중을 쫓는 컷과 사무실에서 지휘하는 선민의 컷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강기중이 성 착취물 일당과 모의하는 컷까지 인터컷 3개가 도는 구간이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바스트숏에서 바스트숏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작은 화면상에서는 자칫 모두가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더라. 그만큼 영화의 현실적인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라이팅과 색감을 확실하게 주고자 했다.
- 청년 콤비를 주연으로 하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다가 <무도실무관>에 이르러 청년과 중년, 멘티와 멘토로 주인공들의 관계가 바뀌었다. 감독에게 어떤 변화의 저점이 있었던 걸까.
80년대생 감독으로서 나를 항상 시작하는 입장에 두곤 했다. 거장 선배들이 이미 잘 구축된 동시대의 한국 장르영화의 세계 안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우선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게도 운 좋게 <청년경찰>이라는 첫 번째 표본 같은 작품이 생겼고 이제는 아이도 생기면서 내 아래 세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자주 한다. 후배들을 잘 이끌고 싶다는 마음은 큰데 아직 많이 서툴다. 어쩌면 선민은 갖고 싶은 형이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 경찰대생(<청년경찰>), 격투기 챔피언(<사자>), 복서(<사냥개들>), 보호관(<무도실무관>)까지. 신체적 능력이 요구되는 직업을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이유도 궁금했다.
싸움을 못해서 그런지 몸을 잘 쓰는 사람에 관한 부러움이 있다. 운전도 못하는데 차에는 관심이 많고. 실제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웃음) 대신 영화에서 푼다. 결정적인 이유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고 나는 액션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쇼박스에서 홍보팀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고지전>을 담당했다. 당시에 장훈 감독님이 “주환아, 3막은 액션으로 끝내는 게 맞아”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그땐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그렇게 맞는 말이 없다. 외적 갈등의 극대화, 아크 플롯의 절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액션이다.
- <사냥개들>을 보는데 코로나 시대를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반영한 영상 콘텐츠는 처음이라 놀란 기억이 있다. 데뷔 때부터 취재 베이스로 시나리오를 써왔고 극에 사회 이슈를 많이 끌고 들어온다. 당면한 현실 문제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인가.
<사냥개들>에서 배우들이 마스크를 끼고 대사를 해야 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큰 시도였지만 도전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특정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걸 얘길 하고 싶다는 데에서 글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한국적인 소재를 찾는 게 아닌가 싶다.
- 김주환 감독은 영화 만드는 전 과정을 통틀어 어느 단계에서 가장 재미를 느끼나.
<사냥개들> 홍보 기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작품 홍보 배너가 붙은 택시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 광경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그런 내 뒷모습을 나와 다섯 작품을 함께한 스크립터가 촬영하고 있더라. 그 순간에 우리 사이에 역사가 이렇게나 쌓였고 앞으로 한두 작품만 더하면 곧 10년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가족애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동료들이 곁에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가장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