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20세기, 대한민국 국민의 애환을 어루만진 대중가요가 몇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민이 화자인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파병 군인을 온 마을이 환영한다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산가족의 슬픔을 다루며 1983년 이산가족찾기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도 널리 불린 곽순옥 원곡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등. 이 모든 노래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의 인생을 대변하는 주제가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덕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통과하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잘 살고자’ 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가’ (Ode to My Father)라는 영어 제목을 지닌 <국제시장>의 이모저모를 돌아보았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국제시장> 후반부에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는 장면은 단연 덕수가 전쟁통에 헤어진 동생 막순(최스텔라김)과 해후하는 순간이 아닐까. 실제 1983년 KBS1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영 당시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 광장 일대에 벽보를 붙여 헤어진 가족을 찾았다. 200여명의 보조출연자가 동원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장면은 현재 공원으로 사용 중이라 촬영이 여의치 않은 여의도 광장 대신 부산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요트경기장에서 촬영했다. <국제시장>의 VFX팀은 요트경기장 후경에 즐비한 마린시티의 마천루를 모두 지운 후 1980년대의 조경과 당시 여의도 KBS 본관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합성해냈다. 광장을 도배한 벽보는 연출부와 제작진이 인당 10장씩 총 2000천장을 만들어냈다는 후문. 류성희 미술감독도 이 신을 두고 “촬영 전부터 미술팀과 소품팀이 함께 매일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채우면서 준비했다. 물리적인 작업양이 어마어마했다”라고 술회했다.
40년의 역사를 시공해내다
<국제시장>은 부산의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제작사는 만일에 대비해 부산시가 아닌 곳에 위치한 오픈세트장까지 대안으로 고려했다. 하지만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다른 도시로 보낼 수 없었다. 여러 부침 끝에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도예촌 예정 부지에 오픈세트를 건립했다. 도예촌 오픈세트장에는 1950, 60, 70, 80년대 등 총 4개 시대별 국제시장이 지어졌다. 류성희 미술감독에 따르면 미술팀과 소품팀은 “한국의 시장은 가게 공간보다 판매하고 있는 물건과 가게 이름이 더 중요하다”는 속성에 집중해 시대별 판매 물건과 가게 간판, 제품 라벨을 다양화하는 데 집중했다. 한편 40년의 한국 역사를 직접 시공해낸 <국제시장>의 세트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관계자들은 크랭크업 후에도 <국제시장> 세트를 보존하기를 원했으나 유지 예산 등의 한계로 오픈세트는 모두 철거됐다.
굳세어라 덕수야
덕수가 동생 막순과 아버지 진규(정진영)와 헤어지는 흥남철수작전 장면은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과 감천항에서 이루어졌다. 이 장면을 위해 300명에 가까운 대규모 보조출연자가 동원됐다. 일주일이 넘게 진행된 15회차 촬영 동안 제작진은 보조출연자들에게 “웃으면 계속 찍어야 합니다. 저 배에 타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려야 합니다”라는 연기 주문을 건넸다. 300명의 보조출연자가 입는 의상을 일일이 매만진 임승희 의상실장은 “당시 피난민들은 따뜻할 수만 있다면 천이란 천은 모두 몸에 걸쳤을 것이다. 보조출연자를 위해 마련된 시대 의상만 500벌 이상이다”라며 장면에 들인 공을 설명했다. 해당 장면은 11월에 촬영됐다. 아직 눈이 내리기엔 다소 따뜻한 시기다. 혹한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특수효과팀은 강풍기를 동원해 녹말가루로 만든 1.5kg 분량의 가짜 눈을 하늘에 흩날려 장면의 방점을 찍었다. 장면의 스펙터클을 위해 레드에픽, 알렉사, F65까지 총 3대의 카메라가 피난민들의 아비규환과 눈물을 담아냈다.
<영화부산> 2014. VOL.8 ‘부산 촬영 클로즈업’,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씨네21> 943호)
‘마, 타임머신 탈 준비 됐나?!’(<씨네21> 983호)
‘KBS2TV <영화가 좋다> 418회(2014년 12월20일 방영)’ 발췌 및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