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연속기획 1]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해운대>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인터뷰
2024-10-18
글 : 정재현
사진 : 오계옥

잘 알려진 대로 윤제균 감독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 사실을 몰라도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의 고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해운대> <국제시장> 등 부산의 명소를 제목에 명기한 두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엔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꿈을 키운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지역성이 형형하다. 특히 윤제균 감독은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어야만 하는 당위를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설득해내는 데 능하다. 왜 재난 블록버스터인 <해운대> 에 만취한 만식(설경구)이 추태를 부리는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의 경기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할까. 왜 <국제시장> 속 영자(김윤진)와 오랜만에 재회한 덕수(황정민)는 회 한 접시를 기어코 태종대 해상절벽위 평상에서 대접해야 할까. 영화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해일이 닥치기 며칠 전 폭풍 전야라 해도,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가장의 무게가 연신 풍파로 몰아치는 삶 한가운데에 있다 해도, 좀처럼 자기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두 부산 사나이는 “부산 사람이면 다 이해하는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를 누리고 그제야 숨을 쉬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부산 출신 감독’이라 공표하길 주저하지 않는 윤제균 감독을 만나 천만 관객의 호응을 얻은 두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에 관해 물었 다.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두 남자주인공을 끝내 힐링 스폿에 배치한 뒤 흐뭇해하는 윤제균 감독의 표정을 만식과 덕수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겹쳐볼 수 있었다. 인터뷰 텍스트는 표준어 규정에 의해 정리했지만, 윤제균 감독의 문장마다 스민 동남 방언 억양을 가능한 한 곁들여 읽는다면 그의 부산 사랑이 한층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 부산을 배경으로 한 두편의 연출작 <해운대>와 <국제시장>이 개봉 당시 모두 천만 관객을 달성 했다.

= 많이들 내가 부산에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아는데 사실 세편이다. <1번가의 기적> (2007)도 부산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 그래도 <해운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부산의 구체적 지명을 배경에 가져다 쓴 영화이기 때문이다.

= 기획을 한 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4년 12월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 해저에서 쓰나미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나. 그때 해운대 지역의 어머니 댁에서 뉴스 속보를 보는데 순간 ‘휴가철 100만 인파가 모이는 해운대에 쓰나미가 밀려오면 어떻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나리오 개발을 시작해 2008년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 여러모로 그 당시라 착수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해운대 지역이 부산시 제1의 관광지이긴 해도 지금은 100만 인파가 여름 휴가철 하루에 몰리진 않으니 말이다.

= 맞다. 그때 동해 경포대나 서해 대천해수욕장도 성업했지만 그래도 두곳에 해운대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리진 않았다. <해운대>를 찍던 2008년의 해운대 지역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였다. 기억하기론 센텀시티가 막 조성될 때였고 엘시티와 영화의전당이 지어지기 전이었다. 그래서 센텀시티 일대엔 고층 빌딩이, 조금만 벗어나도 해운대 시장과 미포 일대엔 1970, 80년대의 소담한 정경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대도시의 마천루와 촌락의 포구가 한데 모인 로케이션이었다. 지금 해운대 지역의 도시 발전 모습을 보면 <해운대> 속 모습은 또 많이 사라지고 없다.

<해운대> 는 장소에 관한 영화다

- 영화를 다시 보니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몰려오는 시점은 후반 50분이다. 영화의 전반부, 중반 부엔 해운대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군상들이 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엔딩크레딧의 촬영 협조 명단에 ‘미포 어촌계 및 미포 주민분들’이 가장 먼저 올라와 있다.

= <해운대>를 기획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이 100만 인파 중 이야기의 표적이 될 세 커플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훗날 <이웃사람>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연출한 김휘 감독과 함께 <해운대>의 시나리오를 쓰며 작업실 벽면에 포스트잇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든 후 붙였다 떼길 반복했다. 그래서 해운대 지역이 삶의 터전인 연희(하지원)와 만식, 해운대에 놀러 온희미(강예원)와 그를 사랑하는 토박이 형식(이민기), 이혼 후 부산에 출장 온 유진(엄정화)과 휘(박중훈)가 탄생했다. 여기에 감초 역으로 동춘(김인권)을 추가했다. 부산 시민인 연희와 만식은 정감 넘치는 해운대 지역의 단면이 두드러지는 미포에, 젊은 커플인 희미와 형식은 밤의 해변에, 화이트칼라 외부인인 유진과 휘는 누리마루APEC하우스를 비롯한 마천루에 배치해두었다. 그래서 <해운대>는 장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기획 단계에서 많은 이들로부터 ‘이 장소만은 빼야 한다. 이야기 진행상 불필요한 장면이다’는 피드백을 받은 신이 하나 있다. 맞혀보겠나.

- 씨라이프부산아쿠아리움 시퀀스인가.

= 아니다. 롯데가 경기를 벌이는 사직구장 경기 장면이다. 첫째, 사직구장이 해운대 지역에 있지 않다는 이유였고 둘째, 재난영화에 야구 장면이 웬 말이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산 사람이면 다 이해한다. 우리에겐 롯데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0년 넘게 롯데 창립 회원이다. 그나저나 지금… 아니 내가 50대 중반인데도 (2024년 기준) 우승을 두번밖에 못한 게 말이 되나! (얼마간 정적) 롯데는 애증의 존재다. 롯데가 이겨야 그날 집안이 평화롭다. 부산 시민들에겐 롯데는 야구단 이상의 의미라 무조건 <해운대> 에 들어가야 했다. 부산 출신 감독, 부산의 정서를 이해하는 감독만이 완성할 수 있는 장면 이라고 생각한다.

- 영화 속에서도 경기장에 가지 않은 부산 시민들도 휴대폰 DMB로 경기 중계를 저마다 시청하는 장면이 굳이 등장한다. 롯데와 삼성 라이온즈의 실제 경기 중 촬영에 들어갔다고.

= 실제 경기 중 관중석의 한 블록을 전부 예매해 촬영한 장면이다. 우리가 대관한 200석을 제외하면 전부 부산 시민과 관중들이었다. 사직야구장 근처의 사직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롯데가 패했을 때의 분위기를 너무 잘 안다. 촬영을 시작하니 롯데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배우들과 스태프를 우선 철수시켰다. 롯데 팬들에게 영화를 찍는답시고 배우들이 들어와 있으니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 못했다는 비난,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전부 왜 촬영을 중단하냐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나는 오늘 촬영은 접을 수도 있겠다는 결심까지 했을 정도다. 그렇게 무한정 대기하던 중 갑자기 환호성이 들리는등 사직구장 일대가 난리였다. 확인하니 롯데가 삼성을 역전하고 있었다. 서둘러 배우들과 스태프를 재투입해 촬영을 마무리했다. (웃음) 결국 관중들도 함께 완성한 장면이다.

- 해운대 시장에 쓰나미가 들이닥쳐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을 찍던 날 고생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감독님의 차까지 물속에 빠뜨릴 정도로 결단이 필요한 날이었다고.

= <해운대>를 촬영하며 가장 힘든 날이었다. 할리우드였다면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세트를 지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해운대 시장은 상인들의 생업이 걸린 장소다 보니 해운대구청의 허가가 필수였다. 결국 구청의 허락을 받은 날이 2008년 9월14일, 추석 당일 오전이었다. 공휴일이어도 오후엔 장사를 재개해야 하고, 낮엔 시장 상인들도 차례를 지내러 가니 딱 그 시간만 시장 전체가 비기 때문이다. 원상 복구 시간까지 감안하여 오전 11시에 모든 촬영을 마친 후 정오에 철수한다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했다. 상인들의 밤 장사가 끝난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해운대 시장에 수조를 만들고, 오전 7시부터 11시, 4시간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다. 해뜰녘에 물을 붓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경사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물이 골고루 차 있어야 하는데 경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물을 부었으니, 한쪽에만 물이 찼다. 그래서 급하게 나를 포함한 모든 제작진이 해운대 백사장으로 달려가 모래를 퍼와 경사를 보완하기 위한 둑을 쌓았다. 모래주머니를 열심히 만드는데 그걸 본 부산 주민이 모래를 밀반출하는 사람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해서 촬영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해명도 해야 했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그날 예정된 촬영을 마치지 못하면 신 전체가 날아가는 상황이라 심각했다. 제작비도 없으니 당연히 그림이 될 법한, 카메라 앞에 걸리는 자동차도 몇대 없었다. 그래서 우선 내 차를 뒤집어둔 것이다. 결국 오전 9시부터 11 시, 2시간 안에 장면을 완성했다. 그다음 힘들었던 장면이 광안대교 신이다.

- 광안대교야말로 부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 아닌가. 협조가 이루어진 게 신기하다. 해상 교량인데다 직선거리도 길어 카메라와 조명 설치 모두 용이하지 않은 장소지 않나.

= 부산시에서도 광안대교만큼은 절대 촬영이 불가능하다며 미안해했다.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대교가 안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 CG 작업 등을 고려하고 있던 차에 부산시로부터 제한적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세계 1천만명 걷기대회의 반환점이 광안대교인데, 행사 진행을 위해 시 차원에서 광안대교를 한나절 동안 일부 통제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틀에 걸쳐 한쪽 두 차선과 반대쪽 두 차선을 나눠 촬영했다.

- 그 장면에서 동춘은 왜 담배에 불을 붙이나. 장르적 서스펜스로 이어지는 필요한 장면이지만 그 바람에 일이 더 커진다.

=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절대 안 들어갔을 장면이지. (웃음) 내가 코미디영화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영화에 웃긴 신을 꼭 넣고 싶었다. 재난영화지만 어두운 장면만 포함하는 건 원하지 않았거든. 새로운 코믹 아이 디어가 떠오르면 어떻게든 넣으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장면들은 욕심이 과했다.

- 원래 시나리오에선 지하철 역사가 휩쓸리는 장면도 구상했었다고. 부산 지하철 또한 부산시의 풍경처럼 역사 곳곳에 1980년대 유물이 남아 있는 등 옛 모습을 오랫동안 보존해두지 않나.

= 선택과 집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산 문제가 컸다. 지하철역에 쓰나미가 들이치는 장면 이야말로 세트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다 돈이지 않나. 당시 우리나라엔 수조 세트도 없었기 때문에 실내 공간에 물이 차도록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나중에 샌프란시스코에 특수촬영을 가서야 비로소 노하우를 알게 됐다.

- 개봉 이후 15년이 흐른 2024년에 <해운대>를 관람하는 경험은 여러 가지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014년과 2022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를 목도한 이후 <해운대> 의 합동 영결식 장면을 다시 보니 전과 다른 감상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해운대>가 어떻게 나이 들었으면 하나.

= 그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일어나선 안됐던 사고들이고,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사고들이다. 영화의 기획 당시 관계자들로부터 받았던 걱정이 재난의 시작 시점이었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는 초반부터 재해가 몰아쳐서 스펙터클을 완성 하고 한명의 영웅이 인류를 구원하는 감동이 있는데, <해운대>는 영화 시작 후 한참 지나야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단일한 영웅이 없다는 이유였다. 영화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내 입장은 강고했다. 쓰나미는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해운대>는 사람들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인연이 모여 운명을 이룬 사람들이 불가항력인 재난 속에서 서로를 용서하는 이야길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사람의 인생에서 서로 죽이니 사니 아옹다옹 사는 게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다 무슨 의미겠나. 그 지점에 감응한 한국 관객들이 천만이라는 스코어를 달성해주었다고 믿는다. 죽을 뻔한 만식을 살린 건 결국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작은아버지(송재호)고, 형식은 희미를 위해 눈엣가시 같던 남자 대신 희생이 라는 결단을 내린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국제시장>에 부산의 모든 곳을 담고 싶었다

- <국제시장>도 <해운대>에 이어 제목에 부산의 상징적 장소명을 썼다.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제목을 반대했다. <국제시장>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70, 80%의 관계자들이 ‘인터내셔널 마켓’이면 자칫 영화가 무기 밀매업자들의 스릴러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해운대> 때도 <해운대> 대신 <쓰나미 인 부산> <빅 웨이브> 등으로 제목을 바꾸자는 여론이 다수였다. 하지만 바꿀 수 없었다. 원래 부산의 중심가이자 번화가는 국제 시장이 위치한 남포동, 광복동 일대였다. 서울로 치면 명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해운대가 지금의 발전에 이르기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이 큰 몫을 했고 지금은 부산 하면 해운대를 많이 찾지만 20세기까진 부산 하면 남포동, 광복동, 태종대를 찾는 여행객이 훨씬 많았다. 어느새 국제시장 일대가 구도심이 된게 가슴이 아팠다. 어릴 때부터 자주 찾던 동네라 애정과 추억이 남다르다. 중학생 시절 아토피가 있어 치료를 위해 초량동에 위치한 병원에 꾸준히 다녔다. 늘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본 후 국제시장쪽을 한 바퀴 순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게 나의 루틴이었다. 국제 시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의미가 깊은 장소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낙동강까지 밀려났을 때 국제시장에 모두 모였다. 많은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재건하며 살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이 역사를 모르더라. 전 국민이 이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다.

- <국제시장>에서 부산 방언을 사용하는 방식도 재밌다. 덕수 어머니(장영남)와 꽃분(라미란)은 삶의 절반 이상을 부산에서 살았지만 끝까지 함경도 방언을 쓰는 반면, 덕수는 함경도 방언을 사용하다 어느 순간부터 부산 방언을 쭉 사용한 다. 결혼 전까진 서울말을 쓰던 영자도 마찬가지다.

= 아무래도 어리고 젊을 때 이사 온 사람들은 사투리를 금방 습득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내려온 사람들은 말씨가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 영자는 20대에 내려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수십년을 살았고 국제시장에서 장사도 했으니 부산 사투리를 금방 익혔을 것이다. 고증에 의한 설정이다.

- <해운대>와 <국제시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는 “고마 해라”다. 이 대사는 모두 중년의 남자주인공, 만식과 덕수에 의해 발화된다. 그래서 두 영화를 ‘부산 남자’에 대한 탐구로 보아도 재미있다. 일례로 두 주인공 모두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러 우회하는 말하기를 택한다. 상대 여성으로부터 왜 고백하지 않느냐며 타박을 듣는 장면도 반복된다.

= 지금 부산 젊은 남자들은 덜할 텐데, 경상도 지역엔 대체로 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길 어색해하는 남자들이 참 많다. 그런데 지금껏 내 영화에 나온 남자주인공들은 배경이 서울이어도 하나같이 연애에 숙맥이다. <두사부일체>의 두식(정준호)은 윤주(오승은)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색즉시공>의 은식(임창정) 또한 행동만 앞선 놈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의 아내와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났다. 사랑 경험이 많이 없는 나의 자아가 자연히 내 영화 속 남자들에게 반영됐다고 본다.

- <국제시장>은 국기강하식 장면까지도 용두산공원을 배경으로 찍는 등 부산의 모든 랜드마크를 화면에 담아야겠다는 야심이 돋보인다. 부산의 풍경을 기록물로 아카이빙하고자 하는 열의도 느껴진다.

= 부산의 모든 곳을 담고 싶었다. 국제시장과 다소 거리가 떨어진 남부민동까지 영화에 담았다. 덕수네 가족이 처음 부산에 내려와 터를 잡은 남부민동은 과거 달동네였다. <1번가의 기적>을 찍을 때부터 내 영화의 로케이션으로 남부민동을 찾았다. 지금은 감천문화마을을 포함해 지역의 고유성을 보존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영화를 통해 부산의 모습을 보존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초장동에 위치한 덕수 집 옥상에서 부산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장면은 지금 찍는다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땐 롯데백화점을 짓기도 전이 었다.

- <국제시장>엔 영화를 향한 감독의 사랑이 녹아 있다. 남포동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대영(옛 대영시네마)와 BIFF광장이 등장하고, 달구(오달수)가 릴 영사기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도 굳이 삽입돼 있다.

= 안 들어가도 되는데 들어간 장면 중 하나가 상영관 내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통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시절 풍습을 그리려 애썼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멀티플렉스가 어디 있나. 그때 부산에서 개봉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남포동과 광복동에 가야 했다. 거기서 <E.T.>(1982)를 비롯한 많은 영화를 보았다.

- 영도대교를 활용한 장면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염두에 두었다고.

= 6·25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 터를 이룬 후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를 하나같이 영도대교 아래에 붙여두었다.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에 나오듯 말이다. 부산에서 점쟁이들의 좌판이 가장 많이 깔린 곳 또한 영도대교 아래다.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를 붙인 후 실제 헤어진 피붙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리 아래서 점을 본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장면이 있기 때문에 생략했다.

모두가 촬영지로 선호하는 부산이 해답이다

- 부산에 대한 감독의 굳은 애정 이외에 영화 촬영지로서 부산이 지니는 이점이 크다고 보나.

= 이점이 100%다. 우선 대한민국의 배우, 스태프 등 누구에게 물어봐도 가장 영화를 찍으러 가고 싶은 도시를 묻는다면 부산이라 이야기 한다. ‘다들 서울 혹은 수도권에 사는데 왜 먼 부산을 원할까?’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 촬영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부산에 촬영하러 내려가는 건 모두에게 휴가를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서울과 분명히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외 영화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국제영화제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말한 지도 한참 됐다. 정말이다. 내가 다 물어봤다. 부산이라는 지역이 가진 신뢰도, 그리고 그 신뢰도에서 비롯한 선호도가 상당하다. 또한 부산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과거, 현재, 근미래의 풍광이 공존하는 도시가 많지 않다.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소박한 시골 풍경이 한데 있어 한 도시에서 2020년대 느낌과 1970년대 느낌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 비용적인 이점도 크다. 영화, 시리즈 촬영이 최소 일주일은 한 세트에서 계속 이루어지는데, 서울 근교는 지가가 비쌀 수밖에 없고 부지도 빈 곳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때 부산이 좋은 해답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다. 부산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다고 해서 늘 활어회, 돼지국밥 등 특식만 먹을 순 없지 않나.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를 만족시키는 부산 로케이션 운영 방안을 들려준다면.

= 워낙 해운대 근처에 맛집이 많아 사람들이 부산 촬영을 선호한다. 매번 별미만 먹는 건 어렵기 때문에 밥집도 잘 찾는다.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법한 밥집이 해운대에 두곳 있다. 장부를 놓고 식대만큼 기입할 수 있는 곳이다. 가정식처럼 밥과 반찬이 나오는데 두 식당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다. 아직 두 식당이 있는진 모르겠다. 참 맛있는데. (웃음)

- <해운대> <국제시장> 모두 부산이 또 다른 주인공인 영화였다. 부산을 잘 모르는 스태프들에게 특정 장소에서 해당 장면을 꼭 찍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득하나.

= 설득보다는 설명에 가깝다. 서울만 해도 피맛골이 지닌 의미를 서울 토박이들은 명확히 알고 있지 않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외지인들에게 각 장소가 지닌 의미를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 외지인(外地人)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부산 시민들에게 종종 듣는 표현인데 다른 지역에선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 그런데 부산 사람들이 의외로 배타적이지 않다. 부산이 항구도시라 옛날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 등 해외 선박이 자주 드나들었다. 덕분에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일찍 흡수됐고, 시민들 또한 문화적 다양성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에 무척 익숙하다.

- 많은 관객이 윤제균 감독 하면 부산을 자동 연상한다. 윤제균 감독 하면 부산 출신 감독,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수 연출한 감독이란 의견이 늘 함께 따라붙으니 말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짚어봐도 대중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이렇게까지 지역성을 줄곧 탐구해온 경우가 감독님 이외엔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 부산에서 평생 영화를 찍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국제시장> 다음에 나왔던 <영웅>만 해도 부산과는 무관한 영화였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소속감은 사람으로서 더 큰 꿈을 꾸는 데 일조한다.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속엔 엄마의 품같은 고향이 있지 않나. 내가 안정감과 애정을 느끼는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를 대표하는 스토리텔러 중 한 사람이 되는 것만큼 큰 영광이 또 없다. 다시 한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획과 대본이겠지. 무얼 해야 할지 이제 고민할 차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