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시간과 상황에 근거해 사랑 그리고 상실을 정의하는 동음이의 시네마, <미망>
2024-11-20
글 : 정재현

첫 번째 챕터, ‘미망’(迷妄)의 헤어진 연인 여자(이명하)와 남자(하성국), 남자의 현재 연인인 여자(정수지)는 종로를 헤맨다. 두 번째 ‘미망’(未忘)의 여자와 남자(박봉준)는 영화 <미망인>(1955)의 상영 후 새로운 인연으로 옛사랑을 잊으려 한다. 세 번째 ‘미망’(彌望)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또 다른 남자(백승진)는 타인의 부재를 통해 삶의 다음 단계를 멀리 또 넓게 응시한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두 남녀의 대사는 시간과 상황에 근거해 사랑을 새로 정의하려는 감독의 시도로 읽힌다. 심지어 “똑같은 데인데 다른 데 같아요. 아깐 안 그랬는데”라는 남자의 대사처럼 동일한 시공간을 상대에 따라 다르게 감각하기도 한다. <미망>의 세 챕터엔 상실의 정념이 드리워 있다. 점점 없어지는 공간을 그리려는 사람, 후반부가 유실된 영화의 필름, 죽음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까지. 영화는 변모하는 생을 그리지만 그럼에도 삶에서 지표로 삼아야 할 변치 않는 것들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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