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연속기획 5]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부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부산 제작기
2024-11-18
글 : 최현수 (객원기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부산도 영화도, 살아 있네!

2012년에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개봉 직후부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다. 세관 공무원 출신 익현(최민식)과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인 형배(하정우)가 혈연과 야욕으로 빚어낸 한국만의 갱스터적 서사는 1980년대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특수성의 공이 컸다. “살아 있네”부터 “명분이 없다 아입니꺼”까지 지금도 여전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대사들이 전부 부산 방언인 이유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단 한순간도 부산을 벗어나지 않은 진정한 ‘부산 영화’이기 때문이다. 2011년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총 29회차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부산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세관 공무원에서 조직폭력배의 대부로, 성공한 사업가에서 정계를 주무르는 마당발로 변신하기까지 최익현이 성공을 위해 밟아온 모든 자취를 부산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12년의 영화가 1980년대의 부산을 복원하려 했듯, 12년이 지난 지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그려낸 부산의 궤적을 되돌아보기 위해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빌렸다. 조화성 미술감독, 당시 제작실장을 맡았던 박민정 PD, 로케이션 지원을 담당했던 부산영상위원회 경영지원팀 이승의 팀장과 촬영 현장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부산 이야기를 되살려보았다. 더불어 윤종빈 감독, 고락선 촬영감독이 이전에 남겼던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사건의 발단이 된 부산항

윤종빈 감독은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세관 공무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최익현이란 인물에 녹여냈다. 따라서 영화의 시발점은 익현이 근무하는 부산 세관과 부산항이 될 운명이었다. 사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부산항에 있었다. 세관 공무원으로 밀수를 눈감아주며 뒷돈을 받던 최익현이 범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은 해고 직전 컨테이너에서 발견한 마약 때문이었다. 부산영상위원회 이승의 팀장과 박민정 PD는 입을 모아 가장 섭외하기 어려웠던 공간으로 부산항을 언급했다.

“부산항은 국가 보안 시설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보안부터 안전 대책까지 촬영 현장을 철저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 이승의 팀장의 말처럼 부산항 촬영은 제약이 많았다. 박민정 PD는 그럼에도 부산항을 포기할 수 없던 이유로 “80년대 부산을 상징하는 산업은 무역업이었고, 항구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핵심 공간”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영화 초반부 최익현의 이야기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촬영 허가를 받으려 부단히 노력했다.”(박민정 PD) 부산항만공사로부터 성공적으로 촬영 허가를 받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팀은 부산항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북항 1부두와 과거 양곡부두로 불렸던 북항 5부두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아버지 세대의 초상, 익현의 단칸방

“어디 오빠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여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예비 매제(마동석)와 최익현을 찾아온 날, 익현이 매제에게 돈과 시계를 퍼주자 아내는 설움에 북받쳐 소리친다. 그녀의 억울함은 아마 단칸방에서 머무는 가족의 처지 때문도 있을 것이다. 윤종빈 감독이 “어려서 영도에서 살 적에 실제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라고 밝힌 최익현의 단칸방은 가정을 지탱해온 익현의 과거와 성공을 위한 가부장의 강박이 모두 서린 공간이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실내 세트로 구현된 익현의 단칸방은 조화성 미술감독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개인 공간 하나 없이 대가족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보편적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조화성 감독은 디테일에 집중했다. “뜯어진 장판이나 몇번이고 덧댄 벽지, 임의로 단칸방을 다락방처럼 구분한 문턱” 등을 통해 명확히 구획된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뒤섞인 기성세대의 가족상을 세심하게 드러냈다.

최익현의 단칸방 내부가 치밀한 세트 디자인의 결과였다면, 최익현의 집이 위치했던 영선동 흰여울길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공간이다. 익현의 여동생이 예비 매제와 결혼 소식을 알리려 찾아올 때 한번, 익현이 형배와 본격적으로 손잡기 시작하면서 단칸방을 떠나게 될 때 한번. 단 두번만 등장하는 영선동 흰여울길은 이승의 팀장에 따르면 “부산 시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촬영 이후 사람들에게 흰여울길이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이 되었다. “영화라는 콘텐츠가 한 지역을 발굴해낸 모범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승의 팀장)

나쁜놈들의 전성시대, 중앙동을 휩쓸다

최익현과 최형배가 혈연을 기반으로 협력을 도모하면서, 권모술수와 주먹으로 무장한 두 사람의 전략적 동거가 처음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중앙동 거리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가 흘러나오면서 익현과 형배의 뒤로 위풍당당하게 내딛는 조직원들의 발걸음은 중앙동4가를 가로질렀다.

부산역과 남포역 그리고 북항 사이에 있는 중앙동4가는 사무실이 밀집한 업무 지역이어서 주중에는 유동 인구가 많다. 그럼에도 이승의 팀장은 “중앙동 촬영이 촬영 통제에 용이한 공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일방통행로가 양쪽으로 뚫려 있어 전체를 사용하느라 한 블록을 통제해도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이승의 팀장)

특히 실권을 잡은 조직폭력배 김판호(조진웅)를 몰아내달라는 나이트클럽 사장 허삼식(권태원)의 부탁으로 형배의 조직이 중앙동에 집결한 장면은 벌건 대낮에도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었다.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장면으로, 카메라가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고락선 촬영감독은 “이동차에 탄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고” 중앙동 집결 장면을 찍으면서 폭풍전야의 상태를 구현했다.

화려하지 않은 일상성의 소굴

익현이 아첨과 처세술을 통해 고위 권력자들과 끈끈한 인맥 관계를 맺는 사이, 형배는 조직을 이끌며 폭력으로 궂은일을 도맡고 있다. 고급 일식집과 호텔을 오가는 익현의 공간과 달리 형배의 조직은 운수업 사무실이나 호텔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각각 일월운수와 남태평양관광호텔에서 촬영한 형배의 조직 사무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조화성 미술감독은 형배를 “엄청난 악당보다는 범죄라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상가에 임대 형태로 들어간 조직의 사무실에는 “화려함보다는 일상적인 기능성이 부각되는 소품” 위주로 배치하였다. 더불어 “과시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생활과 다르지 않은 암울함”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 전반에 “칙칙한 색감”을 강조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유달리 식당이 자주 등장한다. 익현이 동료들로부터 해고 권유를 받는 곱창집은 김해의 부산양곱창이며, 김판호를 치기 직전 형배의 조직은 폐업한 삼중다방에서 대기한다. 익현과 형배의 절연을 확신하는 장소인 중식당은 중앙동에 있는 동궁이며, 익현이 판호를 안심시키는 공간 역시 중앙역 근처의 화국반점이었다. “1980년대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한정적이었다. 사우나, 다방, 음식점 등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도 사업 얘기가 빈번하게 오갔다.”(박민정 PD)

공존의 미학을 담은 부산

“부산은 어떤 시나리오라도 주어진 상황을 대부분 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지역도 존재하며, 산, 강, 바다, 평지 등 다양한 자연물이 한 도시 안에 모여 있다.”(이승의 팀장) 당시 제작실장으로 스태프들의 동선까지 신경 썼던 박민정 PD는 “다양한 성격의 로케이션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제작자로서는 하나의 공간에서 최대 효율을 지닌 동선을 계획할 수 있었다”며 덕분에 효율적인 프로덕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1982년의 최익현이 부산항과 단칸방을 전전하던 때와 2012년의 최익현이 해운대의 고층 라운지에서 권력을 영위하던 시간이 공존하는 도시. 영화도시 부산은 시제와 공간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성의 도시였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의 부산을 다루지만, 그저 과거에 머물기보다 2012년까지 시제를 확장했다. “나쁜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고 자신의 영화를 요약한 윤종빈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아버지의 전성시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한다. 부산이라는 공간의 연속성을 살려둔 채. 과감히 30년을 건너뛸 수 있던 이유는 “부산이 권역마다 점층적인 시간의 변화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도시”(박민정 PD)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쇼박스, 팔레트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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