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연속기획 5]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부산+’, <헤어질 결심> 부산 제작기
2024-11-18
글 : 김소미

<헤어질 결심> 산과 바다의 도시

<헤어질 결심>엔 감금방도 정신병원도 수상한 한복집도 없다. 그동안의 박찬욱 감독 영화와 비교할 때 “리얼베이스가 강조된”(류성희 미술감독) <헤어질 결심>에선 대신 익숙한 공간들이 낯선 옷을 입고 미묘한 패턴을 드러낸다. 한국영화의 단골 무대인 경찰서와 심문실이 한국은행 부산본부 내부에서 모던하게 재탄생하는 등 곳곳의 장면마다 인물과 호응하는 감정의 지도를 무늬로 새겨넣은 부산 촬영분 작업기를 전한다.

필사의 등반과 살인, 말없이 죽은 이의 비밀이 시작되는 장소인 아찔한 비금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헤어질 결심>의 산 정상은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촬영소가 착공되기 직전의 기장 도예촌에서 완성됐다. 영화 <해치지않아>의 동물원 세트를 기장 도예촌에서 진행했던 고대석 프로듀서가 산밑에 위치한 도예촌 오픈세트의 위치와 지형 조건들을 눈여겨보았던 덕분이다. 서래(탕웨이)가 기도수(유승목)를 미는 산 정상의 숏, 그리고 해준(박해일)과 수안(고경표)이 장비를 타고 절벽을 올라가는 숏의 그림이 중요했다. “몇주에 걸쳐 풀들이 자라는 노지의 평탄화 작업 이후 약 5층 높이의 절벽 세트를 지었고, 기도수가 떨어지는 부감 장면을 위해 깊이감을 주기 위해 절벽 세트 아래로는 더 깊숙하게 땅을 팠다.”(고대석 프로듀서)

대각선으로 이어진 철제 구조물들이 돋보이는 이곳은 대동화명대교. “촬영이 진행되는 밤 시간대에 잘 막히지 않고 임호신(박용우) 주변으로 차가 쌩쌩 달리는 곳을 최우선적으로 찾았다.”(고대석 프로듀서) 이 신을 촬영할 때가 1월 말. 디테일을 위해 트럭 차량을 섭외한 고대석 프로듀서는 “조금이라도 촬영 시간을 줄여보고자 5t 탑차 3대를 미리 대기시켜 다음 컷을 바로 찍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최대한 제작비를 아끼는 방식으로 살림을 꾸렸지만 이날만큼은 쿨하게 비용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 추위의 날씨였다”고 당시의 혹독한 강추위를 회고했다.

야외 전경과 실내 인테리어의 절묘한 조합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은 서래 집이다.”(고대석 프로듀서) 벽지는 물론 마감재까지도 하나하나 공들여 선택한 박찬욱 감독 영화의 세트를 완성하기까지 프로듀서를 긴장시킨 공간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완성된 서래 집 내부다. “서래의 집이기 이전에 기도수의 집인, 기도수의 안에 서래가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공간”(고대석 프로듀서)을 나타내기 위해 거실과 주방을 분리한 컨셉이 주효했다. “거실은 기도수의 취향을 반영한 듯 원목과 엔티크한 가구가 돋보인다. 한편 서래의 공간인 주방쪽은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산과 바다를 함의한 벽지가 가장 두드러진다.” (고대석 프로듀서)

공간 컨셉 회의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은 로케이션에 자연스럽게 부산의 정서가 묻어나길 바랐다.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시선이 맞은편 동의 창 너머로 수평을 이루는 것도 최초의 주문 중 하나였다. 고 프로듀서는 수평이 맞는 높이의 다른 건물에서 서래의 집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을 염두에 두고 헌팅 중 높은 언덕 지대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인 대동맨션을 발견하게 됐다. “언덕에 위치하다보니 아파트 동간에 단차가 있었다. 그래서 해준이 낮은 동의 옥상에서 서래 집을 바라볼 때 시선의 수평이 이루어지도록 박찬욱 감독님께 제안드렸다.”(고대석 프로듀서) 대동맨션의 옥상에서 멀찍이 케이블카와 송도해수욕장이 보이는 등 부산의 풍경을 품은 아파트란 점도 분위기를 더했다. 서래가 땅을 파서 까마귀를 묻어주는 공간 역시 대동맨션에서 그대로 진행했다. “시나리오에 구현된 바로 그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다만 땅이 쉽게 파지질 않아서 촬영일 아침부터 땅을 파서 새로운 모래로 채워두었다.”(고대석 프로듀서) 한편 제작진은 서래가 근무하는 월요일 할머니 집의 외부 전경으로 금정구에 위치한 유창빌라를 택했다. 내부는 세트지만, 서래가 아파트 창을 넘어 드나들면서 알리바이를 맞춘다는 설정을 위해 1층 창과 주차장이 바로 면한 구조를 찾았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의 새시가 특유의 정취를 더했다는 후문이다.

로케이션을 활용한 세트의 위력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본 적 없었던 미술을 보여준 <헤어질 결심> 속 부산 경찰서는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에서 찍었다. 지금은 복합문화시설이 되었지만 촬영 당시만 해도 한창 철거 중인 공간이었다. 한국 1세대 건축가 이천승 선생이 설계한 건축물에 남겨진 대리석 바닥과 기둥 등 고전적 양식미가 박찬욱 감독을 자극했다. “은행 건물이 지니고 있는 규모감이 부산 경찰서 재현에 적합하리라 판단했다.”(고대석 프로듀서) 결과적으로 공간에 영감을 얻어 수안과 해준이 대화하는 나선형 계단참에서의 대화 신 등이 특별하게 완성됐다. “해준이 걸어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난 작은 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디테일이 아름다웠다.”(고대석 프로듀서) 이후 제작팀은 부산 경찰서 미술에 어울리는 화장실 내부를 KBS 부산홀에서, 복도 일부를 부산해양대학교 등에서 찍으면서 클래식한 인테리어의 톤을 맞췄다. 서래와 해준이 같은 쏘나타를 타고 경찰서로 향하는 장면 역시 실제 한국은행 부산본부 입구에서 나와 주변 골목을 운전하는 로케이션의 동선을 그대로 따랐다.

경찰서 심문실은 모두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마련됐다. “부산 경찰서 심문실과 이포 경찰서 심문실은 시간차를 두고 명확하게 다른 컨셉으로 꾸려졌다.”(고대석 프로듀서) 부산 심문실 세트의 포인트는 한쪽만 보이는 거울을 통해 외부에서 내부를 감시한다는 설정이다. 거울에 비친 서래와 해준에게서 카메라가 빠져나오면 두 사람 사이로 포커스가 왔다 갔다 하는데, 이렇게 리얼리티를 깬 설정을 위해서는 다수의 촬영 장비 세팅이 필수였고 제작팀은 어쩔 수 없이 세트 벽을 하나씩 털어내가면서 촬영해야 했다. 이포 심문실은 반대로 구색이 갖춰지지 않은, 경찰서 내 창고를 개조했다는 설정으로 마련했다. 비좁은 느낌과 나무벽으로 대충 가림막을 세운 컨셉으로 완성됐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우암캠퍼스에서 이포 경찰서의 외관과 복도를 찍었고 일부는 서래의 과거 장면에도 활용했다. “캠퍼스 이전과 함께 빈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헤어질 결심>에선 촬영 스케줄과 비용에 따라 오픈세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서래가 과거 아픈 엄마를 돌보는 장면의 병실 세팅도 캠퍼스 내에 따로 설치했다. 공간을 원상복구해야 하는 오픈세트 촬영은 제작팀과 미술팀 모두 두배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고대석 프로듀서)

사진제공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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