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병 엮고 옮김 | 창비 펴냄
“눈 내리는 막막한 벌판에 홀로 서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식으로 이 유한한 생을 살아야 옳은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문득 스스로에게 절실히 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공부법”을 담은 책.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 간행되어 큰 사랑을 받은 <선인들의 공부법>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세속적인 성취에 목적을 둔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나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공부의 도(道)를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책의 부제는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으로, 목차는 공자에서 시작해 장자, 주자, 왕양명에서 이황, 서경덕, 조식, 이이,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 등으로 이어진다. 해당 인물에 대한 간단한 해설 이후에는 그가 말한 공부에 대한 철학을 담은 문장을 한글 번역과 한자 원문을 병기해 소개한다.
공자의 말 중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들도 많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게 마련이니, 훌륭한 사람은 본받고 훌륭하지 못한 사람을 통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고치도록 한다.” 그런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는 문장 뒤에 따로 해석을 덧붙여두지는 않았다. 이 문장에서 무엇을 길어올려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에게 맡기는 셈이다. 스스로 하는 공부에 대해서라면 왕양명이 이미 말한 바 있다. “학문은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우쳐주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는 못하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의 공부가 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우쳐주어도 잘 안된다.”
퇴계 이황과 동시대인이었던 화담 서경덕에 대한 부분은 인물 설명부터 흥미롭다. 그는 몹시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서 스승 없이 혼자서 고심하여 학문을 이룩했다. 이황이 주자의 책을 충실히 읽음으로써 도를 체득해갔다면 서경덕은 스스로 생각하여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친 다음 그 깨달음을 성현의 책을 통해 인증하는 역의 과정을 밟았다. 그의 <화담집>에서 가려 뽑은 문장들은 이렇다. “꼴 베고 나무하는 미천한 사람들의 말일지라도 성인은 버리지 않았다.” “군자가 공부를 귀히 여김은, 공부를 통해 그침(止)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도 그침을 모른다면 공부하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남명 조식의 글은 그의 사상을 닮았다. “손으로는 조그만 일도 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만 하늘의 이치에 대해 말하고들 있지만, 그 행실을 살펴보면 도리어 무식한 사람만 못하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읽다 보면 부산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전으로, 기본으로, 본질로 돌아가는 공부하는 마음이란 그럴 것이다.
남을 이기려거나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기 위해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헛된 말을 해서야 되겠는가.
- 홍대용,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