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 지음 |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영화 <킬러들의 도시>(2008), <쓰리 빌보드>(2017), <이니셰린의 밴시>(2022)를 쓰고 연출한 마틴 맥도나는 1996년 <뷰티 퀸>이라는 희곡을 시작으로 극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필로우맨>(2003)이 출간되었다. 2007년에 최민식이 카투리안을, 윤제문이 카투리안의 형을 연기하며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무대는 경찰 취조실이다. 중앙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카투리안 카투리안이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채 그 앞에 앉아 있다. 경찰인 투폴스키와 아리엘이 들어와 카투리안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장면이 시작된다. 카투리안은 왜 잡혀왔는지 영문을 모르는 채로 무조건 협조하겠다는 뜻을 보이지만 경찰들은 시종일관 고압적이다. 카투리안은 도살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데, 또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에 대충 골라잡은 스무편이 죄다 ‘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존나 뒈진다, 어린 남자애가 저렇게 존나 뒈진다…’였구만!” 경찰은 계속 소설에 대해 묻는다. 아니, 묻는 척하면서 말꼬리를 잡는다. 반복해 묻는 질문은 “이 이야기로 우리한테 뭘 말하려는 거지?” “그래서 정답이 뭔데?”다. 카투리안은 자신이 쓴 소설들은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라고 말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카투리안은 자신의 대표작을 읽어내려간다. (이 작품에는 액자식 구성으로 카투리안의 소설들이 삽입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주의 독재국가의 고위직 경찰 간부”는 최근 살해되고 실종된 아이들을 언급한다. 작품 속 작품인 <필로우맨>은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다. 베개들로 이루어진 필로우맨은 “어떤 남자나 여자가, 삶이 몹시 끔찍하고 힘들어서 너무너무 슬플 때, 그래서 모든 걸 끝내고만 싶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만 싶을 때”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삶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로우맨은 항상 비극적인 사고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안해줬어.”
작품 속 작품이 작품 속 현실과 관계맺으며 비극을 가중시킨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 희생양이 된 사람은 그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은 작가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야기를 지켜내고자 한다. 예측불가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막판으로 치닫는 동안 폭력은 정도를 더해가지만 최후의 폭력은 무위로 돌아간다.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슬픔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암전.
어쩌면 이야기가 원래 구상대로 끝을 맺지 못한 게 가장 좋은 결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원래 구상은 썩 정확한 결말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