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히카 지음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하라다 히카의 음식 소설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것이 <낮술> 시리즈인데 이혼 후 밤새 누군가의 옆을 지켜주는 특이한 사무소 일을 하는 여성 쇼코가 퇴근 후 홀로 낮술과 함께 그 지역의 명물 안주를 즐기는 내용이 인물들의 소소한 사건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소설이다. 그외에 <우선 이것부터 먹고>나 <도서관의 야식> 역시 <낮술>처럼 일본 특유의 정겨운 음식과 주요 에피소드가 얽히며 인물들이 위로를 받거나 사건이 해소되는 내용이다. <헌책 식당>은 여기에 책이라는 중요한 주인공을 하나 더 등판시킨다. 하라다 히카의 음식 묘사는 항상 문장에서 은은한 빛과 맛이 배어나오는데 <헌책 식당>은 헌책방이 배경이 되어 여기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치유받는다. 아무리 ‘텍스트힙’이 대세라고 해도 책은 여전히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항시 화제에 오르는 미디어의 총아 자리에서는 멀어져 있다. 더구나 수백년 전의 책까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진보초의 먼지 날리는 헌책방이라니.
주변으로부터 참 좋은 사람이지만 괴짜라는 평을 받던 오빠 지로의 죽음 후 갑자기 도쿄에 오빠의 헌책방을 이어받은 노년의 여성 산고는 따뜻한 이웃의 도움으로 책방 운영을 배워간다. 여기에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조카 미키키까지 가세하면서 헌책방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폭넓게 펼쳐진다. 책방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심지어 옆 가게 카페의 이름이 북엔드(이 코너명!)일 정도다. 음식도 빠질 수 없다. 푹 익은 소고기와 토마토의 풍미가 느껴지는 데미그레이스소스가 곁들여진 하이라이스라든가, 300년 전통의 게누키스시(초밥의 종류) 등이 책과 함께 이야기의 맛깔나는 조연으로 등장해 인물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문제라거나 책 판매율이 떨어졌다는 등 힘 빠지는 대화가 아닌,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대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헌책 식당>은 온화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며 삶의 의욕을 찾기도 잃었던 방향을 잡아나가기도 하면서.
본디의 비프카레에는 큼직한 고기가 들어 있다. 밥에는 치즈가 뿌려져 있고, 따로 감자 두알과 버터가 곁들여진 구성이다. 향이 진한 짙은 갈색의 카레를 소스 포트에서 작은 국자로 떠 밥에 얹을 때의 그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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