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캐릭터 드러내는, 현실적인 액션을, <브로큰> 김진황 감독
2025-02-13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석태(박종환)가 시체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접했음에도 민태(하정우)는 우는 법이 없다. 다만 공사장 인부로서 보내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과거 조직폭력배로서 지녔던 감각을 깨워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선다. 자취를 감춘 석태의 아내 문영(유다인)을 의심하던 찰나, 민태는 작가 호령(김남길)의 소설 <야행>에 자신이 몰랐던 문영의 삶이 기록됐으며, 석태의 죽음 또한 예견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민태는 조용히 문영의 자취를 좇기 시작한다. 장편 데뷔작 <양치기들>로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22회 춘사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진황 감독의 신작이다. 석태의 죽음에서 출발한 <브로큰>은 석태를 좇거나 석태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내면을 서서히 드러내 보인다. 좀체 속내를 알 수 없던 민태에 관해, <브로큰>의 시작점이 된 문영에 관해 김진황 감독은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처음엔 문영이 주인공이었다고.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사는 한 여인에게서 출발해 그에게 고통을 안기는 주변인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영을 화자로 두자니 플롯상 내가 염두에 둔 그림대로 가기 어려울 것 같았고, 고심 끝에 화자를 바꿨다. 처음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구조가 중심이었지만 민태가 주인공이 되면서 액션이 추가됐고 현재와 같은 스토리로 바뀌었다.

- 민태의 의상이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정장을 입고 등장한 오프닝 시퀀스와 달리 평소엔 집업 점퍼에 몸에 꼭 붙는 백팩을 메고 다닌다.

민태는 대사가 많지 않고 감정의 굴곡도 크지 않아서 관객들에겐 민태의 정서가 친절하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민태의 의상에 명확한 변화를 주기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결정했다. 예를 들면 민태가 후줄근한 모습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해 상황에 따른 인물의 정서에 차이를 뒀다. 새벽의 인력소로 향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민태의 외형을 따왔고 여기에 하정우 배우가 준 의견을 더했다.

- 골목길, 다방, 횟집 등 주요 액션신의 로케이션과 컨셉을 명확히 구분해 연출했다.

골목길 신은 민태가 처음으로 상대를 찾아가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구간이다. 과거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인 만큼 그 시절 민태의 분위기와 성향을 보여주고 동시에 석태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이 골목길 장면에선 민태가 ‘싸우겠다’는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면, 다방 신에서는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겠다’는 태도로 임한 것에 가깝다. 민태의 폭력에 최소한의 명분을 만들어주고 싶어 다방 신은 액션과 리액션의 구도로 조성했다. 후반부의 횟집 신은 모든 정황을 파악한 민태가 분노를 터트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액션을 구성했다.

- 액션신에서 민태의 분노가 잘 느껴졌으나 카메라가 인물들과 거리를 두는 경우가 잦았다.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느낀 건데 내가 폭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그래서 액션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액션을 촬영한 건 아까 말한 횟집 신일 것이다. 석태가 속했던 조직의 보스 창모(정만식)가 횟집 안에 앉아 있고 밖에선 민태가 조폭들과 맞서고 있다. 창모는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고자 하지만 시야 안으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린다. 이것이 내가 영화에서 액션을 대하는 태도였다.

- 민태가 그토록 주저함 없이 돌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사실 민태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문영을 찾는 이유도 석태의 죽음에 관한 의심과 분노 때문이지 문영을 위해서가 아니다. 민태의 인생에서 봤을 때 <브로큰>에서의 시간대는 그가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는 걸 깨달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브로큰> 이후의 시점에서 민태가 복수를 제대로 완결지었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만큼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뭘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문영과 석태의 관계, 문영이 겪은 고충을 플래시백이 아닌 소설 <야행>을 경유해 보여준다.

<브로큰>의 화자는 민태지만 <야행>이라는 소설의 화자는 문영이기 때문에 문영의 시점으로 극 중 사람들과 상황이 담겼다. 현재 버전에선 문영의 비중이 많이 작아졌지만 기획 단계에서 <브로큰>의 발단이 된 문영의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고 싶었고 결국 <야행>이라는 소설을 매개체로 삼기로 했다. 이에 관해서도 유다인 배우와 대화를 나눴다.

- 배우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촬영했다는 인상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민태를 주인공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래 좋아하던 하정우 배우를 곧바로 떠올렸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님과 하정우 배우가 <브로큰>에 관해 이야기할 자리가 생겼다. 당시 수정 중이던 시나리오를 읽고 하정우 배우가 ‘하고 싶다, 감독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미팅을 가진 뒤 캐스팅이 성사됐다. 김남길 배우도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호령 역에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나이픽처스와 김남길 배우의 회사 길 스토리가 같은 건물을 쓰는데, 김남길 배우가 오다 가다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건네받고 합류하게 됐다. 유다인 배우는 <혜화, 동>에서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감정 전달 능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문영과 잘 어울릴 거라 판단해 연락했다. 박종환 배우는 <양치기들> 촬영 이후로 줄곧 친하게 지내왔다. 그가 배우로서 잘해낼 수 있는 역할을 연출자로서 잘 알고 있었기에 석태 역을 제안했다. “형이 술 취했을 때를 생각하며 해달라”고 했는데 정말 잘해줬다. (웃음)

-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아직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원작이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각색 중이다. <브로큰>을 선보이면서 나는 강하고 잘난 사람보다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 결국 큰일을 해내는 서사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차기작에선 그런 서사를 펼쳐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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