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담백하고 명확한 제목처럼 독일에 사는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인 이수현, 김인선씨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70년대 파독 간호사 신분으로 만난 두 사람은 40여년째 서로의 동반자가 되어 사는 동시에, 이민자·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독일에 체류하는 반박지은 감독은 전시회에서 두 사람이 손잡고 찍은 한장의 사진을 본 뒤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돌적으로 시작한 첫 장편다큐멘터리는 연출자와 출연자들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한편의 러브 스토리로 완성됐다. 독일의 직장에 잠시간 휴가를 내고 한국을 찾은 반박지은 감독을 만나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금 전해 들었다.

- 영화의 도입부에서 두 주인공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선택이 인상적이다. 각자 집안일을 하고 한식을 나눠 먹는 등.
두분의 성격과 그간 함께 살며 정립해온 각자의 역할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인선님이 다리미질을 하다가 물건을 떨어트리는데 수현님이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장난꾸러기 같은 인선님의 모습과 따스한 수현님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특히 주방 일을 하는 장면을 초반부에 배치한 이유도 명확한데, 두분이 50년 가까이 독일에 사시면서도 여전히 한식을 해드신다는 사실이 한국 문화를 타국에서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촬영하러 갈 때도 항상 “우리 어디 안 가니까 우선 좀 먹고 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웃음)
- 김인선 선생님은 이민자 호스피스 단체를 운영하며 2008년 독일 총리에게 감사패를 받는 등 사회적으로도 여러 공로가 있는 인물이다. 대신 영화는 이들의 경력을 열거하기보다 현재의 일상을 찍는 데에 집중하는 것 같다.
맞다. 호스피스 활동 외에도 70년대 이민자들의 노동권에 대해 활동하신 것들도 있고, 그런 부분들을 넣고도 싶었다. 그런데 두분이 이 일을 했고, 저 일도 했고 하는 식으로 영화를 꾸리다 보니 이게 약간 논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두분의 사랑 이야기라고 결정했고, 그외의 부분은 여러 단서 정도로 정리하려 했다. 영화를 통해 두분에 관해 더 궁금한 게 생긴 분들은 인선님이 쓰신 자서전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등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다.
- 영화가 두 주인공의 내밀한 가정사까지 알려주는 만큼 개인적인 사진 자료 등이 많이 등장한다. 두분이 영화 촬영과 자료 제공 등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신 것인지.
처음엔 인선님에게만 허락을 맡아서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현님이 화면에 담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현님도 인선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출연하는 것을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 뒤로는 순탄했다. 아예 앨범을 통째로 모아놓은 상자를 건네주시고는 알아서 다 찾아가라고 하시더라. (웃음) 집에 가서 한장 한장 살피며 필요한 자료를 다 골라낼 수 있었다.
- 연출자와 출연진의 유대 관계와 친밀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두분과 직접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함께 식사하는 듯한 대목도 있다. 연출자의 존재감을 다큐멘터리에 개입시키는 것에 경계는 없었는지.
물론 있었다. 원래 계획은 나를 완전히 숨기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방금 말했던 것처럼 댁에 방문하면 항상 밥부터 먹고 시작하라고 하시고, 안 그러면 촬영도 안 한다고 말씀하신 터라 방법론이 바뀌게 됐다. 나와 두분의 관계까지 영화 안의 요소로 넣는 쪽이 이야기의 흐름에 더 맞겠다고 느껴졌다. 두분에게 질문하는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 두분이 연출자를 특별히 아낀다는 감상도 들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글쎄. 나도 아직 신기하다. 먼저 나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있으셨던 것 같다. 독일에 사는 젊은 한국인이 혼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으니 좀 안쓰러우셨던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가끔은 촬영 인력이 더 필요해 다른 분들과 함께 댁에 방문할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두분의 컨디션이 평소보다 안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곤 하더라. 나 혼자 갈 때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좀 아끼시는 것 같았고, 더 좋은 장면을 찍지 못한 듯해서 아쉬웠다. 그래서 주로 혼자 촬영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두 주인공이 함께 춤추는 장면을 마지막 장면으로 택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끝내려고 계획했는지도 궁금하다.
촬영 중에도 마무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진 않았다. 인선님이 아프시기 시작하면서 촬영하기도 점점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 이 영화도 끝을 향해 가고 있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꼭 담고 싶었던 장면은 두분만의 다정한 사랑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찍게 된 그 춤 장면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사랑스러운 모습의 결정판이었고, 찍는 순간에도 너무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결론적으로 편집하면서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내게 됐다.
- 촬영의 즉흥성이 있었다 보니 영화를 만들면서 일전에 생각지 못했던 감상을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관객으로서 어떤 기분이었나.
2022년쯤 편집하면서 300번은 넘게 봤는데, 막상 그때는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다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니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최근 인선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내가 그때 이분들을 카메라로 담아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찍는 도중엔 노년에 대한 식견이 확장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두분과 다니다 보면 나 혼자서 10분 만에 걸어갈 거리를 20분 넘게 걸어갈 때도 있었다. 평소엔 위 세대와의 접점이 없다 보니 그제야 노년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두분은 노년이라고 하면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 연상의 세대라고 표현해야겠다. (웃음)
- 아무래도 젊은 세대의 퀴어나 활동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큰 힘을 받을 것 같다. 영화제에서 그러한 관객들의 반응은 없었는지.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관객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두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현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일단 목소리부터 크게 해야겠어요!”였다. (웃음) 진짜 목소리를 키우라는 뜻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주눅 들지 말고 당차게 살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젊은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되게 좋아해주시더라.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두분을 꾸준히 뵙고 있다. 인선님의 투병이 길어져서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두분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두분을 조금 더 찍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