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 강사 영은(곽선영)에게 가장 큰 불안감을 안기는 존재는 뜻밖에도 7살 딸 소현(기소유)이다.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다가도 금세 착한 아이 흉내를 내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건지 희열을 느끼는 건지 알 수 없는 딸을 영은은 어떻게든 품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다치는 사람까지 생기자 영은은 소현을 강하게 훈육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20년 뒤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민(권유리)이 요즘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은 신입 해영(이설)이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둥이 해영에게서 미심쩍은 무언가를 발견한 민은 그의 정체를 캐기 시작한다. 모녀 중심의 과거 1부와 또래 여성 중심의 현재 2부로 구성된 <침범>은 공포영화처럼 보인다. 1부에서 공포의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다. 소현은 죽은 반려동물 앞에서 울긴커녕 새로운 동물로 대체하면 그만이라는 듯 평온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한 첫 모습에서부터 감지된 섬뜩함은 엄마의 시점으로 진행되면서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친구의 손을 잡는 대신 입을 틀어막고 크레파스 대신 칼을 쥐는 딸의 예측 불가의 행동을 듣거나 목격한 엄마의 충격,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힘 있는 연출로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까지 전달된다. 메인 공간인 수영장을 쓰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한눈에 식별이 어렵고 불시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수영장에 소현을 불현듯 등장시켜 강력한 불안감을 선사하거나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순간, 물속에서 뻗어나온 구조의 손 등 수영장에서의 익숙한 공포를 적소에 배치한다.
2부는 두 여자 중 그 기이한 아이가 누구인지를 찾는 추리 게임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줄곧 어두운 표정으로 일만 하는 민과 늘 천진하고 씩씩하지만 밝음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해영 모두 소현을 떠올리게 한다. 두 여자에게 고루 소현의 특성을 주어 게임이 시시해지는 걸 방지한 세밀한 각본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완급 조절을 능란하게 해오던 영화는 소현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후반 이후부터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 나간다. 암시하는 1부가 물이었다면 드러내는 2부는 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번지고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가 소현의 광기를 대변한다. 결국 다 타고 남은 재까지도 씁쓸한 여운을 주는 데 쓴다. <침범>의 미덕은 소시오패스 주인공을 내세우나 그에게서 철저히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영화는 소현을 개화시키려 하거나 동정과 참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뚝심 있게 소현을 끝까지 파악할 수 없는 인간으로 남긴다. 그보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애써도 접합할 수 없는 관계와 노력의 흔적이다. 대체로 촘촘하지만 2부에서 소현의 정체와 그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이 풀리는 과정은 아쉽다. 철저히 숨겨왔던 비밀이 후반의 맞대결을 위해 다소 손쉽게 해결된다는 인상이다. 곽선영과 기소유, 권유리와 이설까지 네명의 여성배우가 각자 보여주는 존재감이 또렷하다. 절제와 폭발을 오가는 연기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보는 재미가 크다. 페어 연기 역시 생생한데 1부에서 모녀가 보여주는 물속 장면과 2부에서 두 여자가 사투하는 불 속 장면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close-up

극 중 민과 해영은 특수청소업체 직원이다. 가장 사사로운 공간에 들어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고 치우면서 한 사람의 마지막을 책임진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은 끝까지 누군가와 연관된다는 걸 영화는 주인공들의 직업을 통해서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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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감독 린 램지, 2011
<침범>의 영은과 소현 모녀는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틸다 스윈턴)와 케빈(에즈라 밀러) 모자를 떠올리게 한다. 케빈은 감정이 결핍하고 엄마에게 유독 공격적인 아이다. 그런 아들을 키우면서 에바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머릿속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끊임없이 자문한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영화는 끝까지 에바가 잘못한 건지, 케빈이 본래 악한 존재인지 어떤 결론도 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이 에바와 케빈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