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유대인인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어 늘 놀림의 대상이었던 소년 줄리안(올랜도 슈워드)은 사라가 숨어 지낼 헛간을 내주고, 비비언(질리언 앤더슨)을 비롯한 줄리안의 가족은 어려운 처지에도 사라를 물심양면으로 돌본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라는 학교에 다녀온 줄리안으로부터 수학 등 교과를 배우며 세상 소식을 듣는다. 사라는 자신의 특기인 미술을 통해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줄리안 앞에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차별받던 소년과 소녀가 전쟁 속에서 그려내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 <화이트 버드>는 로그라인 그대로 동화적인 이야기 전개와 장면 묘사를 택하는 따뜻한 가족영화다. 이를테면 영화는 전체주의에 준동하는 청년의 최후나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집단학살 등을 적시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 속의 반복되는 대사처럼 “다정함의 큰 용기”가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어루만졌고 이 경험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그림과 영화, 노래와 꽃 등 환상적이고 정겨운 심상을 동원하여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이같은 연출은 작품의 원작과도 관련이 깊다. <화이트 버드>는 <원더>의 R. J. 팔라시오가 지은 그래픽노블 <아름다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이 <원더> 속 어기를 괴롭히던 소년 줄리안을 청자로, 전쟁 당시 자신이 겪은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사라를 화자로 삼았듯 영화 또한 원작의 액자식 구조를 그대로 취한다. 영화판 <원더>에서 줄리안으로 분했던 브라이스 게이사르가 그대로 줄리안을 연기하고, 노년의 사라로 헬렌 미렌이 출연해 인상적인 존재감을 선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