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국인들은 왜 <스타워즈>에 열광하는가 [1]
2002-07-06
글 :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다스베이더 장난감, 미래에의 노스탤지어를 심어주다
2002년 새해가 밝자마자, 취사도구를 챙겨들고 시애틀의 시네라마 극장 앞으로 모여든 야영객들이 있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박스오피스가 열리기 다섯달 전, 조급한 팬들이 일찌감치 예매전쟁에 돌입한 것. 이제 방대한 우주지형도의 다섯 번째 조각을 채워넣은 이 6부작 시리즈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내놓을 적마다 이처럼 유별난 환대를 받았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국내 흥행순위 20위 목록의 1/4을 스타워즈 전편의 제목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독 이 시리즈를 숨죽여 기대하고 뜨겁게 열광해온 사람들은, 분명 미국인들이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가장 비싸고 대중적인 컬트로 자리매김한 <스타워즈> 시리즈, 미국에서 유독 강한 그 ‘포스 아메리카나’의 역학을 들여다본다. - 편집자

‘Did Star Wars Change Your Life?’ 미국 내 개신교 목사들의 설교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유도하는 웹사이트인 www.preaching.org에 가보면, 위와 같은 제목의 설교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스타워즈>가 당신의 인생을 바꾸었나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의 이 설교문을 쓴 사람은 캔톤 앤더슨이라는 미국의 현직 목사다.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1>이 개봉된 이후에 쓰인 이 설교문에서 그는 <스타워즈>를 보기 위해 몇주씩 극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봐 달라며 말을 꺼냈다. 그저 과장된 허구 위에 난잡한 테크놀로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결정판인 <스타워즈>에 빠져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타워즈>라는 영화 자체가 절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흥행성 있는 엔터테인먼트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목사들이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전달하는 설교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캔톤 앤더슨 목사의 그런 주장을 ‘틀렸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식으로 평가절하하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국인들 아니 전세계인들이 이미 ‘<스타워즈>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도 어린 시절 명절 때만 되면 방영되던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기 위해, 밤 12시라는 당시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던 시간까지 TV 앞에 누워 있었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다. 따라서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를 시작으로 1980년 <제국의 역습>, 1983년 <제다이의 귀환>까지 계속된 역사적인 이벤트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미국인들에게 <스타워즈>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주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토록 <스타워즈>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스타워즈>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한 인터뷰에서 조지 루카스는 이 질문에 대해 ‘모른다’라고 딱 잘라 대답했다. ‘아주 놀라운 일이라 분석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명확한 원인이나 이유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그 원인을 찾는 데 골몰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인데, 그중 몇몇의 해석은 이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미국인들의 공감을 얻은 해석 중 하나가 바로 미국 관객이 2차대전에서의 승리를 재현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스타워즈>가 그 전형적인 예라는 해석이다. 연합 반군과 제국군으로 전 우주가 분열되어 싸우는데다, 제국군의 조직체계는 물론 복장까지 독일군을 연상시키는 <스타워즈>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2차대전에서의 승리로 인한 쾌감을 재현시켜주기 충분했다는 것. 특히 2차대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공중전을 그대로 우주공간으로 옮겨다놓은 것도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2차대전을 체험한 당시 미국의 부모 세대들이 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스타워즈>를 보러 갔었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준다. 종전 30년이 지난 그 시점이었던 당시, 독일군을 연상시키는 제국군을 물리치는 영화 속 연합군의 모습을 통해 전후세대인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 자신들이 느꼈던 승전의 기쁨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려 했다는 것.

다른 한편에서는 <스타워즈>가 미국인들에게 부재한 ‘역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것에 주목했다. 짧은 역사로 인해 역사적 전통은 물론 전설과 민담까지 부재했던 미국인들은 정반대의 상황에 있던 유럽인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에 시달려왔는데, <스타워즈>가 등장해 미국인들만을 위한 가상의 역사 혹은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스타워즈> 이전에 미국인들의 경우 서부개척 시대를 자신들의 역사와 전설이 만들어진 시대로 삼고, 그에 기반한 영화들을 만들고 즐겼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의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를 겪은 미국의 젊은 신세대들에게 서부극은 더이상 매력적인 장르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바로 그때 서부의 총잡이와 사무라이 그리고 중세 기사단의 개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 화면에 올려놓고 지극히 대중적인 코드로 풀어낸 <스타워즈>가 등장해, 새로운 ‘역사’의 창조로 비쳐져버렸던 것. 몇몇 <스타워즈> 팬 페이지들에서 볼 수 있는 ‘미래의 역사에 대한 노스탤지어’라는 문구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밖의 <스타워즈> 집단적 공유 대신 마니아의 숭배로

당연히, <스타워즈>에 대한 열광은 미국만의 현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록 영화 자체는 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지만, 이미 1977년 당시의 세계는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그 경이적인 창작물에 깊숙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스타워즈> 열풍은 그대로 전세계에 전파되었으며, 전세계인들은 미국인들과는 다른 이유에서 <스타워즈>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스타워즈>를 영화 이상의 역사, 종교, 철학 등으로 이해하려 한 미국인들과는 달리, 다른 나라의 관객은 <스타워즈>를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경이적인 문화상품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인들이 <스타워즈>를 하나의 텍스트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으려 했다면, 다른 나라 관객은 첨단 미국 문화상품의 소비라는 측면에서 <스타워즈>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그런 차이점은 <스타워즈>에 매혹된 팬들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더 잘 드러났다. 미국 팬들의 경우 <스타워즈>를 생활의 일부로 깊숙이 끌어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양한 오프라인 팬클럽이 조직되어 체계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훗날 <스타워즈>에 대한 수만개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극장 앞에서 줄을서 기다리는 행사가 조성된 것도 바로 그런 ‘공유’하는 형식의 <스타워즈> 열풍 때문이었다. 반면 유럽이나 아시아권 국가들에서의

<스타워즈>는 어떤 ‘공유’의 장으로써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팬클럽 등의 활동이 전혀 감지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사회적인 파급효과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유의미한 규모는 분명 아니었다. 따라서 <스타워즈>를 다루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절대적인 숫자도 적었으며, 별다른 오프라인 모임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주로 개별 관객이 마니아로 발전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관련 정보와 제품의 수집에 치우치는 경향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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