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라이터를 켜라>의 김승우
2002-07-10
글 : 최수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연기, 나의 사생활

겨울, 스산했던 <라이터를 켜라> 촬영현장에서 만난 예비군복 차림의 김승우를 떠올리고 있다가,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뭔가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름답게 그을린 얼굴과 근육질의 팔뚝, 짧게 자른 머리와 샌들. 그게 달라진 전부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유난히 편안하게 웃고, 소파에 길게 누워 이야기하고… 그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사람처럼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사연인즉, 그는 “대단히 한가하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거의 세계일주 여행”을 했다. 그동안 여행한 곳은 미국, 일본, 베트남. <라이터를 켜라> 개봉한 뒤 여행할 곳은 브라질과 유럽. “이만하면 거의 세계일주 아니냐”라며 그가 씩 웃어올린다. 영화이야기는 그 다음이었다.

김승우는 <라이터를 켜라>에서 ‘허봉구’라는 이름부터 순진한 백수를 연기했다. 몇천원 달랑 들고 예비군훈련 나왔다가 우동 한 그릇 사먹고 남은 돈 300원 탈탈 털어 산 라이터. 그걸 잃어버리자 자기 라이터를 손에 넣은 사람- 그가 주먹깨나 쓰는 건달인 줄도 모르고- 쫓아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는 허봉구는, 확실히 평범함 가운데 특이함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김승우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라이터는 그의 짓눌리며 살았던 삶이라는 얘기를 감독으로부터 듣고 공감이 됐다”고 처음의 ‘황당한’ 느낌을 회고했다. 연기하면서 허봉구라는 캐릭터가 자신에게 “잘 맞는 옷”임을 알게 됐다고. 데뷔 초기 드라마에서 ‘스위트 가이’ 이미지를 먼저 알렸던 김승우는, 그것은 자신의 성격이나 사활생과는 동떨어진 것이며, “하느님이 주신 보너스”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게 내 모습”이라고.

“아, 이건 <깊은 슬픔> 때였고, 이건 <남자의 향기> 때였죠.” 스튜디오에 붙어 있는 <씨네21> 역대 표지모음 포스터를 보고 그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때, 그리고 지금, 그는 많이 달라져 있다. “누군가의 남편, 가정적인 이미지, 그의 외모, 그의 느낌, 그의 가정생활로만 평가받으면서 <씨네21>의 표지를 장식한 건 문제가 있었죠. 이제 저는 정말 연기를 통해서 내 생활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했지만 이제는 잘하겠습니다, 해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기 때문이죠. 열심히 안 하는 배우가 어디 있나요?”

너무나 사소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허봉구의 라이터. 김승우에게 영화가 그런 것이 아닐까.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않는다. 아니, 목숨걸 만한 것은 잃어버리지를 않는다”라는 김승우의 목소리에 어느 때보다 진실함이 괸다. 김승우가 다음 작품으로 고려하고 있는 건 ‘다시’ 멜로. “이제 하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운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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