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첫 촬영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의 한 관계자는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내털리 포트먼의 스크린 테스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류가 흐르는 기운을 감지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크리스텐슨은 경력이 한참 앞선 스물한살 동갑내기 소녀가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포트먼은 드디어 촬영장에 나온 그에게 “반가워, 이제 일하러 가자”는 한마디만 건넸고, 얼마 뒤에는 “오디션 본 사람 중엔 라이언 필립도 있었어. 조지 루카스는 그를 정말 좋아했는데”라며 필요없는 이야기까지 해줬다.
그러나 한겨울 빙산 같던 그 대화는 이제 말끔히 녹아버린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크리스텐슨은 “내털리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녀를 바라보면 금세 빨려들어가는 거죠.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덴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어요”라고 촬영장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기에 이르렀다. 두 배우가 카메라 뒤에서도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았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당연한 일. 포트먼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며 쏘아붙이고, 크리스텐슨은 “정말 궁금하다면 물어보는 것 정도는 뭐”라며 말끝을 흐리지만, <에피소드2>의 로맨스에는 분명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온다. 감독 조지 루카스가 요구한 단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루카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찾기 위해 400명 넘는 지원자들을 만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아나킨처럼 보일 것과 아미달라와 사랑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을 염두에 뒀다. <에피소드2>는 뒷날 어둠에 굴복해 다스 베이더가 되는 아나킨과 그의 아이들을 낳아 비극을 잉태하는 아미달라가 마지막 햇빛의 나날을 보내는 로맨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조슈아 잭슨과 라이언 필립, 폴 워커 등 이미 십대의 우상이 된 배우들이 차례로 떨어져나가던 어느 날, 오디션을 진행하던 캐스팅 디렉터 로빈 걸랜드가 루카스에게 전화를 했다. “방금 아나킨이 이 방에서 나갔어요!”
그 아나킨이 바로 무명의 캐나다 배우 크리스텐슨이었다. 폭스의 TV드라마 <하이어 그라운드> 정도가 대표작이었던 크리스텐슨은 당시 드라마 조기종영을 앞두고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여섯살 때 트램폴린 주니어 챔피언이었던 누나의 CF 오디션에, 부모가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자유분방한 성향의 부모와 그 자신도 연기를 한 형, 트램폴린에 이어 태권도로 캐나다를 제패한 활동적인 누나는 모두 예쁘장한 남동생에게 성원을 보냈다. 루카스가 직접 오디션을 보겠다면서도 당신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라고 했을 때, 이 단란한 가족은 고개를 갸웃하며 여행 경비를 지불해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