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장진 · 장항준의 고삐풀린 수다 140분 [1]
2002-07-19
사진 : 정진환
정리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너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20분이 지났다. 여기는 압구정, 필름있수다 사무실이다. 장진 감독은 장항준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하… 이 자식… 입봉 감독이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벌써 3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중견’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로 이제 갓 데뷔한 신인 감독이 약속시간인 1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기가 막힌(척한)다. “어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답답한 나머지 전화를 걸어본다. “오는 중이라네요. 조금만 더 기다리자구요.” 40분이 지났다. 다시 전화를 건다. “어허! 이눔이… 이제 아예 전화를 꺼놨네.”

하는 수 없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몇분쯤 지나니 마른 몸의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헤대던 그는 뜬금없이 어제 선물받았다며 선글라스를 꺼내든다. “진아, 사람들이 나한테 안 어울린대… 바꿀까?” 갑자기 ‘절친한 친구’로 변신한 중견 감독은 언제 기다림에 지쳤냐는 듯 “한번 써봐라”며 신나게 거든다. 그리고 가차없이 “바꿔라” 한마디 툭 던진다. 그 사이 “뭐 입을 만한 거 없냐. 난 옷이 없어”라며 사무실 한쪽을 뒤지던 장항준 감독이 갈색 코트를 주섬주섬 들고 나오자 장진 감독은 “야! 내 옷장에 보면 몇개 더 있어!” 외친다. 정신이 없다. 산만하다.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다. 괜히 어려운 말을 섞어서 쓰지도 않는다. 돌려서도 안 하고 꼬아서도 안 한다. 그냥 투투투툭 내뱉고 뒤끝도 없다. 그러나 할말은 다 한다.

장진과 장항준은 그런 사람들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이니드와 레베카처럼 살갑게 우애를 드러내진 않지만 쿨하게 생각의 장을 공유하고 있는 두 장(張)씨. 여기 그 누구보다 수다스런 ‘판타스틱 장씨백서’를 풀어놓는다.

수다 1 Round

코미디, 우리의 가장 좋은 무기이자 방패

장진 너 나랑 통화하고 있을 때가 신림사거리 정도 됐겠다.

장항준 요즘 사람이 아니다. 눈을 딱 떴는데 12시45분이잖어. 씻고 옷 입고 5분 만에 튀어나왔어.(그때 ‘푸른하늘 저멀리, 날아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아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장진 하! 이놈봐라. 전화되누만. 그런데 아까는 왜 전화 꺼놨어.

장항준 (무시한다) 영화 봤냐?

장진 어… 참, 영화 잘 봤다. 관객이 재밌어 하더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장항준 그지… 죽다 살았어. 시사 전까지 정말 개망신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첫 번째 시사회 때 사람들이 웃어줘서 와… 살았다 싶더라고. 영화 끝나고 관객이 웃으면서 박수 치는데 너무 감격스러워서 마누라한테 바로 전화했잖아. “은희야 사랑한다!”

장진 결혼 5년찬데 넌 아직도 그렇게 좋으냐. 애가 없어서 그런가. 니네는 진짜 신혼처럼 살어. 첫 시사 끝내고 나니까 어때? 시사회 때 누가 왔는지 알면 이 장면에서 이놈은 이렇게 반응하겠군 하는 생각이 쉭쉭 지나가지 않어?

장항준 글쎄, 사실 그럴 정신은 전혀 없었고 시사회 중에 자신없거나 싫은 장면이 나올 때쯤 되면 아예 극장밖에 나와 있었어.

장진 어떤 장면이 맘에 안 들었는데?

장항준 중간중간 기차서고 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나 철곤이 마누라하고 봉구 모친이 만나는 장면 같은 음… 별로야, 안 좋아.

장진 코미디라는 것은 무기도 되고 방패도 되잖어. 코미디기 때문에 김승우, 차승원,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강성진… 그 많은 배우들이 한 알레고리 안에 있어도 이해가 되는 거고. 그러나 리얼리티 범주에서 보면 정말 심해. 니들은 무조건 거기 같이 있어, 니네 둘은 옆집에 살아 하는 강압적인 부분이 있단 말이지. 너도 닭살스러운 부분은 충분히 느꼈을 거야. 왜? 너는 드라마를 아는 아이니까.

장항준 리얼리티에 입각해서 보면 정말 지탄받을 만한 이야기지. 우리 영화에 말 안 되는 장면이 한두 가지겠니? 가령 기차 한칸 옮겨가는 데 시간이 걸려봤자 얼마나 걸리겠어. 그런데 봉구가 한칸 뛰는 시간은 정말 길거든. 어휴∼ 한두개겠어.

장진 그래도 <라이터를 켜라>에서 내가 좋았던 건…(<아톰…> 벨 다시 울린다 ) 하! 너 진짜 성의없다.

장항준 (어… (윤)종신아 나 인터뷰중이야. 나중에 전화할게….)

장진 어쨌든 내가 좋았던 것은 니가 코미디가 뭔지를, 드라마가 뭔지를 알고 있다는 걸… (또 전화벨 울린다) 확인하는 거였어.

장항준 (죄송한데요, 한 시간만 있다가 전화하세요. 제가 좀 바빠가지고. 아… 그런데 어디시죠?)

장진 야… 상상도 못할 일이다. 5분도 인터뷰 안 했는데 전화 3통을 하다니!

장항준 요즘 난리다. 기억도 안 나는 중학교 동창이 전화해서 나야! 너 누구니? 설명하는데 기억도 안 나.

장진 흠흠, 하던 이야기 계속하면은 드라마가 괜찮았고 코미디가 코미디 소리 들을 만큼 웃음을 충분히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거야. 그 점이 그 수두룩한 많은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고.

장항준 사실 그게 고비였어. 시나리오상에서는 그렇게까지 될는지 몰랐는데 찍다보니 너무 인물들이 많은 거야.

장진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레벨보다는 과잉된, 과장된 캐릭터들의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나는 그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어. 메인 드라마를 잠시 잊고 있어도 빈 공간을 채워주니까 재밌더라구. 니가 그걸 잘 아우르기도 했고.

장항준 그저 운이 좋았던 것 같어. 찍어놓고 잘라낸 부분이 많아서 시사회 때 얼굴 하얘져서 돌아간 배우들 많다.

장진 지금 생각하면 한 2억 줄일 수 있었지?

장항준 아, 그럼.

수다 2 Round

뭘로 승부할꺼냐, 바로 시나리오하고 배우라구!

장진 사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이거였거든, 끽해봤자 달리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니가 공간활용을 어떻게 해낼 건가 하는 거. 그런데 량과 량 사이도 있고, 식당칸도 있고 물론 몇개 안 되는 공간이지만 제대로 활용을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장항준 식당칸에서 사건도 벌이고. 이러고저러고 해볼까 했는데, 세트장이 문제야. 실제 기차에서 찍는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고 세트로 가야 하는데 한량하고 조금 남는 공간이 생기는데 더 벌일 수가 없는 거야. 또 기차란 게 우리는 다른 칸이라고 생각하는데 관객한테는 똑같은 공간이거든. 깜깜 밤중에 기차 외적인 그림들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누가 빠른 운송수단으로 뭐 찍는다고 하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릴 거다. 근데 너도 시사회할 때 떨리디?

장진 지금도 그래. 어떤 작품이나 영화나 연극이나 첫 시연회나 시사회는 엄청 떨리지.

장항준 나는 무지 긴장해서 다리 후들후들하더라구.(또다시 전화벨)

장진 야! 무슨 BGM(백그라운드뮤직)이냐? 받아봐. 안 받냐? 그래 잘했다. 그나저나 이 작품 들어갈 때 내가 어떤 부분을 제일 우려했는지 알지?

장항준 알거든. 내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니까. 그리고 워낙 유명한 작가니까. 그런데 박정우 작가 식이라는 게 너무 확고한 거야. 고집이 막 세고 그런 건 아닌데 뭐 하나 비틀면 전부가 이상해져. 머리가 되게 좋은가봐. 나랑 이야기하면서 그것도 좋은데 그것도 좋은데 하다보면 결국 자기것이 좋겠다는 걸로 결정이 난다니까.

장진 그게 머리가 좋다는 거냐?

장항준 작전의 명수야. 요즘엔 민생고민, 인생고민 다 박정우한테 상담하잖어. 참, 그런데 원래 코미디가 훨씬 많이 있었는데 편집하면서 다 빼버렸어. 코미디란 게 말잔치인데 괜히 뺐나 싶어.

장진 뭘 적어. 지금도 과잉이야.

장항준 그래도 웃으면 좋잖어.

장진 그럼 다른 걸 빼내야 되잖어.

장항준 그렇지.

장진 문제는 인상적인 장면이 없는 거야. 그 영화를 대변할 수 있는 시퀸스나 중심이 되는 봉구대사 같은 것만 있었어도 좋았을걸. 그런 게 조금 부족해.

장항준 촬영하면서 계속해서 승우 형이 감독님 잘 모르겠어요. 감독님이 나 많이 도와줘야돼 하는데 아이씨, 내 한몸 추스르기도 힘든데…. 잘하는데 뭐, 그래버렸다고.

장진 그러니까 감독이 필요한 거지.

장항준 뭐, 어쩌라구.

장진 잘못 판단한 게 있다고. 봉구가 승우 형이랑 많이 다르지가 않잖어. 그냥 자연스럽게 갈 수 있도록 니가 유도했어야지. <킬러들의 수다>에서 신현준이 그런 모습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잖어. 영화 초중반에 힘들었지만 중반 넘어가니까 신현준은 어떻게 이 코미디를 풀어야 할지를 알더라고. 모든 캐릭터는 시나리오에 있어. 배우는 10%만 하면 되는 거거든. 그나저나 니가 학교 다닐 때 연출을 안 했었나?

장항준 연기만 3학기 했지. 1학년 때 연출할 사람? 하고 교수님이 묻는데 8명이 손을 든 거야? 7명을 뽑는 건데 한명이 빠져야겠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안 할게요. 그랬지. 나 사람들하고 말썽생기는 거 너무너무 싫어하잖어.

장진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니가 기능적으로 탁월한 배우들과 연극한편을 연출하면서 트레이닝을 받는다면 좋겠어. 한신을 가지고 배우들과 50번이 넘게 만나는 기회가 영화에서는 흔치 않잖아. 내가 원하는 환영과 환청이 눈앞에 보일 때 들릴 때까지 말야. 그렇다면 배우가 아무리 촬영장에 혼수상태로 걸어오더라도 감독은 그 상황을 핸들링할 수 있단 말이야. 우리의 가장 큰힘이 뭐냐? 시나리오하고 배우라고. 우리가 뭐 뛰어난 영상세계로 승부할 거냐?

장항준 영상세계 X도 없지 뭐.

장진 그러니 니가 앞으로 좀더 신경썼으면 하는 게 배우의 디렉팅에 대한 거야.

장항준 대사가 문어체식으로 가는 걸 너무 싫어하니까 자기 소화된 말로 해달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욕이 막 나오더라. 결국엔 경쟁이 벌어진 거야. 욕잔치가 벌어진 거지.

장진 물론 언어가 풀어졌다는 건 느껴지는데, 차별화나 컨트롤이 안 되고 차승원만 튀어. 차승원이란 캐릭터는 관객에게 여전히 텐션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조금만 삐끗해도 놀랍게 재밌어 보여. 이후에 비슷한 걸 하려면 대단히 조심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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