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전만 해도 졸린 듯 부스스했던 신은경이 갑자기 또박또박해졌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가 약간 긴장감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흥분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외국영화 보고선 그런 얘기 안 하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영화는 이해해주지 않는 거예요?” 연기경력 20년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는 신은경은 틈도 주지 않은 채 야무진 이유를 갖다붙인다. “언제부턴지 한번 꼬이지 않고선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어요. 감독님도 아마 그게 슬펐던 것 같아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첫눈에 다가온 사랑을 그리는 게 재미없어요? 난 관객이 그런 영화를 많이 봐줬으면 하는데….” 지난해만 해도 양손에 가위를 들고 전국을 휩쓸었던 ‘조폭 마누라’ 신은경. 그녀가 “맞아, 딱 내 얘기네”라고 탄성을 지르며 선택한 이 분홍빛 로맨스는 그처럼 느낌대로 밀고나가는 꾸밈없는 여자의 영화다. 집에 있을 때면 3박4일 세수도 하지 않는다는 신은경처럼, 화장발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난 얼굴 그대로, 콧등을 반짝거리면서 나타난 신은경이 전보다 훨씬 생기있고 예뻐 보이는 건. “관객이 가장 먼저 보는 건 배우의 겉모습이잖아요. 그래서 약간 변신했어요. 마돈나가 앞니 사이를 갈아서 빈틈을 만들었다기에 덧니를 붙였거든요. 성형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이빨은 표정이 변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드러나 보이는 거니까.” 그뿐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아줌마들과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한증막에 자주 드나들다보니 살도 저절로 빠졌다. 머리에 꽂은 커다란 녹색 나비모양 머리핀을 보여주며 “나하고 한달만 촬영하면 다들 너무 여자답다고 그러는데, 왜 날더러 중성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투덜거리는 그녀는, <좋은 사람…>과 함께 인생의 한 고비를 넘은 셈이다. 그녀는 나이보다 덜 자랐다고 자평하지만, 이제야 여자가 될 적기를 만났다고도 자부한다. 아직 인생의 모든 비유를 만화 속에서 찾는다 해도 나이 따라 다가오는 무게를 더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다.
해군으로 출연하는 영화 <블루>가 힘든 까닭도 그 때문이다. “재미를 찾으면서 즐겁게 일하는 건 <조폭 마누라> 끝나고 바이바이했어요. 서른 되니까 일에서 받는 압력이 엄청나요. 잘되거나 못 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잘될 것 같은 일만 선택해야 할 위치가 됐어요.” 그래서인지 <좋은 사람…> 시사회를 앞두고 며칠째 체증이 내려앉지 않는다고
하지만, 씩씩한 신은경은 사실 당당했던 <조폭 마누라> 때 더 불안했다고 털어놓는다. 이건 자신감의 방증이고, 집안의 장녀로 동생들 매를 대신 맞으며 자랐기 때문에 항상 책임감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결국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도 <좋은 사람…>의 장점을 강조하던 신은경, 매우 실용적인 장점 하나를 더 찾아냈다. “요새 집집마다 서른 넘은 딸들이 버티고 있어서 엄마들 걱정이 산더미래요! 다들 이 영화보면 결혼하고 싶어질 텐데. 저도 그랬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