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소란스런 B급 드랙퀸 쇼가 `영화 <헤드윅>`으로 태어나기까지(2)
2002-08-10
글 : 문석
그/녀의 가발에 꽃을 던져라!

1963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존 카메론 미첼은 군 장성인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유년기를 보냈다. 군인 집안의 아들답게 그는 오클라호마, 캔자스,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스코틀랜드 등지를 20차례도 넘게 옮겨 다니며 어린 나날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는 언제나 친구 하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10살 무렵 스코틀랜드의 가톨릭계 기숙학교 생활을 하면서 접한 글램록만이 그의 삶에 빛을 던져줬다. 스위트, 데이비드 보위, 록시 뮤직, 이기 팝, 루 리드 등은 그의 우상이었다. <헤드윅>에 보위, 팝, 리드, 이 글램의 세 ‘성자’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찍은 흑백사진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첼이 훗날 헤드윅의 모델이 된 여성을 만난 것은, 영화에서 토미가 헤드윅을 만났을 때와 똑같이 캔자스주의 정션 시티에서였다. 미첼이 ‘음탕하고 작은 마을’(Wicked Little Town)이라고 부른 이곳에는 포트 라일리라는 커다란 미군 기지가 있었고, 그곳에는 미군과 결혼한 독일인, 한국인 아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중 절반은 이혼녀였다. 그가 14살 무렵 그의 나이어린 동생 새뮤얼을 봐주던 보모도 잉가라는 이름의 독일인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잉가가 살던 허름한 트레일러로 놀러 가곤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맥주를 줬고 우리는 <코파카바나>의 연기를 따라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그녀가 매일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녀가 낮에는 보모, 밤에는 창녀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에 대한 권태감을 갖고 있는 듯했지만, 쾌활하면서 단호한 성격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어린 미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양성애적 감성에 이끌렸던, 때문에 수심에 찬 10대의 나날(그에게는 친구가 없었고, 아버지는 군인이었다!)을 보내야 했던 미첼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하던 19살 때, 동생이 살고 있던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가 버클리에서 온 한 자동차 정비공을 만난 뒤 게이로 커밍아웃한다. 밥 포시의 <캬바레>나 <올 댓 재즈> 같은 뮤지컬영화에 이끌렸던 그는 80년대 말 뉴욕에 정착, 브로드웨이에서 촉망받는 신인 연기자로 떠오른다. <비밀의 화원>에서 딕슨을 연기해 드라마 데스크상 후보에 올랐고, <헤어짐을 위한 6단계> <빅 리버> 등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등장했다.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나의 운명>으로는 <빌리지 보이스>가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에 주는 오비상에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뮤지컬 <헤드윅…>을 안보면 뉴요커가 아니다?

하지만 미첼은 큰 조명을 받을 순 있지만 엄숙할 게 뻔한 미래보다는, 좁고 어둡더라도 즐겁고 유쾌한 현재를 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브로드웨이로 돌아가는 대신, 스퀴즈박스에서 트래스크와 공연을 거듭하며 간략한 줄거리에 살을 붙였으며 이 이야기에 맞는 노래를 계속 만들어나갔다. 헤드윅은 스퀴즈박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연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공연이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당연한 일. 그중 하나였던 데이비드 바인더는 미첼에게 뮤지컬 제작을 제의한다. 공연 초기부터 무대 공연과 영화화를 꿈꿔왔던 미첼은 좋은 기회라고 판단,이를 받아들였다.

미첼은 무대용 뮤지컬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을 스탠드업 코미디, 카바레 쇼, 스티븐 트래스크의 음악, 그리고 신랄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등이 뒤얽힌 기이하지만 재치있는 구성으로 엮어냈다. 무대 공연에서는 헤드윅과 토미 노시스 역할을 모두 미첼이 연기했다. 헤드윅이 <오리진 오브 러브>를 부르며 자신의 옷을 찢고 가발을 벗어던지면 어느새 토미가 돼 있는 식이었다. 헤드윅과 결혼하는 남자 밴드 멤버 이츠학 역할에 여성 뮤지컬 배우 미리엄 쇼어를 기용한 것은 고음 역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백업 보컬을 찾던 트래스크의 요구와 ‘남자 역할에 여배우를 기용하면 어떨까’ 하는 미첼의 생각이 결합된 결과였다(이것은 전통이 돼, 캐스팅이 바뀌어 이어진 이후의 공연들에서도 이츠학 역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었다).

바인더는 자신의 아파트로 스탭들을 불러들여 연극을 구상하는 동시에 제작비를 구했다. 이 연극의 감독 피터 애스킨 등 초기 투자자 8명이 2만9천달러를 모았다. 이들은 모두 헤드윅의 쇼에 감동받은 이들이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그동안 모은 월급을 다 털었고, 어떤 이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이 작품을 위한 전용극장을 만드는 데 쓰였다. 공공극장 같은 곳에서 공연해본 결과, 효과에서부터 반응까지 몽땅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웨스트사이드의 허드슨 강가에 있는 리버뷰 호텔의 볼룸을 개조해 차려진다. 이 호텔이 있는 곳은 예전부터 도살장들이 즐비해 ‘정육 구역’이라는 다소 을씨년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는데, 밤이면 매춘부들이 길을 막고 서 있곤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공연과도 걸맞고 이런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모험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들은 롱아일랜드의 한 극장에서 의자을 얻고, <프리쳐스 와이프>에 쓰였던 벽지로 도배를 한 뒤, 거리의 이름을 따 제인 스트리트 시어터라고 명명했다.

마침내 1998년 밸런타이 데이, 200여명의 관객이 몰린 가운데, 미첼, 트래스크, 쇼어 등이 출연한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의 첫 공연이 열린다. 관객은 헤드윅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와 탄식을 거듭했으며, “Lift up your hands” 라는헤드윅의 음성에 따라 모두 한손을 든 채 공연이 끝나는 광경을 지켜봤다. 이 공연을 보고 당황하거나 마음이 불편했던 관객은 미첼의 부모를 비롯한 극히 일부에 불과했을 것이다(이 공연을 본 그의 아버지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미첼에게 “… 훌륭하다… 그런데 브로드웨이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고 말했다).

브로드웨이와 펑크-글램록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정면충돌이었던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는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헤드헤즈’(Hed Heads)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마니아들은 그 충돌이 만든 불똥이었다. 그들은 수십번에서 수백번까지 이 뮤지컬을 보고 또 봤고, 쿠키를 구워와 배우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으며, 자기들끼리 파티를 열었고, 공연 중에는 모든 노래를 따라불렀다. 모든 헤드헤즈가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도리어 젊은 게이 청년부터 나이 많은 이성애자 아줌마까지 폭이 넓은 편이었다. 이들은 이 공연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고, 제인 스트리트 시어터의 무대 위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오리지널 캐스팅 공연은 1주일에 7번씩 10개월 이상 진행됐다.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와 영화작업을 위해 미첼을 비롯한 멤버들은 1999년 초 무대를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Show must go on!”을 외쳤다. 캐스팅이 바뀌어 새로운 무대가 마련됐고, 차기 헤드윅으로 마이클 서비리스가 등장했다. 곧 케빈 커훈, 도노번 레이치, 에이사 소머스, 매트 맥그래스, 그리고 유일한 여성 헤드윅이었던 앨리 시디 등 각기 개성이 다른 배우, 또는 가수들이 권좌를 물려받아 자신만의 헤드윅 왕국을 이끌었다.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는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번져나갔다. 이 공연의 판권은 보스턴, LA, 시애틀, 시카고, 캔자스시티 등으로 팔려갔고, 심지어 아이슬란드나 필리핀의 마닐라에서도 공연이 이뤄졌다.

이 공연장에는 데이비드 보위, 루 리드처럼 미첼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뮤지션이나, 치타 리베라, 패티 루폰 같은 브로드웨이 배우들, 심지어 홀리 헌터나 배리 매닐로, 마릴린 맨슨 같은 인사들도 찾아왔다. 노장 뮤지컬 배우 베아 아서는 이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여성 로커 조운 제트는 게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뉴욕의 유명인사로 떠오른 존 카메론 미첼은 로지 오도넬 쇼에 출연하거나 <타임아웃 뉴욕> 등 각종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WIG IN A BOX

난 화장을 하고 테이프를 틀고 가발을 머리에 써그럼 갑자기 ‘미스 월드’로 변하지술잔을 통해 선반을 보다 포장을 풀지 않은 박스 안의 가발을 발견하면난 화장을 하고 갑자기 여배우가 돼갑자기 1963년풍의 요조숙녀가 됐다가 깨어나면 나로 돌아오지어떤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나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최고로 치장해나도 화장을 해 8트랙 테이프를 틀고 선반에 있는 가발을 꺼내지그러면 난 <미녀 삼총사> ‘파라 파셋’갑자기 난 펑크 록 스타가 되고 후회하지 않아도 돼

MIDNIGHT RADIO

당신은 가장 밝은 별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전파 같은 빛당신은 빙글빙글 레코드판처럼 발레리나처럼 돌면서 로큰롤에 맞춰 춤추죠(패티, 티나, 요코, 아레사, 노나, 니코에게 바친다)세상의 모든 로커들이여 당신들은 옳으니 서로를 믿고 오늘 밤을 보내세요당신들은 가장 밝은 별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전파 같은 빛힘들고 괴로워도 레코드판처럼, 발레리나처럼 로큰롤에 맞춰 춤추며빙글빙글 도는 위대한 로커들이죠 손을 들어요 손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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