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라 생각하니 너무 거창하여 아무 영화도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 영화사를 풍미했던 영화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과연 나에겐 어떤 영화가 그런 느낌들을 주었을까…. 담담한 일기처럼 나의 마음을 창피하지만 편안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열린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를 몸으로 느끼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에 참여(?)했다. 내가 부산국제영화제 일을 시작하기 전인 1997년 여름, 홋카이도 강제 연행 희생자 유골 발굴을 위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재일동포 청년들이 처음 슈마리나이에서 모였다. 그때 나는 어떤 형식이나 틀거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비디오에 그냥 담아보리라, 이렇게 원대하고 허황한 꿈을 가지고 그 자리에 함께했다. 또한 지금까지 하던 일을 정리하는 시점이어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떠남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사에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직접적인 참여자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랄까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부재, 거기에 직접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보름간의 일정에 참여하면서, 내 불안한 삶과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부유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았던 그런 워크숍이었다.
이번 제주도 워크숍 또한 어쩌다보니 비슷한 상황에서 참석하게 되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적인 치유를 받고자 아마 그곳으로 떠남을 선택했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어떤 문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현재적인 삶을 되돌아보려는, 그래도 뭔가 희망이라는 것을 찾아보려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그러다가 문득 한 영화가 떠올랐다. 제3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보았던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다큐멘타리와, 할머니라 저절로 불리는 감독의 편안한 얼굴. ‘의식과 일상’ 언제나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을 너무나 쉽고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는 그 영화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에서 시작한 영화는, 추수가 끝난 대지에 남아 있는 농산물이나 과일을 줍는 사람들, 갯벌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도시의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들만 먹고사는 사람들 또는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재활용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대상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정겹고 주관적인 형식으로 영화를 구성한다. 거기에 감독 자신의 삶의 일부 또한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거리감을 없애준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진실들이 발견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 내부의 모순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큰 주제나 무거운 상황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일상의 파편들을 구성하여 현재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또한 할머니 감독의 자유로운 발상, 표현들이 관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이렇게 쉬운 겁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윤기를 발하고 풍요롭게 재창조되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만들고 함께하고 싶은 일들일 것이다. 공허한 꿈처럼 나도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 세상과 애기하고 싶다. 주변부에서 어슬렁거리는 삶일지라도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나에게 오리라는 믿음으로,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느끼는, 그것이 지금은 비록 직접적인 창작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같은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