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0년 한국영화 결산 [9] - 충무로 10대 사건
2001-01-02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이영진
충무로, 좌우의 날개로 날다

1. <공동경비구역 JSA> 대박

<공동경비구역 JSA>의 화력은 대단했다. 2000년 9월9일 전국 110개관 1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최단기간인 개봉 보름 만에 서울관객 수 100만명, 10월26일 200만명을 돌파했다. 12월20일까지 서울에서만 240만명을 불러모아 <쉬리>가 세운 244만8천명(서울관객)을 뛰어넘는 건 시간문제다. <공동경비구역 JSA> 돌풍이 예고된 건 개봉 둘쨋주 주말 관객 수. 스크린 수를 늘린데다 입소문이 좋게 퍼지면서 무려 21만3천명이 극장을 찾았다.

이는 <미션 임파서블2>가 개봉 첫주에 세웠던 19만5천명을 넘어선 수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주)아이엠픽쳐스가 제공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찌감치 장기 독주 체제를 굳힌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으로 상반기 24.7%에 머물렀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은 사실 외적 요소들의 덕도 톡톡히 봤다. 멀티플렉스의 등장 이후 서울에서만 40개관이 넘는 개봉관을 잡을 수 있게 됐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쪽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친밀도가 높아졌으며, 강제규필름의 <단적비연수>를 비롯해 하반기 대작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면서 장기 상영이 가능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소재의 적극적인 발굴, 안정적인 제작시스템 운용,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명필름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극장에서 잔치 벌이다

16mm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극장 개봉은 ‘뉴스’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웠다. 97년 겨울 <나쁜 영화> 촬영 때 쓰고 남은 필름으로 단편영화 <패싸움>을 만들었지만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3부에 해당하는 <현대인>을 찍고 나머지 2부와 4부를 채워넣을 때까지 햇수로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신생 제작사인 CNP와 충무로의 A급 스탭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모여들지 않았더라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극장 개봉은 애초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16mm영화로는 처음으로 극장개봉을 시도한 6500만원짜리 이 싸구려(?) 영화는 서울의 코아아트홀을 비롯 전국 4개관 개봉이 고작이었지만, 첫주 8천명의 관객동원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인 1만명에 육박했다. 코아아트홀의 경우 개봉 첫주 1, 2회를 제외하고 전회매진을 기록하는 등 주말 90%, 평일 60% 이상의 좌석점유율을 기록한 것. 급기야 8월5일 35mm로 블로업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전국 20개관으로 확대개봉했고, 종영까지 8만명을 불러모았다. 극장 수익으로 2억원, 3만장이 팔려나간 비디오 수익으로 4억5천만원, 해외, 방송 판권료를 제하더라도 3억원의 순수익을 챙겼으며, “충무로 외곽에서 만들어진 비주류영화로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작지만 알찬 수확이었다.

3. 한국영화, 수출 전성시대

2000년 12월11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한국영화 수출액은 698만3745달러. 지난해 303만5360 달러에 비해 10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수출 편수는 99년 58편에서 20편이 줄어든 38편이지만, 작품당 평균 수출단가가 높아졌고 수출국이 11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었다는 점은 일단 한국영화산업의 청신호다. 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국내 제작사들이 해외 마켓을 적극적으로 겨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외곽에서 한국영화를 알리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도 큰몫을 했다. 99년 말 홍콩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쉬리>는 올해 상반기에는 타깃을 일본으로 바꿔 관객 100만명 이상을 동원했다. 또한 10월29일부터 열린 밀라노 필름 마켓(MIFED)에서 <쉬리>는 유럽 8개국을 상대로 총 39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5월 칸 마켓에서 일본의 가가 커뮤니케이션에 10만달러에 팔린 저예산영화 <섬> 역시 밀라노 마켓에서 프랑스의 카날 플뤼와 6만달러에 판권계약을 맺었다. 한편 올해 한국영화 최대 수입국은 일본으로 전체 수출액의 79%인 550만9천달러를 차지했다. 내년에는 수출증가율이 크게 둔화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지만, 한국영화는 아시아를 수출 거점으로 삼아 당분간 호황을 계속 누릴 것으로 보인다.

4. 칸으로 간 <춘향뎐>, 베니스로 간 <섬>

그토록 두드렸던 문이 열린 것인가?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2000년 5월13일 개막한 제53회 칸영화제에 네편의 한국영화가 각기 서로 다른 부문에 입성한 것을 두고 “세계영화계를 급습한 한국”이라는 제하의 글로 호기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 주목할 만한 시선,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가 비평가 주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감독 주간에 초청됐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수상을 하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냈지만, 현지에서는 “정서적인 힘을 유지하면서도 영상의 구성이 빼어난 거장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올해 8월30일 열린 제5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김기덕 감독의 <섬>은 <씨받이> <거짓말>에 이어 세 번째로 베니스를 찾은 영화가 됐다. <섬>은 기자시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두명을 실신시키는 해프닝을 연출한 끝에 “한국의 잔혹극”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 이탈리아 생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학대의 내용이 담긴 공연이나 영화상영을 금하는 이탈리아 형법을 내세워 <섬>의 상영금지 및 경쟁부문 출품철회를 영화제쪽에 요구했을 정도다. 현지 평들은 몇몇 잔혹한 영화 속 장면들에 충격을 표했지만, 알 수 없는 매혹을 느꼈다는 멘트도 빠뜨리지 않았다.

5. CJ vs 시네마서비스, 배급사 쌍두마차 시대

1999년이 시네마서비스(대표 강우석)의 해라면 2000년은 CJ엔터테인먼트(대표 이강복)가 급부상한 한해였다. CJ는 외화 <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와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흥행시키며 2000년 시네마서비스를 능가하는 실적을 올렸다. CJ의 성공은 드림웍스의 외화, 한국영화, 극장체인이라는 3각축이 정상가동한 결과다. CJ는 그간 <바리케이드> <산부인과> <억수탕> 등 몇편의 저예산영화와 <인샬라> 등을 제작해 번번이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98년부터 부분투자 형식으로 한국영화 제작투자에 다시 발을 들인 CJ는 올해 비로소 시네마서비스와 5개 직배사를 능가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지난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텔미썸딩>의 잇단 흥행으로 독주하던 시네마서비스는 올해 <비천무>로 체면치레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네마서비스의 힘이 급격히 줄었다고 보긴 힘들다. 올해 배급한 영화만 통틀어 20편이 넘는데다 제작사들과 협력관계가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현재 시네마서비스와 CJ는 영화시장의 두 마리 공룡이다. 흥행대목인 여름방학시즌에 5개 직배사만 입성하던 몇년 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변화지만 이들 힘센 배급사들 틈바구니에서 군소 배급사들은 악전고투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군소 배급사들 가운데 한두 군데가 CJ와 시네마서비스에 필적하는 배급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공급되는 물량에 비해 메이저 배급사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판단. 배급사 쌍두마차 시대가 일종의 과도기일 가능성도 있다.

6. 일본영화 3차개방- 애니메이션 개방

지난 6월27일 정부가 발표한 일본대중문화 개방 조치안에는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한 개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일본대중문화 개방이 국내 문화산업을 잠식할 만한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일본시장 접근을 위해서라도 개방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배경을 밝혔다. 3차개방 직전 전면개방설이 흘러나왔던 것에 비해 소폭개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영화인회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은 열악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수준을 고려할 때 정부의 개방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반응은 또 달랐다. 재패니메이션 상륙이 오히려 국내 관객들의 식어버린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파장은 크지 않았다. 9월30일 처음으로 국내 극장에 걸린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의 <무사 쥬베이>는 서울 시내 3개관에서 개봉, 3만명 이하의 저조한 관객 수를 기록했다. 12월9일부터 상영한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인랑> 역시 스크린쿼터를 채우려는 극장들로 인해 월요일에 개봉하는 등 불이익을 당한데다 마니아층으로 관객이 좁혀져 흥행성적은 좋지 않다. 서울 20개관 이상을 확보한데다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개봉해야 재패니메이션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7. 멀티플렉스, 아름다운 시절

멀티플렉스는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메가박스, MMC, 센트럴6, 정동 스타식스 등 올해 새로 안착한 멀티플렉스가 보유한 스크린 수만 헤아려도 40개. 하지만 아직 극장 포화상태를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다. 5월13일 개관한 메가박스의 사례는 멀티스가 ‘잠재’ 관객을 극장으로 ‘호출’한다는 사실을 통계로 확인시켜줬기 때문. 16관을 거느린 이 ‘공룡’ 극장은 개관한 지 석달 만에 관객 수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상황이 위험수위를 넘자 종로3가를 중심으로 한 기존 극장들이 대형 쇼핑몰을 기반으로 한 멀티플렉스의 등장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터주대감인 서울극장이 25억원을 들여 극장 내부 공사를 했고 단성사와 피카디리 등도 8개관 이상의 복합관 시공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98년 국내에 처음으로 멀티플렉스를 세운 CJ빌리지와 유통업계에서 탄탄한 망을 자랑하는 롯데 등을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는 지방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하지만 극장쪽 입김이 거세지고 흥행대작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스크린을 독식하면서 오히려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즐길 기회를 빼앗긴다는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씨네큐브 광화문이나 하이퍼텍 나다처럼 좀체 볼 수 없는 아트 계열의 영화들을 선보이는 극장들의 등장이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이다.

8. 금융자본, 영화산업 속으로

2000년 초 벤처열풍은 충무로를 휩쓸었다. 투자회수시점이 빠르고 수익률이 높다는 점 때문에 영화는 쓸 만한 벤처기업을 찾는 금융자본들이 군침을 삼킬 만한 메뉴가 됐다. 우노필름이 로커스의 투자를 받아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인 싸이더스 우노필름으로 바뀐 것을 비롯, 시네마서비스가 다국적 벤처자본인 워버그핀커스로부터 2천만달러(약240억원) 투자유치를 받았고 강제규필름은 KTB에서 57억5천만원을 투자받았다. 메이저급 영화사에 대한 직접투자 외에 개별 영화에 투자하는 자본도 투자조합형태로 바뀌었다. 비교적 일찍 영화업에 진출한 일신창투 외에 미래에셋, 튜브엔터테인먼트, 무한기술투자, KTB 등이 100억원대 펀드를 조성, 운용하고 있다.

이들 금융자본의 투자방식은 과거 대기업과 차이를 보인다. 가능한 고정자산을 줄이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투자하는 방식. 제작, 수입, 극장, 비디오, 케이블TV 등 모든 유통구조를 일괄공정으로 집중시켰던 대기업과 달리 위험요소를 분산시키는 투자를 선호하는 것이다. 삼부파이낸스나 MCI코리아처럼 부실한 금융자본이 진출했던 경우도 있지만 지금도 금융자본의 영화업 진출은 계속되고 있다. 증시가 불안하고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투자자에게 영화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9. 디지털과 인터넷영화, 붐과 거품

올해 4월28일 개막한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디지털’이라는 세기의 화두를 꺼내들었다. 디지털은 99년부터 칸, 베를린, 로테르담 등 세계 유명영화제의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좀더 적극적인 접근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박광수, 김윤태, 중국의 장위엔 감독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작업해온 영화감독들이 참여했고, 국내에선 처음으로 디지털 영사 프로젝터를 설치, 상영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의 디지털 네가에서 파이낸싱을 맡아 진행하는 3국 디지털 장편영화 프로젝트도 볼 만하다. 아직 첫선을 보이진 않았지만, 홍콩의 프루트 챈, 한국의 박기형, 일본의 나카다 히데오 감독 등 3국 감독들이 참가했다. 박철수 감독의 <봉자>와 남기웅 감독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뒤 키네코작업을 거쳐 극장개봉했고 임상수 감독의 <눈물>은 다가올 1월20일 개봉할 예정이다. 디지털 영사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최상의 윈도로 인터넷이 각광을 받았지만, <여름이야기> <메이> <파사신검 01412> 등 인터넷영화를 표방한 작품들의 수준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비해 김지운, 장진, 류승완 등 세 감독들이 제작한 재기발랄한 단편영화들을 릴레이식으로 인터넷에 올린 (주)씨네포엠의 시도는 돋보인다. 한 인터넷 관련 업체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영화관련 사이트는 350개에 이르지만, 확실한 수익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의 고민을 떠안고 있다.

10. 북한영화 개봉, 남북 영화교류 시작

남북의 만남이 뜨거웠던지라 영화도 잠자코만 있을 순 없었다. 올해 7월22일 북한영화로는 처음으로 <불가사리>가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다. 하지만 <불가사리>를 보러 극장을 찾은 이들은 겨우 500여명(서울 기준)에 그쳤다. 북한영화 개봉을 계기로 북한영화를 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에 포함시키냐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에 의거 수입추천심의를 통일부의 반입승인으로 대체하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

99년부터 북한영화 상영 및 북한영화인 초청을 준비해온 부산국제영화제쪽 역시 정상회담 이후 북쪽으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해 결국 상영전을 갖지 못했다. 조선아태평화위원회를 통해 <아리랑>의 합작을 준비해왔던 NS21 역시 그동안 창구 역할을 해왔던 조선아태평화위원회가 실질적인 조력 상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통일부로부터 사업승인이 아닌 예비승인만을 받았다. 11월에 이뤄진 남쪽 영화인들의 방북이라도 없었더라면 허전했을 터.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10인의 영화인들은 확정안은 아니지만 상호 기술 책임자 초청, 학술토론회 개최, 영화제간의 교류, 애니메이션 영화합작 등을 협의안으로 올려놓고, 남쪽 영화진흥위원회와 북쪽 민족화해협의회를 남북 양쪽 창구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활발한 남북 영화교류를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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