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도 등수가 있나…
내가 1등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감독의 등수라는 게 어디 있겠나… 면구스러울 따름이다. 벌써 <박하사탕>을 개봉한 지 1년이 됐다. 상도 많이 타겠다고? 그것들은 내게 상이라기보다 트로피다. 그건 많다.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르다. 영화를 만든 동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나 자신도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라는 것은 이를테면 거울이다. 현실에서 일탈하기 위한 만화경 같은 영화가 있는 반면에 우리 삶이나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가 있다. 내게 영화는 후자의 의미다.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도 비추는 그런 영화. <박하사탕>이 얼마나 투명한 거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우리의 내면을 비춰보고 싶었다. 또 나는 우리가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삶에 있어 순수함이란 뭐냐. 아주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수줍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모두들 수줍음을 잃어버렸다. 새 천년 첫 순간 보여진 <박하사탕>을 통해 나는 ‘서로 수줍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던진 것 같다.
새 영화는 러브스토리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라는 주제를 놓고 내 나름의 답을 하려 한다. 아직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키워나가고 살을 붙이고 있는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