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 예전에 말론 브랜도 흉내 참 잘냈다고. 그렇게 흉내낼 사람도 별로 없다고. 그런 캐릭터에 유머까지 있으면 난 너무 좋을 것 같아.
박 | 제가 형님 말씀하신 선을 놓고보면 등락차가 큰 배우이고 거기서 얻은 불이익도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요즘에 케이블TV에서 <할렐루야>를 가끔 보면 저한테 어떤 훈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먼 훗날 내 영화를 다시 볼 때, 물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내 개성도 살리고 작품도 살면 좋은 거지만, 나이 들어서 보면 원없이 한번 해봤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뱀탕을 먼저 먹어버린 거예요. 뱀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약효가 그 다음부터 잘 안 난다는 거죠.(웃음) 그런데 형님은 뱀은 안 잡수시고, 비타민만 먹어서 관리는 잘되시는데,(웃음) 확 피지 못한다는 거예요.
안 | 그러니까 가늘게 길게 간다
박 | 아니, 형님은 가늘진 않죠. 사실 예전에는 목소리만 빼고 모든 걸 다 형님 따라 해봤어요. 심지어 형이 <성리수일뎐> 찍을 때 저 분은 어떻게 촬영하나 궁금해서 따라다니면서 일지 적듯이 기록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선배를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할 때 선을 그어놓는다는 얘기 오늘 처음 들었는데, 조금 더 나가보자 하는 생각 드신 적 없으세요
안 | 그런 적 많아. <피아노치는 대통령> 때도 키스신 같은 데서 더 장난할 수 있거든. 나도 코미디적 상상력이 나름대로 있어서 떠오르는 게 있지만, 또 분명히 이렇게 하면 재밌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게 안 하는 거야. 그 선에서 너무 어긋나면 안 된다 싶어서 균형을 잡는다고. 그건 거의 본능인 것 같아. 나의 기준이지 관객의 기준은 아닐 거고. 관객은 그 선을 좀더 높게 잡았으면 싶기도 하겠지만, 관객의 기준에 맞추면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싶고.
박 | 그러니까 선배님은 성공하신 거예요. 안성기라는 배우의 기준을, 리듬을 관객이 쫓아와 준 거잖아요. 아주 성공한 모범사례죠. 언젠가 비오는 날이었는데, 낮에 맥주를 한컵 하면서 좀 건방진 말을 했었죠. 형님은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영화는 절대 못하실 것 같다. 형님이 삶을 깨지 않고는 그런 연기가 안 나올 거다. 형님은 해리슨 포드 같을 거다. 그랬더니, 형님이 ‘해리슨 포드가 더 어려워 임마’ 그러시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꼭 해체되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 지켰을 때 나오는 창조도 있겠구나 했죠. 근데, 나는 어떤 딜레마가 있냐 하면, 피는 로버트 드 니로인데, 생활은 해리슨 포드처럼 가고 있단 말이죠. 확률적으로는 깨는 쪽에 훌륭한 예술가가 많은데, 나도 확 마누라한테 얘기하고 깨버릴까.(웃음)
안 | 그건 배우의 개성인 것 같아. 아무리 바꿀려고 해도 바꿀 수 없고. 전부 아우른다는 건 생각으로만 가능하지, 실제로는 불가능하지.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니까.
박 | 그런데 형님은 배우로서의 위기감 같은 걸 느낀 적 없으세요 그런 말 한 적이 없어서.
안 | 왜 전에 몇번 얘기했잖아. 한 3∼4년 전인가. 그동안 쭉 주연으로만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그렇지 않은 게 많이 들어오는 거야. 일단은 서운하고, 받았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슬퍼지더라고. 그때 강우석 감독한테 말했을 거야. 아, 내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과 위치가 아니구나, 여기서 조금만 더 아니면 난 떠난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 상처를 좀 받은 거지. 한 1년쯤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뀐 거야. 그때 내 화두처럼 삼은 게, 역할의 비중은 작아지지만 크기는 작아지면 안 되겠다, 그게 나의 몫이구나 하는 거였지. 역은 작아져도 느낌은 예전 그대로 줄 수 있어야겠다. 그러니까 좀 편해지더라고. 조연상도 좋게 받았고. 그런데 이게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 전체를 놓고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해. 나도 이제 50대에 막 들어섰지만, 외국을 보면 40∼50대가 굉장히 다양한 영화를 하고 있거든. 그런 영화가 매우 적다는 데 대해선 우리 영화문화 자체에 대한 경각심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또 너무 가벼워지고, 경박해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 개인의 서운함을 뛰어넘어서. 내가 배우로서 매력을 유지한다면 그런 문화가 유지되어나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배우로서의 위기감, 그리고 그 이후
박 |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보고서 후배 배우들끼리 자리를 했는데, 선배님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찬사가 나왔어요. 최지우하고 실제 나이로는 부녀뻘인데, 로맨스신이 전혀 어색하질 않았잖아요. 키쓰신이 되잖아요. 영화는 좀 그랬지만, 그런 나이를 잊은 듯한 배우로서의 관리가 이뤄졌다는 데에서 우리조차 위안을 받았죠. 그런데, 제가 감히 형님까지 묶어서 느끼는 위기감은 이런 거 같아요. 이제는 안성기, 박중훈이 아니라 작품이 변해줘야지. 저만 해도 관객한테 수를 다 읽혀버린 거 같아요. 형님은 저보다 훨씬 더 오래되셨으니까. 신선함이 떨어진 거죠. 하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그런 지루함이 없었던 건 작 품때문이었던 거죠. 배우는 어차피 자생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작품과 좋은 감독을 기다린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죠. 여기서 저의 딜레마가 있는데, 저는 형님처럼 여러모로 탄탄하지는 못해요. 그러다보니, 더 나아가고 싶어요. 답습이나 반복에 의한 작품선택은 하기 싫은 거예요. 할 작품은 마땅치 않고, 맞춰서 하자니 내가 싫고. 사실 97년에 <인연> <할렐루야>하면서 관객이 식상해했고, 일본으로 식구들하고 떠나면서 영주권까지 받았었다니까요. 그때 이명세 감독이 날 믿어줬고. 하지만 그 뒤 다시 관객은 믿어주지 않았고, 미국영화에서 요청이 왔고. 이제 한 2년 떠나 있으니까 또 충무로 영화 하고 싶어요. 내 자신이 좀더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편해지긴 했는데. 다행히 저는 20대에도 섹시 가이, 이런 걸로 인기 얻진 않았잖아요. 그런데 형님도 지금 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 같은데, 예전영화 보면 많이 달라요
안 | 옛날에는 빤빤했지. 다림질한 것처럼. 젊음이 좋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이 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아. 단 안 좋은 건 우리 사회가 너무 젊은 감각에만 치중되어 있다 싶은 거고. 그걸 깨고 나가는 건 어차피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거지.
박 | 그런데, 그런 관객이 없으니까, 그런 영화들이 안 만들어지는 것도 있고, 그런 영화가 없으니까, 중장년층의 관객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게 숙젠데 그런 관객들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야죠.
안 | 그래, 고도를 기다리며.
박 | 지금까지 선배님하고 세편 같이 했는데, 둘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생겨요. 꼭 한번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안성기-박중훈 카드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으면 좋겠어요.
안 | 근데, 꼭 한번만이어야 하니?
박중훈이 기억하기를...
#1. 배우 하기 전, 1980년대 초반에 명동에서 성기 형하고 지금의 형수님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옆을 스쳐지나갔다가 뺑 돌아 뛰어와서 다시 스쳐 지나가기를 서너 차례 되풀이했었다. 그는 내 우상이었다.
#2. 1985년 <깊고 푸른 밤> 시사회장에서 성기 형을 봤다. 뒷머리를 기른 상태였는데 그때는 뜻밖에도 양아치 같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스타가 아니라 형 같았다.
#3. 1987년 형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찍을 때, 나는 <청춘스케치>를 찍고 있었다. 촬영장 앞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집에 가야 하나” 하면서 무료하게 배회하고 있었다. 황신혜씨가 안 와서 촬영이 펑크났다는 거였다. 와! 톱스타가 아량도 넓다.
#4. 드디어 함께 <칠수와 만수>를 찍던 어느 날, 형이 와서 전날 밤에 꿈에서 예쁜 여자가 자길 유혹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족에게 그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일도 안 했다고 했다. 꿈속에서도! 그땐 참 질리더라.
#5. 얼마 전 청룡상에서 형이 조연상 받고, 정우성과 장동건이 인기상을 받았다. 끝나고 다 같이 술마시는데 형이 와서 술값 다 내면서 “신인상, 주연상, 조연상 받았으니까 이제 공로상만 남았다”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형은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10년 이상 독보적이었던 주연배우가 조연에 순응하기까지 마음속의 번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나랑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런 말은 잘 안 했던 것 같다. 서로 친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상대가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잘하겠지 하는. 처음 만났을 땐 20대 총각과 30대 유부남이어서 거리가 있었지만, 갭이 점점 줄었다. 20∼40년씩 연기생활해서 동병상련과 연민이 있고, 무엇보다 편안해서 좋다. 형이 남에게도 편하게 대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편안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도 편하다. 연기자로 안성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가 인간을 알게 된 뒤로는 인간 안성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