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건 운명이고, 또 필연인 것 같아요.” 우연과 운명과 필연의 관계를 손예진은 그렇게 정의했다. 영화 <클래식>에서 1인2역을 하며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이루어지는 사랑 그 모두의 감정을 겪어본 주인공으로서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슬픈 사랑보다는 현재의 달콤한 사랑이 손예진에게는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클래식>은 “과거의 사랑이 현재에 이뤄지는 영화잖아요. 촬영은 과거, 현재, 과거 이렇게 했거든요. 사람들이 곧잘 과거와 현재의 사랑을 비교하긴 하지만…. 제 생각에 과거의 사랑은 너무 슬퍼요. 이뤄지는 사랑이 좋죠.” 하지만 손예진은 쉽게 철없는 소녀임을 승낙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스스로를 가리켜 이문세와 산울림의 노래를 즐겨 들을 만큼 “옛날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럴땐 <취화선>의 소운과 <연애소설>의 수인이 문득 겹쳐진다.
“추위도 많이 타고, 더위도 많이 타는 체질” 때문에 겨울에 내복을 네겹씩 껴입은 적도 있다는 손예진이 촬영 중 7시간이나 비를 맞는 장면을 찍는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손예진은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몸이 겪는 어려움을 몰입으로 넘어서서 감정에 빠져들었다는 경험담을 들으면서, 그녀의 연기관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부담 가질 필요 없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해라, 그러시더라고요. 이 신에서는 이렇게, 저 신에서는 저렇게 해야지, 하기보다 그 상황에 따라 달라진 것 같아요.”
배운 건 더 있다. “시작할 때는 자신감만 있었는데, <클래식>하면서 더 혼란스러워졌어요. 그런데 100을 하기보다, 98 정도를 하는 게 더 좋은 배우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상대 감독에 따라서 많이 바뀔 수 있는…. 배우는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은 여성스러운 영화잖아요. 이제까지의 제 이미지는 선한 이미지만 있었고, 또 악한 건 못할 거 같고 그랬는데, 갑자기 파격적으로 바꾸는 건 좀 웃길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얘기를 듣다보니 손예진의 다음 영화출연작 제목이 떠올랐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손예진은 <클래식>을 소개하면서도, 이 영화가 멜로적인 요소에 코믹함도 같이 있다고 종종 강조하곤 했다. 드라마 <대망>에서의 동희 역을 제외한 영화 출연작에 한해 손예진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순수함의 더 깨끗한 부분까지 닿아보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씩 변화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 변화의 반영일까 “인물이 망가지는 코미디가 아니라, 상황이 재미있는 코미디라면” 언제든지 도전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은 그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