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클래식>의 조승우, ˝일 안 하면 좀 쑤셔˝
2003-01-15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몽룡 탈출!’ <후아유>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조승우(23)의 머릿속은 오직 그 뿐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누군가는 <와니와 준하>로 이미 씻은 것 아니냐 다독였지만, 여전히 <춘향뎐>의 역광을 버거워하던 그를 설득하진 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배우한테 데뷔작은 무시 못하는 거구나. 그래서 맘을 바꿔 먹었어요.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현장에서 맘껏 즐기자고….” 촬영 분량이 많지 않지만, 이후 찍었던 〈H>와 〈YMCA야구단>은 그래서 소중하다. “한번은 강호 형이 그래요. 자기는 현장이 제일 좋다고. 형 보면 촬영 끝나면 스탭들하고 야구 한 게임 하고, 먼지 먹었으니 삼겹살 한점 하자고 고깃집으로 이끌고. 그거 보면서 현장공부 좀 했죠.”

부담을 덜어서일까. <클래식>은 그야말로 “재미있게 찍었다”. 특히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7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라 주촬영지인 목포 이외에도 여주, 서대전, 벌교, 양산 등을 오가야 했다. 로케이션 일정상 하루에 1000km를 달려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처음 떠난 배낭여행의 기억을 잊지 못한 소년처럼 못다한 이야기를 꾸역꾸역 내놓는다. “촬영 한번 나가면 트렁크가 이삿짐 수준이에요. 그 짐차로 다니면서 배고프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밥 좀 달라’고 너스레도 떨었어요. 한여름 장면을 찍을 때는 원두막에서 수박씨 멀리 뱉기 시합도 했어요. 어릴 때 못해본 거 많이 해봤죠.”

그가 맡은 역할인 준하는 가슴 한구석에 항상 그늘이 드리워진 인물. 절친한 친구의 약혼녀가 사실은 자신의 첫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갈등하게 되는 준하를 시나리오에서 처음 만난 순간, 그는 “이놈 참 불쌍한 놈이구나” 하는 연민에 빠져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2시간 동안 정독한 뒤 “남은 학기(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채울까, 아니면 연극 한편 해볼까” 하던 그전까지의 고민은 모두 사라졌다. 70, 80년대 팝과 가요들을 CD 4장에 꼭꼭 눌러담아 자신에게 전달해주며 때론 “이 장면에서 어떤 음악이 좋겠냐”고 묻기도 했던 곽재용 감독의 자상함도 그가 연기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감독님이 연기를 잘하세요. 그래서 전 디렉팅하시면 감독님 표정만 봤어요. 느낌이 이미 얼굴에서 나오거든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영화에서 한축을 맡는 비중있는 인물인 만큼, 단박에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낼 수는 없었다. 주희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베트남 전장으로 떠나는 기차역 신은 애먹은 장면 중 하나다. “700∼800명이 모인 군중장면인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니까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기도 하고. 집중이 잘 안 되더라구요. 배우로서 쪽팔리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울기 위해 안약까지 넣어가며 별짓 다했어요.” 다음 작품에 대해선 당분간은 “백수로 지내려 한다”는 게 그의 답. 그러나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도합 10편의 뮤지컬과 영화에 출연하며 게걸스런 식욕을 과시했던 것을 보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천성적으로 “일 안 하면 좀 쑤시는” 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가. “키도 남들보다 작죠. 치아도 불규칙하죠. 가진 거라곤 평범함밖에 없어요”라며 특유의 생긋한 미소를 머금은 이 젊은 배우, 곧 어디선가 사고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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