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화선>의 소운은 말한다. “임권택 감독님하고 촬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첫 회 촬영 딱 끝나자마자 제 마음을 읽으시더라고요.” <춘향뎐>의 이몽룡은 말한다. “그 이미지를 벗으려고 많이 애썼어요, 그러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가자, 생각했죠.” 손예진과 조승우는 그렇게 임권택이라는 거목의 그늘을 서로의 방식으로 기억했다. 그 기억은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생겨난 출발점에 대한 술회이기 때문에 중요할 것이다. 배우에게 ‘어머 너무 예쁘시네요, 어머 너무 잘생기셨네요’라고 던지는 첫 인사 그 이상의 무례함은 없다. 그건 이들에게도 이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손예진과 조승우 역시 이제 막 ‘시작하는’ 그 문지방을 밟고 서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 마주친 것은 곽재용 감독의 신작 <클래식>이다. 손예진은 <연애소설>의 수인 역을 거쳐 순수함의 이미지 안으로 더욱더 파고들어 <클래식>에 이르렀고, ‘자연스러워지자’는 결단처럼 조승우는 스릴러 를 돌아 <클래식>을 선택했다. 두 세대에 걸친 우연과 필연의 반복을 통해 운명으로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 영화에서 손예진과 조승우는 과거 세대의 슬픈 연인, 주희와 준하로 등장한다(손예진은 과거의 주희, 현재의 지혜로 1인2역을 한다).
현장에서 손예진과 조승우는 서로 상대가 더 말이 없는 편이라고 우길 만큼 조용한 성격이다. 하지만 연기에서는 서로 더 도움을 받았다고 다투어 말할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 “엑스트라들이 많아서 동선잡고, 감정잡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그런 손예진의 말에 조승우는 동감을 표시한다. 그러면서도, “손예진씨는 보기보다 체력이 정말 굉장해요”라고 나직하게 덧붙인다. 손예진은 다시 한번 “자기 감정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에, 내가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고 조승우의 장점을 강조했고, 조승우는 “내가 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예의있게 받는다. 이들의 호흡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영화 속 이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