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동원,장기수,그리고 <송환> [2]
2003-01-27
글 : 이영진
사진 : 조석환

식사는 잘하시는지, 남쪽 새각은 하시는지

돌아보면, 송환이 이뤄지던 날의 촬영만큼 그가 힘들어 했던 적도 없었다. 다들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판문점에서, 객관을 의식한 카메라를 들고 묵묵히 서 있어야 했던 날의 씁쓸한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계속되는 환송회 일정에 결국 탈진한 채 앰뷸런스에 실려 판문점을 넘어야 했던 조창손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쨌든 선생들이 떠나고 난 뒤 “찍어놓은 화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정한 그는 포커스를 달리해야 했다. 이전처럼 체제의 폭력을 비판하거나 결기어린 선생들의 신념만을 전면에 내세울 순 없었다. 상황은 변했고, 카메라가 개입하는 지점도 달라져야 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조창손 선생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줄이고, 지난 10년 동안의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담기로 했다.

하지만 아산요양원에서의 대면, 봉천동에서의 생활, 후원회원들과의 북한산 피크닉을 거쳐 판문점 송환으로 맺는 것은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때 욕심 안 부렸다면, 이미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송환 이후 북쪽에서의 선생들의 일상을 담기 위해 수차례 방북 기회를 엿봤다. 고향 땅을 밟으니 좋으신지, 식사는 잘하시는지, 요즘은 무슨 꿈을 꾸시는지, 남쪽 생각도 가끔 하시는지, 수없는 질문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설령 북쪽의 제지로 선생들과의 대화가 자유롭게 이뤄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표정만이라도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2001년 8월15일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공동행사의 경우, 비행기표까지 구했지만, “국가보안법 관련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부의 트집 때문에 발목 잡혀야 했다.

편집을 앞두고서 그를 여전히 괴롭히는 건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그가 명확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취했다고 한들 그것이 옳은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봉천동과 신림동과 행당동의 빈민들을 찍었던 때는 사실 쉬웠다. 내가 그 공동체 안에 있었고, 작품에 들어가선 등장인물에 기대서 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경우, 여기에는 역사 안에서 내가 객관적으로 본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난 그들과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고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았다.” 편집 과정에서는 선생들의 신념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지, 프라이버시 문제까지 고민해서 넣어야 하니 첩첩산중이다.

현재로선 주관적인 느낌들을 숨기지 않고 영상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형식을 취할 생각이다. 내레이션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황스러웠던 상황까지 빼놓지 않고 보여줄 예정. “일례로 (변)영주가 촬영했던 첫 만남의 인터뷰 장면 중 두분의 선생 가운데 내가 끼어 있는 구도가 있다. 선생 한분께서 화장실을 다녀오셨는데, 나중에 감히 자리를 바꾸자는 말을 못해서 그렇게 된 거다. 평소 같으면 말을 해서 바꿨거나, 편집 과정에서 빼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냥 넣으려고 한다. 그때 내 느낌을 내레이션으로 전하면서. 그게 오히려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형식적으로는 주관적인 느낌이 강한 다큐가 될 것임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완의 10년, 그를 버텼다

동료로서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봤던 김태일 감독은 그가 <송환>을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봉천동에서 선생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었다면, 즉 작품하겠다고 소재로서, 이슈로서만 접근했다면 쉽게 포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현실을 담진 않는, ‘게으른’ 그의 카메라야말로 진정성을 뿜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라는 지적. 다큐멘터리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세상을 배워왔다는 김동원. <송환>을 두고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들이 전향을 거부했던 것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게 나를 잡아당긴 매력이었고, 매일 또 다른 ‘전향’의 유혹에 시달렸던 나를 추스를 수 있게끔 지탱해줬다.” 그러고 \보면, 10년째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송환>은 그동안 한눈팔지 않고 한길 걸어온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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